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또다시 충돌이 벌어졌고, 전쟁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10일부터 공습하고 있다. 2008년 말~2009년 초 가자 전쟁으로 팔레스타인인 1400여명이 사망했다. 2014년에도 가자지구를 공격해 이스라엘군 60여명이 숨지고 팔레스타인인 2300여명이 사망했다. 그후 7년만에 다시 비극이 일어나려 한다. 14일에는 이스라엘 지상군도 가자지구에 들어갔다. 예비군 7000명도 대기중이라고 한다. 말이 좋아 '충돌'이지, 군사력 차이가 크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측 희생이 이번에도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양측 전투력의 비대칭을 생각하면 ‘전쟁’이라 부르기도 부적절하다.
이미 14일까지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100명이 넘었다. 그 중 어린이들과 여성이 40명 가까이 된다. 이스라엘군은 '테러집단 표적'을 공격해 무장세력들을 사살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늘 그렇듯 민간인 거주지역도 공격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이 11일에는 전투기 80대를 동시에 띄워서 대대적인 공습을 하면서 13층 아파트를 타격했다. 가자지구에서 사실상 정부 역할을 해온 무장정치조직 하마스 지도부와 이스라엘 교도소에서 풀려난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이스라엘은 주장하지만 명백한 민간인 주택이다.
[예루살렘포스트] Israel keeps up pressure on Hamas with non-stop bombings of Gaza
하마스는 국경 너머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포 1600여발을 발사했다. 하지만 이스라엘로 넘어간 것들 가운데 90%는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첨단요격시스템 ‘아이언돔’에 요격됐다. 다만 로켓포 일부는 가자지구와 인접한 이스라엘 국경지대가 아니라 예루살렘을 겨냥했고 이스라엘은 크게 충격받은 분위기다.
처음에 긴장이 고조된 곳은 가자지구가 아닌 예루살렘이었다.
이-팔 상황은 복잡하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있고, 팔레스타인이라는 나라가 있다. 다만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을 사이에 두고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가 물리적으로 나뉘어 있다. 이스라엘이 통과시켜주지 않으면 양쪽을 오가지도 못한다. 자치정부가 있는 팔레스타인 중심지역은 서안지구다. 반면 이스라엘과 주로 충돌하는 것은 자치정부가 아니라 하마스가 정부 역할을 하는 가자지구다. 지중해에 면해 있고 이스라엘, 이집트와 맞댄 작은 땅. 이스라엘이 모든 걸 막고 억압하고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큰 감옥’ ‘세계에서 가장 큰 난민촌’이라 불린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과 서안지구 양쪽에 걸쳐져 있다. 두 나라 다 예루살렘은 자기네 수도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해법은 서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이 갖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전쟁 때 동예루살렘까지 점령했다. 유엔이 반환하라 해도 거부하며 불법 점령을 계속하고 있어 이로 인한 갈등이 풀리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텔아비브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요르단강 서안의 라말라를 사실상의 수도로 삼아왔다. 그런데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땅이라는 인증을 해주는 모양새를 보여 거센 반발을 샀었다.
이스라엘인들은 동예루살렘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몰아내고 땅을 빼앗아왔다. 최근 문제가 된 셰이크 자라라는 지역이 있다. 동예루살렘의 주거지인데, 유대인들이 소송을 내서 빼앗으려고 하자 아랍계 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그러던 차에, 알아크사 모스크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알아크사 사원은 성전산(템플마운트)이라고도 하는데 유대교-기독교-이슬람 3대 종교의 성지다. 무슬림 입장에선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와 메디나에 이은 세번째 성지이기도 하다. 2000년 이스라엘의 강경파 정치인 아리엘 샤론이 아랍계의 반발이 예상되는데도 의도적으로 알아크사를 방문했고, 팔레스타인의 봉기가 일어났다. 그 덕분에(!) 샤론은 총리가 됐다.
지난 7일 이 사원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라마단 금식성월의 마지막 금요예배를 했다. 일부는 예배 뒤 하마스 깃발을 흔들며 반이스라엘 시위를 벌였다. 경찰이 폭력적으로 진압, 200명 가까이 다쳤다. 그러자 하마스는 10일 이에 항의하며 로켓포를 쏘기 시작했고, 이스라엘이 보복 공습에 나서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예루살렘포스트에 따르면 13일에는 10만명 가까운 팔레스타인인들이 템플마운트에 모여 라마단이 끝나는 것을 기념하는 이드알피트르 축제를 하고 “가자에 승리를”을 외치는 집회를 했다. 가자의 인명피해가 무엇보다 문제이긴 하지만 이스라엘 내부와 예루살렘 상황도 심상찮아 보인다.
1948년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세워졌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망명 조직들운 요르단, 레바논, 이집트 등에서 반이스라엘 투쟁을 벌였다. 그러다가 쫓겨난 팔레스타인인들이 좁은 땅에 몰려 살던 가자지구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에 태어나, 날 때부터 억압 속에서 난민 처지로 자라온 젊은 세대들이 1980년대에 거센 반이스라엘 봉기를 일으킨 것이다. 이 때 세력을 얻은 것이 하마스였다. 이들은 '망명 정치인'들이 중심이 된 PLO와 결이 달랐다.
1993년 미국의 중재로 체결된 '오슬로 협정'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구성됐고 반쪽이긴 하지만 어쨌든 자치국가가 세워졌다. 그러나 서안지구의 자치정부를 장악해 협상의 결실을 독식한 것은 주로 PLO를 이끌던 '망명 세력'이었으며 가자지구는 예나 지금이나 극단적인 소외와 억압과 봉쇄에 시달리고 있다. 1980년대 말의 저항을 1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봉기)라고 부르며, 2000년 알아크사 충돌로 일어난 봉기를 2차 인티파다라 한다.
이스라엘 언론들은 이제 '3차 인티파다'가 일어나는 것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동예루살렘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도 있지만, 이스라엘 국민인 아랍계도 190만명에 이른다. 2018년 통계를 보면 이스라엘 인구 880만명 중 74%는 유대인이고 아랍계는 21% 정도다. 아랍계 정당도 있고 명목상으로는 똑같은 시민권을 갖고 있지만 아랍계는 이스라엘 내부의 2등 국민 취급을 받아왔다. 고질적 차별에 빈곤도 심하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지난 10여년 동안 계속 극우화하면서 아랍계 인구가 늘어나는 것을 경계해왔고, 아랍계를 겨냥한 유대인들의 증오범죄도 적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Arab Israelis are rising up to protest.
이번 가자 공격 뒤 이스라엘 내 유대인과 아랍인의 적대감이 폭발하는 것 같다. 텔아비브 외곽에서 유대계가 아랍계 1명을 집단폭행하는 영상이 현지 방송에 중계됐다. 곳곳에서 아랍계 상점들의 유리창이 부서졌다. 반면 북부 아크레라는 곳에서는 아랍계가 유대인 1명을 집단폭행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아랍계가 많이 사는 도시 로드에 군까지 투입했다. 일각에선 '내전' 우려까지 나온다.
강경파 네타냐후 총리는 1990년대 말 3년 동안 집권했고 2009년 다시 총리가 돼 지금껏 재임 중이다. 그런데 수뢰, 배임, 사기 등 부패혐의로 기소돼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다.
이스라엘 의회 크네셋은 의석이 200석인데 늘 지배적인 정당 없이 여러 정당들이 난립한다. 네타냐후의 리쿠드당이 30석 정도를 갖고 있다. 나머지 의석은 샤스당, 청백당, 예시아티드(미래는 있다)당, 야미나당 등등 20개 가까운 정당들이 나눠가졌다. 네타냐후의 장기집권에 대한 반발이 크지만 그렇다고 다른 정당들이 연정을 구성하지도 못해, 2년 새 네 차례나 총선을 치렀다. 지난 3월 선거 뒤 반네타냐후 진영이 연대를 추진했으나 가자 전쟁이 일어나니 이합집산의 양상이 또 바뀌는 모양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어디로 갈까
가자 전쟁은 언제나 데자뷔다. 이번에도 국제사회 대응은 미국에 가로막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10일과 12일 두 차례 긴급회의를 했으나 공동성명을 채택하지 못했다. 15개 이사국 중 14개국이 찬성했는데 상임이사국인 미국이 반대한 것이다. 미국은 “안보리 긴급회의를 소집한 것만으로도 이-팔 충돌에 대한 우려는 전달할 수 있으며 공동성명은 갈등을 누그러뜨리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고 AFP 등은 보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2일 네타냐후 총리와 통화하고, 이스라엘을 편드는 보도자료를 냈다. “하마스 등 테러집단들의 로켓 공격을 규탄"하며 이스라엘의 방어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도 테러조직 하마스가 로켓을 쏘는 것과 이스라엘의 자기방어는 다르다면서 쉴드를 쳐줬다. 중국, 노르웨이, 튀니지가 14일에 다시 안보리 회의를 하자고 했는데 미국이 이것도 반대해, 16일로 화상회의가 미뤄졌다.
[VOX] Trump’s signature Israel policy had a key flaw. We’re seeing it now.
미국은 트럼프 정부 시절에 트럼프 사위 재러드 쿠슈너의 주도로 오슬로 협정의 '두 국가 해법(이-팔 두 나라의 공존)'을 무력화했다. 이스라엘이 원하는 영토를 거의 다 갖게 해주는 대신에, 팔레스타인에는 돈을 주겠다고 했다. 팔레스타인이 명실상부한 독립국가를 건설하는 길을 막으면서, 이것이 ‘역사적인 합의’라고 자찬했다. 트럼프 정부는 이스라엘을 한껏 편들면서,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의 수교를 돕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시절의 구상은 결국 이번 충돌에서 보이듯 팔레스타인의 분노를 더욱 부추겼다.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대량살상을 저지르면 아랍과 이스라엘의 화해무드도 다시 얼어붙을 수 있다.
[BBC] Israel-Gaza: Conflict stalls Arab-Israeli rapprochement
예루살렘도 불법 정착촌도 이스라엘 땅? 트럼프의 새 중동평화구상
바이든 정부는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가 깨뜨린 이란 핵합의를 되살리기 위한 협상을 이미 시작했다. 오바마 정부의 이란 핵합의 뒤 이스라엘과 미국의 관계는 확연히 틀어졌다. 이스라엘은 이번에도 이란이 하마스에 공격용 드론을 지원해주고 있다며 이란을 비난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로서는 어떻게든 이스라엘을 달래야 한다.
미국이 안보리 성명을 막아가며 이스라엘을 편들고 있다 해도, 이스라엘 측에서 보기에 버락 오바마 정부 이래 미국의 입장은 이-팔 사이에서 '중간'으로 많이 이동해 간 것이었다. 이란 핵협상을 재개한 것뿐 아니라, 바이든 정부는 전임 행정부의 친이스라엘 일변도 정책과 선을 그어왔다. 트럼프는 대통령에 취임하기도 전에 주이스라엘 대사부터 지명했는데, 바이든 정부는 아직 대사를 임명하지도 않았다. 이란 핵협상이 중심이고, 이-팔 분쟁은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음을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당장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측에 자제를 요구하는 것 자체를 놓고, 이스라엘은 "테러집단과 우리를 동격으로 보느냐"며 반발하는 실정이다. 미국이 저렇게 옹호해줬는데도 길라드 에르단 주미 이스라엘 대사는 트위터에 "미사일과 로켓을 발사하는 선동가, 테러리스트 조직과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같은 메시지에 담는" 미 국무부 성명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이번 가자 공격으로 세계의 반이스라엘 정서는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터키 등은 이스라엘을 맹비난했고 독일에서는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항의시위가 벌어졌다. 미국 내에서도 의원 25명이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 셰이크 자라의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도록 미국이 압력을 넣어야 한다'는 공동서한을 국무부에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