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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석 May 05. 2019

공수처 설치를 반대하는 금태섭 의원에게

금태섭 의원이 일전에 페북에다 공수처 설치를 반대한다고 발표한 글을 보고, 그 논지가 별로 타당성이 없어보여 반론을 아래와 같이 제기합니다. 박스 안에 쓴 글이 저의 반론입니다.


저는 공수처 설치에 반대합니다.      


그동안 이런저런 기회에 제 입장과 그 이유를 말씀드린 일이 있습니다. 공수처 설치가 검찰개혁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고, 만일 설치에 성공한다면 오히려 개혁과는 반대방향으로 갈 위험성이 큽니다. 


검찰개혁의 골든타임이 지나고 있는데(이미 지났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아직도 마치 공수처 설치 여부라는 하나의 기준에 검찰개혁의 성패가 달린 것처럼 오해하는 분들이 계셔서 제 의견을 정리해서 올립니다. 


(오늘 한겨레신문에 김규원 에디터가 쓴 검찰개혁 관련 칼럼도 제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어서 첨부했습니다. 각론에서는 조금 다르지만 염려는 비슷합니다) 


이론적인 면은 모두 빼고 실질적인 면만을 볼 때 공수처 설치에 반대하는 이유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첫째는 공수처 설치는 새로운 권력기관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수처는 본질상 '사정기구'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께서도 공수처를 '특별사정기관'이라고 말씀하신 일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에 권력기관인 사정기구를 또 하나 만드는데 반대합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사법 과잉', '검찰 과잉'의 문제를 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실 겁니다. 그렇다면 기존의 권력기관의 권한과 힘을 축소하고 제한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또 다른 특별권력기관을 만드는 것은 시대적 과제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권력기관의 증설, 즉 검찰과잉의 문제에 대하여     

→ 공수처는 새로운 권력기관을 증설함으로써 검찰기능을 확대하겠다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압니다. 공수처에는 특정한 직무를 맡은 고위공직자들에게 대한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게끔 하겠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현재의 검찰조직 업무의 상당부문을 떼어 오는 것이어서 기능의 분할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해 보입니다. 검찰업무를 나누어 맡는다는 개념일 뿐입니다. 사정업무의 본질이 크게 변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검찰조직이 고위층 비리에 대해 전혀 손을 쓰지 못하고 권력에 휘둘려왔기 때문이고, 김학의 사건처럼 자체 비리에 대해서는 아예 눈을 감아버렸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정한 직급 이상의 고위 공직자를 수사 및 기소하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는 전 세계 어느 국가에도 없습니다. 최근 패스트 트랙 논의와 관련해서 민주당과 바른미래당 사이에 공수처에 기소권을 주느냐 마느냐를 놓고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것도 선례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지켜지고 있습니다. 전관예우 등 권한남용도 우리처럼 심각한 곳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잘 되고 있는 국가들의 예를 따라서 우리 제도를 고치면 되지 굳이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제도를 만들어서 실험을 할 필요가 무엇입니까?


이렇게 말씀드리면, 그럼 어떤 방법이 있느냐, 글로벌 스탠더드는 무엇이냐, 라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당연히 방법이 있습니다.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입니다. 전 세계 어떤 선진국에서도 대한민국 검찰처럼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는 기관을 운영하지 않습니다. 우리 검찰의 모든 문제가 검찰이 경찰처럼 전면적인 수사에 나서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보면 경찰이 기소권을 행사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검찰에서 수사권을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하면 바로 개혁이 이루어집니다. 모든 선진국이 이런 방식으로 검찰 권력을 통제하고 있는데 왜 우리만 안 된다는 것인지 저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다는 주장에 대하여

→ 우선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건 없습니다. 우리 검찰조직만 이상한 게 아닙니다.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 언론사들이 과연 글로벌 스탠더드인가요? 이런 것들도 역시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닙니다. 아니,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건 아예 없습니다. 세상에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게 어떻게 가능한가요? 나라마다 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검찰의 수사권을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하면 개혁이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결국 검찰만이 기소권을 독점한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렇다면 경찰의 수사를 어떻게 믿을 수 있으며, 경찰과 검찰이 서로 짜웅하면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더 위험합니다.     

지금까지 검찰의 문제는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생겼습니다. 정치권력, 즉 고위공직자들이 검찰조직을 장악한 후, 자신들의 개인적 이익추구활동을 맘껏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명박, 박근혜가 대표적인 사례죠. 검찰이 제대로 역할을 했다면 이명박과 박근혜 같은 불행한 사건이 발생할 수 있었겠습니까? 검찰은 제도적으로 강력한 견제를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공수처가 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사정기관인 공수처가 일단 설치되면 악용될 위험성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저는 문재인 정부에서 공수처가 만들어지더라도 청와대가 악용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도는 선의를 기대하고 설계해서는 안 됩니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박근혜 정부 우병우 민정수석이 있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공수처 설치에 찬성하는 분들은, 검찰 외에 공수처가 있으면 서로 경쟁하면서 국민들에게 봉사할 것이기 때문에 좀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저는 조직 원리를 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강력한 권한을 가진 대통령 중심제 국가입니다. 권력기관들은 본질적으로 청와대를 바라봅니다. 역대 정권은 검찰 하나만 가지고도 막강한 권한을 행사해왔습니다. 공수처라는 권력기관이 하나 더 생기면 이제 양손에 검찰과 공수처를 들고 전횡을 일삼을 위험성이 있습니다.


우병우 민정수석 체제에서 만약 공수처가 있다면 정말 상황이 더 나아졌을까요? 저는 훨씬 더 나빴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어떤 분들은 공수처는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는 기관(!)'이라 정권에 충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수십 년간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게 하는데 실패해왔는데, 무슨 기발한 방법이 있어서 공수처는 그런 착한 기관으로 만들 수 있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방법이 있다면 기존 검찰을 왜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는 기관으로 만들지 않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공수처가 정치권력에 의해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점에 대하여

→ 물론 악용될 소지는 있습니다. 그렇기로 말하면 악용될 소지는 어디 공수처뿐이겠습니까? 심지어 대법원도 악용되었고, 국세청도 악용되었고, 보안사도 악용되었고, 국정원도 악용되고, 감사원도 악용되었습니다. 이제 와서 공수처가 권력자들에 의해 또 악용될 소지가 있으니까 안 된다는 주장은 호소력이 없어 보입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공수처 설치에 반대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공수처는 세계 어느 곳에도 비슷한 예가 없는 조직입니다. 이런 권력기관을 만들려면 최소한 깊이 있는 토론을 벌여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공수처 설치에 반대하면 검찰개혁에 반대하는 것처럼 치부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모습은 대단히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책으로 얻으려는 목표에 투철해야지 특정한 제도 그 자체에 집착하는 것은 부작용만 불러옵니다.


저는 현직 검사 시절 검찰개혁에 관한 글을 기고했다가 쫓겨나다시피 검찰을 나왔습니다. 그 이후 십수 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누구 못지않게 검찰개혁을 주장해왔고 나름 공부도 해왔습니다. 저보다 아는 것이 많고 뛰어난 분들도 많겠지만, 적어도 검찰개혁 문제에 관한 한 저도 얘기를 할 자격이 있고 전문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수처 설치에 대해서 토론을 하고 싶습니다. 공수처와 같은 권력기관의 설치는 매우 중대한 문제이고 적어도 찬반론의 치열한 논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상토론, 방송 등 어떤 형식이라도 환영합니다. 설익고 검증되지 않은 정책에 매달리다가 검찰개혁의 적기를 이렇게 놓친다고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 글에 대한 어떠한 논평도 환영합니다.     


근원적인 문제에 더 심혈을 기울여야

→ 나는 우리 사회의 근원적 문제는 국회구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국민의 의사가 그 비례로 의회에 집결되지 않기 때문에 사회가 갈등의 연속이라는 뜻입니다.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되지 않아 자유한국당 같은 극우정당이 날뛰고 있는 것이죠. 그런 당에서 죽기 살기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반대하고 있는 이유는 현재와 같은 잘못된 국회구성제도에서 과도한 기득권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중요한 이유는, 국회에서 중요한 고위공직자들을 임명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KBS, MBC와 같은 공영방송사들이 상업방송인 jtbc보다 신뢰도가 떨어진 이유가 뭔지 압니까? 정치권력을 가진 자들이 깜도 안 되는 자들을 방송사 사장으로 앉혔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자리를 국회에서 다수당이 추천하여 대통령이 임명하고 있기 때문에 방송사로서의 독립성을 확보할 수 없었습니다. 독일의 의회제도는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시행하기 때문에 선거로 선출할 수 없는 고위공직자들을 의회에서 임명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국민의 의사가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이죠.     

핵심은 국회 구성원리가 잘못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즉 국민의 의사가 그 비례에 따라 의회로 결집되지 못하는 현상 때문에, 고위공직자들이 다수당을 장악한 권력자의 눈치를 보게끔 만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패와 불공정의 근원입니다.    

조직구성의 형태는 나라마다 역사와 문화에 따라 다릅니다. 검찰조직에 수사권을 없애거나 줄이면 된다는 발상도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김학의 사건을 봅시다. 경찰은 과연 믿을 수 있나요? 검찰은 더 큰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검사장 이상을 선거로 뽑을 수도 없지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내 주장은 이렇습니다. 국회구성의 원리가 합리적으로 바뀌기 전까지는,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명실상부하게 실현되기 전까지는, 즉 적어도 지역구 의원 200명, 비례대표의원 200명 등 총 400명 수준의 국회구성이 가능해질 때까지는 모든 것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 사실상 국회의원 50% 이상을 비례대표로 뽑을 수 있을 때 위와 같은 사정기관의 장을 포함한 고위직공무원들을 공정하고 독립적인 인사들로 선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요원하다는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기능을 나누어서 서로 견제와 균형을 잡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이것이 훨씬 효율적인 제도적 장치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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