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최동석입니다.
1.
지난 칼럼에서는 조직이 지배의 도구가 아니라 구성원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구원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유럽인들은, 권력자가 조직을 마음대로 지배하거나 구성원들을 착취할 수 없도록 하는 시스템과 메커니즘을 만들었습니다. 인간의 삶을 위한 구원의 수단으로 조직을 인식할 수 있도록 했다는 말입니다. 이런 조직론의 발전과정을 검토하는 데는 독일의 역사와 사례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독일의 역사에는 큰 잘못을 저지른 치욕의 역사와 함께 그것을 철저히 반성하는 성찰의 역사가 교차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MBA 과정에서 저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 중에 가끔 이런 질문을 합니다. 아마 이 칼럼을 듣는 분들 중에도 그런 의문이 들지 모르겠습니다. 독일은 칸트와 헤겔 같은 위대한 철학자, 바흐나 베토벤과 같은 훌륭한 음악가, 괴테와 같은 대문호를 배출한 나라에서 어떻게 홀로코스트와 같은 끔찍한 일을 벌일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3..
저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도덕성이란 매우 위태위태한 상태에 있으며, 인간의 윤리적 삶은 마치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윤리의식이나 도덕성은 전혀 믿을 것이 못됩니다. 언제라도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어떤 철학도 문학도 예술도 종교도 인간의 도덕성을 고양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잠시 동안 단기적으로는 고양될 수 있지만,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3.1.
인류는 그토록 오랫동안 공자와 붓다와 예수의 가르침으로 무장해 왔지만, 그런 가르침 때문에 인간의 도덕성이 나아졌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나아지기는커녕 종교가 전쟁과 부패의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현재 우리나라에 들어온 각종 종교의 소위 성직자들의 비리와 부패상을 봐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4.
그러면 인간의 행동이 언제 도덕적인 상태로 바뀌고 이것이 지속되도록 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우리는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도덕적 행동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자발적으로 도덕적 행동이 일어나도록 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됩니다. 인간은 생명체 중에서 주변 환경에 가장 민감하게 적응해 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환경조건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인격수양을 통해 도덕적 성품을 기르는 것에 집중해왔습니다. 환경조건과 올바른 환경조건을 구성하는 시스템 설계의 중요성을 간과해왔습니다.
히틀러에 관한 많은 연구들이 있습니다. 도덕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히틀러의 등장은 제1차 세계대전이 그 원인이었습니다. 패전 후, 가장 민주적인 헌법을 만들어서 군주제를 폐지하고 바이마르 공화국(1919~1933))을 만들었지만,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배상금을 물어야 했고, 비스마르크가 통일하면서 획득한 영토의 상당 부분을 잃었습니다. 알자스로렌 지방을 프랑스에 양도했고, 동부 프로이센 상당 부분을 폴란드에 넘겨주었습니다. 유럽 바깥의 식민지들도 다 잃었습니다. 육군의 병력은 10만 명을 넘지 못하도록 했고, 해군은 대규모 선박과 잠수함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패전국인 독일은 전승국들에게 640억 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하기 위해 화폐를 발행할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1923년에는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일어났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29년 미국의 월스트리트마저 붕괴하여 세계적인 대공황이 닥쳤습니다. 독일인들에게는 이판사판이 된 것이죠. 노동하다가 죽으나 전쟁하다가 죽으나 마찬가지인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히틀러를 구세주로 선택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히틀러가 등장하면서부터는 정해진 프로그램대로 진행되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환경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인간의 도덕성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5.
제2차 세계대전 후, 잿더미 속에서 독일인들은 망연자실해 있었습니다. 이런 처참한 환경에 처한 독일에게 전승국들은 가혹한 처벌을 내리기보다는 오히려 빠른 시일 내에 재건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가혹한 처벌의 후유증에서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서독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냉전시대에 공산주의의 확산을 최전방에서 막아야 했기 때문에 미국을 위시한 서방국가들의 원조에 힘입어 경제부흥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여기까지는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6.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것입니다. 나치 시대에 그렇게 잔혹한 반인륜적인 범죄에 가담했던 사람들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크리스토퍼 R. 브라우닝, 이진모 옮김, 『아주 평범한 사람들』, 책과함께 2010 참조).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전쟁 후에는 그들이 아주 평화주의자로, 아주 도덕적인 국민으로 돌변했다는 점입니다. 인간의 도덕성은 믿을 만한 것이 못됩니다.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누가 감히 누구보다 더 도덕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도덕성을 발휘하도록 하는 환경조건을 설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7.
인간의 도덕성도 그래서 조직론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조직의 운영시스템과 메커니즘이 인간의 행동 패턴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전승국들은 전쟁범죄자들뿐만 아니라 나치 정부에 부역했던 자들을 심판하는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전범들과 그 추종자들을 재판에 회부했고, 경중에 따라 처벌해야 했습니다.
7.1.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법정에 나온 피고인들의 변명과 변호인들의 변론에도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국가의 명령에 따라, 다시 말하면 국민이 선출한 정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인데 그것이 어찌 죄가 될 수 있느냐는 항변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가를 보위하고 국민이 선출한 지도자들이 정부를 구성해서 국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공무원은 그런 국가조직에 고용된 사람으로서 정부의 방침과 상관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 범죄가 될 수 있을까요?
8.
이것은 물론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오랜 인류 역사에서 엄격한 상명하복의 전통은 그때까지도 살아있었습니다. 그러나 종전 후, 인류는 통치자의 관점에서 조직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인간 개개인의 관점에서 조직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군에 체포된 전쟁범죄자가 여권을 위조해서 아르헨티나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숨어 지냈습니다. 그가 나치 친위대 장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 1906~1962)이었습니다. 1960년 이스라엘 정보부는 그를 체포해서 이스라엘 법정에서 재판을 받도록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유대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가 그 재판 과정을 상세히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녀의 보고서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김선욱 옮김, 한길사 2006)이라는 유명한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9.
아이히만은 같은 독일인 세르바티우스(Robert Servatius, 1894~1983)를 변호인으로 선임했습니다. 세르바티우스는 이미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도 변호인으로 활동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변론했습니다. ‘아이히만은 단지 국가의 명령에 복종했고, 그것은 미덕이었다. 그의 미덕이 나치 제국의 지도자들에 의해 오용되었을 뿐이다’는 논리를 펼쳤습니다. 아이히만 자신은 덧붙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윗사람들은 나에게 '책임'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는 말을 했는데 이제 그렇게 말한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상황이 되었다’고 불만을 털어놓았습니다. 1심 법원의 판결은 총통의 명령이 명시적으로 내려진 이후에 벌어진 행동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여타 다른 죄목에 의해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10.
그러나 최종심에서는 이런 변론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최종심 재판관들은, 상관의 명령에 관계없이 아이히만 스스로가 자신의 상관이었으며, 유대인과 관련된 문제에 그가 스스로 자신에게 명령을 내렸다고 보았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도전하는 범죄를 유죄로 판결했다는 점입니다(345쪽). 불합리한 명령, 반인륜적인 명령에 반대하거나 저항하지 않은 것이 죄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최종 판결 후, 여러 구명운동과 청원이 있었지만, 이스라엘 대법원은 모두 기각했습니다. 사흘 후에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저는 재판 과정에서 벌어진 쟁점들의 법리적 내용은 아는 바 없습니다.
11.
그럼에도 이 재판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런 판단이 조직론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되기 때문입니다. 국가라는 조직이 있고, 그 조직을 운영하는 정부조직이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국가조직과 정부조직은 동일시될 수 없는 별도의 조직입니다. 이전 칼럼에서, 조직은 지배의 도구가 아니라 구원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러므로 국가조직은 국민 개개인의 생존은 말할 것도 없고 풍요로운 삶을 위한 수단으로써만 존재 이유가 있습니다. 국가운영을 맡은 정부조직은 그런 국가의 존재 목적을 실현하도록 운영되어야 합니다. 모든 공직자들은 국가운영의 목적인 국민의 생존과 번영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명령에 대해서는 복종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명령에 대해서는 거부하거나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조직을 지배의 도구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수단으로 보는 관점은 종전 후, 오늘날까지 서서히 정립되어 왔습니다. 국가조직 그 자체를 통치자의 개인적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로 여기는 태도는 적어도 유럽에서는 사라졌습니다. 국가, 정부, 기업, 시민단체, 가정 등 그 어떤 조직이라도 그것은 인간의 삶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보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 그 자체가 목적이라고 생각하는 집단이 있습니다. 일부 종교단체들이 그런 짓을 합니다.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하면서 신성시합니다. 나아가 교회라는 집단 자체를 신성시하기도 합니다. 그런 곳에서는 의사결정이 피라미드형 계급구조의 정점에 있는 사람의 지배와 통제, 명령과 복종의 원리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대형교회의 담임목사는 거의 교주의 노릇을 합니다. 한 사람의 의도와 성향에 의해 조직이 운영되는 꼴입니다. 그래서 이런 종교적 집단들은 인류 보편적 가치를 거부하면서 혐오를 부추기고 갈등을 조장하고 때로는 전쟁을 일으키도록 선동하기도 합니다.
모든 조직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입니다. 특히 국가조직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이 그 존재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국가조직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해야 합니다. 인의예지를 실천하도록 이끄는 공맹 사상,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 모든 생명이 귀하다는 붓다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서 인류는 히틀러의 나치 정부와 그에 추종했던 자들을 심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조직폭력배를 처벌할 수 있는 것도 인간의 존엄성에 도전하는 행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사랑과 자비, 존중과 배려, 개방성과 공정성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조직을 설계해야 합니다.
다시 한번 더 반복합니다. 궁극적 목적은 인간이고 조직은 인간의 삶을 위한 수단일 뿐이므로, 어떤 조직이든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해서는 안 됩니다.
12.
커다란 전쟁을 두 번씩이나 일으킨 전범국가로서 독일과 독일인들은 1949년에 기본법이라는 이름으로 헌법을 만들어서 나라를 다시 세웠습니다. 기본법 제1조 제1항은 두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침해될 수 없다.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권력의 의무다."(Die Würde des Menschen ist unantastbar. Sie zu achten und zu schützen ist Verpflichtung aller staatlichen Gewalt.)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매우 단호하게 선언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신성불가침이며 건드리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어마어마한 선언입니다. 이것은 나치시대의 홀로코스트를 염두에 둔 문장입니다.
13.
국가라는 조직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명확히 해놓았습니다. 인간의 존재가 목적이고 국가조직은 그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려면 정부조직과 그 조직을 움직이는 시스템과 메커니즘을 어떻게 설계해야만 하는지 깊이 생각해야 했습니다. 나치 시대의 히틀러 정부나 조직폭력배와 같은 제국주의 정부가 다시는 나타날 수 없도록 조직을 설계해야 했다는 말입니다.
14.
이때 가장 중요한 점은,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반드시 이해관계자들의 합의를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권력을 가진 자의 일방적인 결정은, 그것이 아무리 선한 결정이라 하더라도, 결국에는 조직폭력배와 다를 바 없는 결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15.
이제 다시 품의제도를 보겠습니다. 품의제도는 권력을 피라미드 정점으로 집중시켜서 상명하복의 제국주의적 조직문화를 공고히 만들어왔습니다.
16.
그러나 독일인들은 자신의 잘못을 반성적 성찰로 승화시켜서 조직의 정점에 집중되어 있는 권력을 해체했습니다. 집중화된 권력을 해체하는 것. 이것을 독일인들은 혁명과 전쟁이라는 쓰라린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냈습니다. 우리도 바로 이 지점에 도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제 명확해졌습니다.
17.
대통령과 장관들이 함께 토의하고 합의해가는 열린 구조의 정부조직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병우 스캔들, 최순실 스캔들, 지금까지 나온 온갖 부정부패의 스캔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는, 조선시대 구중궁궐의 암투와 같습니다. 이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마치 왕궁처럼 설계되어 있는 저 청와대와 그곳에 집중되어 있는 권력을 해체해야 합니다.
17.1.
그래야 생산성과 창의성이 높은 “분권화된 자율적인 조직(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DAO)”을 만들 수 있습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렵고도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해내야 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강력한 제국주의 문화를 가지고 있던 독일은, 피라미드 정점에 집중되어 있던 권력을 어떻게 해체해왔는지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