조성범
고등학교 회상
모교. 기억. 청춘
고등학교 하면 아련한 추억이 솟아나야 하는데, 내겐 쓰고 아픈 기억이 많다.
목공실습 첫날. 톱과 끌, 대패, 망치를 준비해 오라는 선생님 말씀을 듣고
학교에 다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속절없이 일 년을 보냈다. 일주일에 하루
일곱 시간은 목공실습 시간이고 또 하루는 제도실습 시간이 나에겐 생소하고
서툰 적응하기 힘든 번민의 나날이었다.
등하굣길에서 만나는 인문계 고등학생이 그토록 애절하게 부러웠던 시간.
거의 한 달은 톱의 날을 세우고 대팻날 갈고, 반턱 맞춤, 장부맞춤 등 목공실습
시간은 견디기 힘든 고통의 나날이었다.
시골 광천에 계신 부모님 걱정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 지도 못하는 사이 시름시름
앓다 한양대 나오신 고 김순성 담임선생님의 배려로 학교생활에 차츰차츰
적응할 수 있었다.
문학을 하고 싶었는데 공고를 와 앞뒤 꽉 막힌 절망의 시간이었을 즈음.
선생님께서 인문과 가까운 공대 건축대학 설계를 말씀하시며 꿈을 잃지 말라
타이르셨다. 그 말씀 하나 믿고 맘을 다잡고 2학년 초부터 대가리 터져라
대학 준비에 목숨을 걸었던 수원공업고등학교 공돌이 시절.
운 좋게 국립대학에 진학하여 3학기 장학생과 2학기 국민은행 4년 거치 5년
학자금 융자와 두 번의 휴학을 전전하며 10년 만에 충북대학교를 졸업하다.
떠밀려했던 건축설계로 20여 년간 풀칠하며 살았지만, 가슴 한구석
응어리는 삭여지지 못하고 나를 붙들고 신음하는 날들이 미치도록 이어졌다.
우울증과 한강 물에 던진 목숨. 죽음도 맘대로 안 되는 때늦은 시름에 번민하다.
지천명, 쉰 살에 결단을 내리다. 내가 좋아하는 글 쓰며 살 거야.
아내의 애원과 이혼 협박에도 꿈적 않고 천지사방 떠도는 백수생활 오 년 하다
자식 놈 대학 휴학을 일삼는 노릇을 보며 가장의 책무에 몇 푼이라도 가정에
도움이 될까 하여 책 보며 글 쓰며 할 수 있는 경비 생활을 시작한 지 삼 년.
자식에게 말한다.
인생은 온전히 너의 것이다.
이 아비는 그것을 수십 년 돌아 돌아 뒤늦게
깨우쳤단다.
페이스북에서 모교 페이지보다 지난 젊은 열여섯 시절이 몰아쳐 몇 자 끄적거린다.
김순성 선생님 하늘에서 보고 계시죠. 선생님 은혜로 숨을 부지 하며 이제야
하고픈 일 하며 살아요. 선생님이 뵙고 싶어 모교를 찾아 만년필 드리고
몇 달 후 갑자기 운명하셨다. 교사 자격증이 있다 말씀 드렸더니 당신께서는 곧 정년퇴직하니
모교 와서 후배들 가리키라는 말씀을 놓고……
선생님 사랑합니다.
2017.5.27.
조성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