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하다면 구조조정은 해야 한다
구조조정은 왜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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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구조조정은 온통 노동자들을 대규모로 해고하는 방법만 생각한다.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 심층적인 원인은 생각하지 않고, 그 고통을 온통 노동자들에게 떠넘긴다. 그동안의 이익을 얻어왔던 부자들에게는 별로 고통을 가하지 않는 대규모 노동자 해고를 통한 구조조정은 어떤 경우에도 그 정당성과 타당성을 찾을 수 없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이익도 고통도 함께 나누면서 "더불어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공체적 정신이 실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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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의 대규모 해고 방식은 미국식 주류 경영학이 주장하는 것인데, 세상에는 이런 방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구조조정에 관한 게르만 모형을 간단히 소개하니 참고하기 바란다.
필요하다면 구조조정은 해야 한다. 그러나 그 원인을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기업 또는 산업의 인위적 구조조정을 주기적으로 해왔다.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시장경제 메커니즘이 스스로를 파괴하는 멍청한 짓을 반복하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정리해주어야 한다는 명확한 증거다. 이것은 시장경제 메커니즘이 잘 작동되고 있다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개입하지 않으면 시장경제 자체가 붕괴하고 만다. 그래서 항상 정부가 강제로 개입하여 시장경제를 살려내고, 다시 붕괴 조짐이 있으면 또 정부가 개입하는 일을 지난 백 년간 반복해왔다.
지금 우리 사회도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왜 이렇게 시장경제는 스스로 잘 굴러가지 못하고 번번이 인위적인 구조조정이 있어야만 하는지, 그 경제학적인 논쟁은 집어치우자. 자유시장을 추종하는 경제라는 게 인간의 도덕성을 전제로 하지 않는 한 결국은 인간사회를 파멸로 이끈다는 사실에 관한 논쟁은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나는 시장경제의 효율성에 대해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시장경제가 인류에게 주는 놀라운 창의적 역동성과 혁신에 대해서도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과 같은 무한경쟁위주의 시장경제는 문제가 많다고 본다. 주기적인 구조조정이 이루어져야만 하는 시장경제의 근본 원인은 승자독식 메커니즘 때문이다. 승자독식 제도는 경쟁회사들끼리 서로 죽기 살기로 경쟁하도록 내모는 것인데, 죽지 않기 위해서는 덩치를 키우면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가격을 인하해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공정 가격이라는 용어는 허울뿐이다. 이익률은 점차 떨어지고 경기변동에 적응하기 어려운 공용 같은 조직으로 변한다. 결국 인위적인 구조조정이라는 극약처방을 하지 않으면 기업은 살아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서로 협력하는 패러다임
기업에서 창조적 혁신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기업 내에 유휴자본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 구성원들도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충분한 휴식과 심심해질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창의성이 생긴다. 이렇게 하려면 <서로 경쟁하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서로 협력하는 패러다임>으로 나아가야 한다.
버트런드 러셀은 1935년에 출간한 『게으름에 대한 찬양』(송은경 옮김, 사회평론 2005)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진심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노동'이 미덕이라는 믿음이 현대 사회에 막대한 해를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행복과 번영에 이르는 길은 조직적으로 일을 줄여가는 것이다......
문명이 시작된 이래로 산업혁명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인간은 열심히 일해도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필요한 정도밖에 생산할 수 없었다. 비록 그 아내도 남편 못지않게 열심히 일했고 아이들도 나이가 차는 대로 노동력을 보탰지만 말이다. 최소한의 필요를 웃도는 작은 양의 잉여물이 생긴다 해도 전사나 사제 집단에게 돌아갔다... 기근이 닥칠 때는 전혀 잉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일하는 사람들이 굶어 죽은 반면, 전사와 사제들은 평상시처럼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1917년까지 이러한 체제가 존속했고 동양에는 아직까지 잔존해 있다......
이처럼 오래 유지되어 왔고 종식된 지 얼마 안 된 체제이니만큼 그것이 사람들의 사고와 견해에 깊은 흔적을 남겼으리란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근로의 바람직함과 관련해 당연시 여기고 있는 많은 내용들이 이 체제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이다. 따라서 이것들은 산업 사회 이전의 산물이기 때문에 현대 세계에는 적합하지 않다. 현대의 기술은 여가를 소수 특권 계층만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공동체 전체가 고르게 향유할 수 있는 권리로 만들어 주었다. 노동의 도덕은 노예의 도덕이며 현대 세계는 노예제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옛 혼란으로의 복귀였다. 일하는 사람들은 장시간 일을 해야만 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일자리가 없어 굶어 죽게 방치되었다. 왜? 일은 의무이므로 사람은 그가 생산한 것에 비례해 임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근면성으로 대표되는 그의 미덕에 비례해 임금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노예 국가의 도덕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생겨난 상황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었다. 그러니 결과가 비참한 것은 당연할 수밖에.....
가난한 사람들도 여가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부자들에겐 언제나 충격이었다. 19세기 초 영국에서는 남자의 평일 근로 시간이 15시간이었다. 아이들도 12시간씩 일하는 게 보통이었고 어른만큼 일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루 4시간씩만 일한다면 모두에게 충분한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고 실업이란 것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부자들에겐 충격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여가가 주어지면 어떻게 사용할지도 모를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4시간만 일하면 실업을 없앨 수 있다
이 위대한 철학자의 생각은 아주 간단하다. 인간은 왜 하루 8시간씩 일해야 하는가?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15시간씩 일하던 것이 이제는 8시간 일하도록 규정되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위대한 기계문명의 시대에 4시간만 일하면 안 되는가? 모든 것이 기계화, 자동화되고 있어 어차피 인간의 노동량은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는 마당에 사람 수만큼 필요한 일을 서로 나누어서 하면 실업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러셀의 아이디어는 아주 간단하다. 진리는 늘 이렇게 단순하다.
나는 실제로 러셀의 철학적 사유를 그대로 실천한 예를 소개하고 싶다. 요즘 디젤 스캔들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독일의 폭스바겐(Volkswagen)을 보자. 1990년대 초반 경기침체로 인한 자동차 수요 감소, 일본 자동차의 시장점유율 확대로 사면초가에 몰린 폭스바겐은 설상가상으로 공장자동화의 여파 때문에 상당한 수준의 잉여인력이 발생했다. 12만 명의 노동자 중에서 수만 명을 감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려운 처지에 봉착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와 경영자들은 대화와 토론을 통해 기본 원칙을 정했다. 첫째, 대량해고를 피하고 고용을 보장한다. 둘째,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인건비를 줄인다. 이 원칙은 아주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나타났다.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주당 36시간에서 28.8시간으로 20% 줄였고, 총인건비도 20%를 삭감했다. 인건비 삭감은 갑작스러운 충격을 줄이기 위해 단계적으로 축소했다. 이렇게 노동시간의 유연화, 임금조정, 교대 방식의 변경 등과 같은 합리적 합의과정을 거쳐서 폭스바겐은 회생했다.
지금 해운업과 조선업의 구조조정 논의는 인간을 한낱 자원으로 보는 관점(resource-based view)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러셀과 같은 수준은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노동시간을 줄여 고용을 보장함으로써 모든 노동자들이 다 함께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보다 더 현명한 구조조정 방법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좋은 방법을 왜 거부하는가?
그런데 이렇게 좋은 방법론이 있고 실제로 그것을 실현해서 성공한 사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것이 거부되는가? 이유는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에 대한 부자들의 강력한 저항 때문이다. 누구나 노동자는 최소한 하루 8시간 이상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상위 1%의 최고 부자들(super rich people)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허무맹랑한 아이디어일 뿐이다.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노동시간을 줄여 고용을 보장하는 것은 안 된다는 점을 노동자들에게 세뇌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왜 안 되는지 명확한 이유는 없다. 이에 대해 버트런드 러셀은 다시 이렇게 말한다.
노동시간이 약간 긴 것 같다고,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제넘게 제의했을 때 되돌아온 대답은, 일이 어른들에겐 술을 덜 먹게 하고, 아이들에겐 못된 장난을 덜 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도시 근로자들이 막 투표권을 따낸 직후였는데 몇몇 공휴일이 법으로 정해지자 상류층에서 대단히 분개했다. 나는 한 늙은 공작부인이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가난뱅이들이 휴일에 뭘 한다는 거지? 그 사람들은 '일'을 해야만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