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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탱볼에세이 Feb 16. 2024

시골 캥거루 반년차 소감

독립보다 중요한 것은

 19-34 청년층 2명 중 1명은 캥거루족이란다. 나도 작년 8월부터 캥거루가 되었다. 작년 초 퇴사 후 반년 간 여행 다녀온 후, 시골로 내려왔기 때문. 부모님이 귀촌하신 완주로 내려온 지도 어느새 반년이 지났다.


 친구들은 혼자 살다가 부모님이랑 살면 안 불편하냐고, 도시에 살다가 시골에 살면 안 답답하냐고 많이들 궁금해한다. 이 동네엔 편의점 2곳, 카페 4곳, 식당 6곳이 전부다. 쿠팡프레시와 배달의민족이 되지 않는 생활도 꽤 익숙해졌다. 시내를 나가려면 버스를 두 번이나 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골에서 캥거루로 사는 건 장점이 많다. 우선 끼니때를 서로 챙길 식구가 있다. 혼자서 아침 점심 저녁 삼시 세끼를 다 챙겨 먹은 적이 있었던가. 가족과 살면 아침을 먹으며 점심메뉴 고민하고, 점심 먹으며 저녁메뉴를 고민한다. 일주일에 꼭 한 번은 치킨을 먹었던 지난날들이여 안녕. 배달음식은 시켜 먹을 일이 없어서, 제법 건강해져 간다.


 둘째로 문득문득 깜짝 손님이 찾아온다. 집에만 있어도 어른들을 마주할 기회가 생기는 것. 20대 내내 독립해서 살았기에 대부분 초면인 분들이다. 덕분에 커피를 내릴 일이 생긴다. 어른들의 대화를 들으며, 나의 세상이 자연스레 넓어진다.


 셋째로 장롱면허인 사람도 운전을 하게 된다. 도시에 살 땐, 대중교통 타는 게 편해서 차가 있어도 주차장에 모셔만 뒀다. 시골에선 여길 벗어나기 위해 내 차가 꼭 필요하다. 물론 타지인인 내겐 집 나가면 고생이라 집에 차를 모셔두는 일이 많고, 주차는 여전히 어렵다.

 

 넷째로 과일을 먹는다. 최근엔 샤인머스캣과 천혜향을 실컷 먹었다. 혼자 살았다면 과일은 음식물쓰레기 나오고, 가격도 비싸서 안 먹었을 텐데. 호사다. 식구가 많으니 음식쓰레기가 별로 나오지 않는다. 음식물쓰레기가 나와도 집 앞 텃밭에 바로 거름 주면 되니 걱정 없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나는 독립했다. 가족과 떨어져 연고 없는 부산에서 학교를 드니며 자취를 시작했다. 독일에서 1년 동안 교환학생하면서, 말이 안 통하는 곳에서도 생존하는 법을 배웠다. 20대 내내 독립하는 것에 익숙했고, 어찌 보면 당연했다. 친구 캥거루들을 보며 항상 독립을 권했다.


 나이가 서른이다 보니, 올해만 친구들이 여덟 명이나 결혼한다. 부모님 품을 벗어나 자기만의 가정을 꾸리는 친구들을 응원한다. 부모님 품을 벗어나보니 매달 드는 대출이자, 생활비, 관리비가 피부로 와닿는다고 한다. 부모님이 반찬 챙겨주시면 열심히 챙긴다고 하고. 집안 살림할 게 이렇게나 많았는지 몰랐단다.


 캥거루족 뉴스 기사를 보면 독립을 울부짖는 댓글로 가득하다. 나도 독립을 하는 것이 멋진 어른이라고 생각했기에, 빠른 독립을 원했고 이뤘다. 사회적, 경제적 독립을 열심히 해보고 캥거루가 된 입장에서 틀린 삶은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캥거루로 살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다.


 사실은 부모님의 품을 느낄 수 있을 때, 충분히 느끼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시골 캥거루가 되며 그동안 몰랐던 부모님의 생각을 가까이에서 알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내가 부모님의 면면을 뼛속깊이 닮았음을 자주  실감한다. 사소한 말장난 하나에도, 방귀소리 하나에도 서로 웃기도 씩씩거리기도 하는 지금을 잘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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