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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석 Jun 08. 2019

인사혁신처와 청와대 인사수석실 공무원들에게

혁신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인사혁신처와 청와대 인사수석실 공무원들에게... 혁신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공직사회의 인사관리제도에 관해 언젠가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래 보도자료를 보고 인사혁신처가 인사를 혁신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퇴행시키고 있는 것을 보면서 하도 어처구니없어서 급한 대로 우선 몇 자 적어야겠다.     



얼마 전인가, 교육부의 나향욱이라는 고위공무원이 “민중은 개돼지”라고 소신껏 발언했다가 파면되었고, 소송을 통해 복직되었다. 고위급 공직사회의 분위기를 충분히 대변한 발언이었다고 생각한다. 엘리트 의식으로 가득한 고위직들의 집단 무의식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알 수 있는 기회였다. 인사혁신처가 배포한 이 보도자료는 ‘개돼지’라는 표현을 하지 않았을 뿐, 선출직이나 정무직이 아닌 하위직 공무원을 개돼지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나향욱과 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황서종 처장이 말했다는 “특별승진뿐만 아니라 교육훈련, 특별성과 가산금 등 과감한 인센티브를 통해 공무원의 적극행정을 응원할 것”이라는 말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과감한 인센티브로 공무원을 움직이겠다는 발상 자체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특별승진, 특별성과 가산금, 교육훈련 기회 제공 등이라는 당근을 내걸고 그걸 미끼로 적극적으로 일하라는 것이다. 이런 발상이야말로 인간을 짐승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서는 여기여기를 참조


둘째, 더 큰 이유는 인센티브를 통해 일하도록 하려는 시도, 즉 외재적 동기부여(extrinsic motivation)에 관한 교육학, 심리학, 경영학 등의 모든 연구결과는 매우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편지봉투에 풀칠하기와 같은 단순 육체노동의 경우에는 인센티브를 통해 단위 시간당 성과물을 높인다는 결과가 보고되었지만, 공무원과 같은 정신적이고 지적인 노동의 경우에는 오히려 인센티브가 그 업무의 질적·양적 성과를 더 줄어들게 만든다고 결론짓는다. 이에 관한 문헌들이 이미 시중에 많이 나와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그렇지 않은 연구결과가 있다면 내가 한번 보고 싶다. 인사조직부문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은 누구나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인사혁신처장이 이걸 아직도 모르고 있다니 참으로 놀랍다.      


셋째, 아마 이것이 가장 큰 이유일 텐데, 현재 우리나라 공무원 인사평정제도 자체가 신뢰성(reliability)과 타당성(validity)*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떤 분위기에서 인사평가를 했는지에 따라 편차가 매우 크다는 말이다. 더 나아가 〈공무원 성과평가 등에 관한 규정〉에는 평가항목들을 죄다 점수화하도록 했고, 이것을 근무성적평가위원회에서 3개 등급 이상으로 나누어 강제 배분하도록 되어 있다.      


* 신뢰성(reliability)과 타당성(validity)에 대해서는 여기를 참조


우리 행정시스템과 같은 엄격한 명령과 통제, 억압과 착취의 정신 위에서 마련된 인사평정제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공무원들은 잘 알고 있다. 결국 인사고과자에게 충성하는 사람이 좋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어떤 행동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인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상급자의 뜻에 맞춰주는 것이 훌륭한 공무원이 되는 지름길이다. 이걸 모르는 멍청한 공무원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공무원에겐 영혼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모든 공무원들에게 부당한 일에 불복종할 수 있는 의무(obligation to dissent)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 기회에 상세히 언급할 예정이다.)


그래서 이런 불복종 의무가 전혀 없으니 이명박·박근혜 시절 범죄행위에 가담했던 공무원들, 문고리 3인방, 우병우, 조윤선, 김기춘, 안종범 등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공직자들이 탄생하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런 엄격한 상명하복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외교부(외교 비밀 누설), 환경부(가습기 살균제 사실을 기업에 누설), 고용노동부(위험의 외주화 손 놓고 있기), 금융위(삼성 회계 사기 사건 눈감아주기) 등 수많은 공무원들이 부당한 짓을 저지르고 있다.


이런 공직사회의 누수현상들이 인센티브를 내걸면 없어지겠는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우리 행정시스템이 낙후된 원인     


우선 인사혁신처와 청와대 인사수석실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우리나라 행정시스템이 왜 이렇게 낙후되었는지 그 유래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행정제도는 일제강점기에 식민 통치하기 가장 좋은 시스템을 일본인들이 한반도에 이식한 제도다. 모든 것은 명령과 통제, 억압과 착취를 가능케 하는 악랄한 장치들이었다. 이 장치는 철저한 상명하복의 군국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피라미드형 계급질서를 공고히 한 것이었다. 모든 의사결정이 조직의 최정점에 있는 군주와 같은 1인에게 집결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 장치는 결국 모든 권력을 한 사람에게 집중시킨다. 이런 식민 통제를 위한 행정제도의 기본 틀이, 해방 후 이승만 정부에서 그대로 받아들여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우리 행정제도에서 이 억압과 착취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품의제도다. 하위직 공무원이 최초로 품의서(기안서)를 써서 윗사람에게 어찌하오리까 하고 물어본 후 윗사람은 맘에 들면 결재를 해주고 맘에 들지 않으면 눈을 한번 부라리면 된다. 하급자는 다시 윗사람이 원하는 대로 품의서를 수정하여 결재를 받은 후, 그것을 그 윗사람에게 올리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품의제도다. 이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하위직의 자율성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모든 결정은 상위자, 그 상위자, 그 상위자의 상위자로 이어지는 먹이사슬 구조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 방식을 조금이라도 어기면 하급자는 목이 달아난다. 이 불합리한 방식에 이의를 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내가 아는 한, 이런 식으로 일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밖에 없다.      


일본은 패전 후, 억압적인 품의제도를 상당히 유연하게 수정하여 우리보다는 훨씬 합리적인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여전히 품의제도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상급자는 하급자를 얼마든지 쥐락펴락할 수 있는 제도라는 말이다. 합리성이 결여된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공직사회는 그 낙후성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제도에다 인센티브라는 당근을 내세워 공무원들을 서로 경쟁을 시키겠다는 것이 과연 제정신인가?     


그런데 더 한심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미국식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가 물밀 듯이 몰려오면서 우리 사회에는 협력정신은 사라지고 개인적 이익을 위해 서로 경쟁하는 분위기가 만연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억압과 착취의 계급질서 위에 서로 경쟁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식 자본주의가 덧씌워지게 되어 온갖 역기능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우리나라 공직사회를 포함한 기업의 노동환경이 이 지구 상에서 최악의 상황으로 미끄러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인센티브의 역기능     


공직사회에 인센티브가 없었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행정을 펼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공직자들이 자신의 역할(role) 또는 성과책임(accountability)을 명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센티브를 내걸지 않아도 일부 뛰어난 공무원들은 자신의 성과책임(accountability)을 잘 이해하고 누가 뭐라고 하든 상관없이 국민에 대한 봉사 의무를 다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후쿠시마산 수산물 WTO 분쟁에서 승소하도록 이끈 공무원들, EU 화이트리스트 등재를 이끈 공무원들이 그 좋은 예다.(이에 대해서는 여기를 참조)


이런 사례는 매우 칭찬할만하다. 그러나 이들은 누가 가르치거나 명령을 했기 때문에, 더구나 인센티브라는 당근이 걸려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적극적으로 노력한 것이 아니다. 영혼이 있는, 즉 양심이 있는 인간으로서 자신에게 부과된 성과책임(accountability)을 완수한 것뿐이다. 그러한 성취에 대해 칭찬해 주는 것은 옳은 일이지만, 공무원들을 움직이게 하려고 사전에 당근을 내거는 조치야말로 비인간적인 처사다. (이런 좋은 사례를 인사평가에 어떤 방식으로 활용해야 하는지와 같은 STAIRS라는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서는 향후 기회가 닿는 대로 설명할 예정이다.)


공무원들은 철저하게 윗사람의 심기에 따라 움직인다. 선출직, 임명직 고위공직자의 정무와 행정철학, 인간, 조직, 세계를 바라보는 가치관에 따라 하위직 공무원의 업무수행방식은 달라진다. 다시 반복하거니와, 인센티브가 없기 때문에 소극적인 업무수행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고위직 공무원들의 행정철학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하위직도 그렇게 소극행정을 하는 것이다.


끝으로, 인센티브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장기적으로 모든 구성원들에게 공직사회의 협력적 조직문화를 파괴하는 매우 나쁜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더구나 인간에게 성과급이나 승진과 같은 보상은 외재적 동기부여(extrinsic motivation) 요소일 뿐인데, 이것은 고결한 인격을 가진 공직자들(위에서 예로 든, 그래서 대통령도 칭찬한 사례의 공무원들)을 물질적 이익에 따라 경쟁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공직사회마저 “개돼지 우리"와 같은 저급한 행정문화로 추락시키게 된다. 벌써 그런 문화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


그러면 공직사회를 어떻게 개혁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는 기회가 되는 대로 추후 다루겠지만, 우선 급한 대로 인사혁신처와 청와대 인사수석실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이 글에서 말한 내용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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