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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이블 Jun 23. 2021

탄산수


<탄산수>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탄산수


방울들이

내 혀를

마구 때리네


입안이 따끔거리도록

뭐 그리 할 말이 많은가


                         - H. Y. S




  이 시는 딸아이가 초등 1학년 때 쓴 시이다. 어릴 때부터 테이블에서 읽고 쓰고 그리는 일이 일상이 된 이 아이는 이런 일상을 '사무실 놀이'라는 이름을 붙여 가끔 나를 '실장님'으로 불러주면서 매일 무슨 보고서 마감을 운운하며 분주해했다. 그 덕분에 엄마인 나는 '카페 놀이'를 접목시켜 음료와 간식을 테이블로 날라다 주는 정도의 액션만으로도 아이와 잘 놀아주는 최고의 엄마가 될 수 있었다. 그때마다 딸아이는 멋진 이야기나 시를 쓴 종이를 각종 도장을 찍어서 내게 '제출'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도 이 아이가 쓴 시의 제목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렇게 시로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가 지나가자 아이의 시도 나의 시도 꽤 쌓였다. 그것을 보고 우리는 <모녀시집>을 한 권 출판해 보자고 의기투합하며 더욱 '사무실 놀이'에 열중했다. 이때만 해도 어린이 책상이란 것을 이용했기에 나의 테이블과 옆에 나란히 배치한 이 아이의 책상은 늘 계단처럼 한 칸 아래에 있어 내 시야 안으로 이 아이가 하는 모든 작업들이 들어왔다. 아이도 그것을 '안정감'으로 느끼며 우리는 눈이 마주칠 때마다 서로 웃거나 힐끗거리는 시늉으로 서로의 작업을 스캔하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초등 3학년이 되면서 드디어 나의 테이블과 똑같은 높이의 책상이 생겼다. 그날부터 딸아이는 우리의 책상 구조를 바꾸었다. 옆으로 나란히가 아니라 서로 마주 보게 붙이고 나름 사무실형으로 배치하고는 나는 '사장님', 딸아이는 스스로를 '부장님'으로 승진시켜 버렸다. 우리의 사업(?)은 꽤나 잘 되는 것처럼 보였다. 딸아이는 책을 보다가도 갑자기, 시디 신 살구를 먹다가도 갑자기, 노래를 부르다가도 갑자기, 신발을 신다가도 갑자기 시를 읊어대거나 노트에 떠오르는 대로 시를 적곤 하였다. 신들린 것이 아니라 시(詩)들린 것이라 해야 옳았다. 나는 그 어느 구절 하나도 휘발시킬 수 없어서 늘 핸드폰 녹음 기능이나 펜슬을 뽑아 일단은 기록을 해두느라 바빴다. 그렇게 모인 딸아이의 시를 나는 따라가지 못했고 결국 노트북 어느 폴더에 쌓인 채 시간은 흘러가 버렸으며 이제 딸아이는 나와 책상을 함께 쓰지도, 붙여 쓰지도 않는 사춘기 소녀가 되었다. 이렇게 브런치 작가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니 그 시절 딸아이의 시들을 하나씩 소환하여 여기에서 시집을 하나 묶어 내놓으면 되겠다는 생각, 게으른 사장님(?)을 믿고 열심히 작품들을 제출해 준 딸아이에게 자신의 저작물을 아무런 보상도 없이 갈취한 엄마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다시는 오지 않을 우리만의 소중한 소통의 기억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모녀시집>을 기획해 본다. 무엇이 될지는 일단 실을 뽑아보자.



<탄산수>


별 일곱 개가 그려진

초록 음료병


어릴 때

처음으로 마셔본

탄산음료


초록 음료가

꿀꿀꿀

목으로 넘어가는 소리


어릴 때

먹고 나면

어김없이

저승사자 입술색이 되던

죠스바의 기억

두 번은 아니 먹던 기억


앗,

내 목이

둘리처럼

초록색이 되는 걸까


깜짝 놀라

숨이 반박자 늦었다

켁켁켁

목에 걸린 소리


입으로

코로

뿜어져 나온 건

투명한 사이다


내 입과 코와 목이

폭파된 뒤에야 알게 된

초록 음료병의 비밀


지금은

어린 딸아이가

초록 음료를

뽀끔 뽀끔

마신다


앗,

따가워

어쩐지

별이 많더라


                  - 테이블


  **딸아이도 나도 생애 첫 사이다의 기억을 갖고 있었다. 다른 듯 비슷했던 우리 모녀의 첫 사이다 기억.


<사진출처> https://xaxo.tistory.com/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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