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입자다 1

by 변희영

내가 살고 있는 집의 세입자는 나다. 아니 우리 가족이다. 우리 부부의 나이는 오십대 중반이다. 그 말인 즉슨, 은퇴가 코앞인데 여태까지 무주택자로 살고 있단 얘기다. 참으로 궁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가 그 나이 되도록 뭘했길래 집 한 채 못 샀냐고 한다면, '지금까지 한순간도 경제활동에 소홀한 적이 없다.' 항변할 수 있지만, 그런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억울하고 기막히지만, '무주택자' 신세가 달라지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된 한 가지는 어떤 억울함도 당사자에게만 순결한 감정이라는 것이다. 타인들은 내 억울함을 동정할지언정 순수하게 공감하지 못한다. 그들의 눈에 나의 억울함은 불쌍한 자의 불타는 변명 정도로만 해석될 뿐인 것이다. 뭐, 사실 그렇지 않은가. 나를 대신하는 나란 존재는 세상에 없을 터이니 말이다. 내가 되지 않는 한 아무도 나를 '순결하게'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오기 전에는 낡은 아파트에서 전세 살이를 했다. 삼십 년이 훌쩍 넘은 아파트의 위용은 대단했다. 수도에서 녹물이 핏물처럼 콸콸 쏟아지거나 다채로운 곤충과 벌레류가 동침과 동행을 강요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발이 수염처럼 달린 벌레가 흐물흐물 기어다니거나, 툭! 소리에 돌아보면 등이 까맣고 철갑처럼 딱딱한, 바퀴 벌레인 듯 아닌 듯한 (카프카의 변신 속 그것 같은) 벌레가 떨어져 있곤 했다. 웃긴 건 뭐냐면, 발을 헛디뎌 낙상한 게 분명한 벌레가 비명 지르며 뒷걸음치는 나보다 오히려 놀라곤 한다는 점이다. 부들부들 떨며 나뒹굴다가 몸을 일으켜 도망치다가 문득 미끄러지길 반복하는, 세상 멍청한 벌레를 만나는 신비로운 경험도 적지 않았다. 그것뿐인가. 겨울이면 창틀 사이사이로 칼바람이 쑤시고 들어와 우리들 등골을 격렬히 쑤셔댄 것은 낡은 아파트가 선사한 덤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 아파트가 좋았다. 일단 교통이 편리했다. 역세권 중 초역세권이었다. 집 현관문에서 지하철 역사까지 오 분이면 충분했다. 군데 군데 칠이 벗겨지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삼 층짜리 아파트 상가는 더욱 좋았다. 그곳에는 세입자로 살아온 지난 십 여년 간의 추억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스노우맨'을 닮은, 몸도 얼굴도 마음마저도 동글동글한 의사가 운영하는 병원이며 그럴듯한 말로 호객행위하던 자칭 '총각'들의 과일 가게며,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돈이 생기면 큰 마음 먹고 출입하던(명장인가 하는 아저씨가 빵을 만드는) 베이커리도 그곳에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봄이면 아파트 전체를 그물처럼 둘러싸던 만개한 벚꽃이 눈부셨고 가을이면 아파트 바닥을 노랗게 덧칠하던 낙엽의 붓질이 눈물겹던 곳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곳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은 부모님 때문이었다. 그곳에는 아파트처럼 매일 낡아가는 내 부모님도 살고 계셨다.


친정집 현관 앞에는 삼십 년 우뚝했던 벚나무가 있었다. 벚꽃이 풍성하기로 아파트 전체에서 그 나무만한 것이 없었다. 나무가 아기를 낳는다면 이 벚나무가 다산의 상징이 됐을 거라며 혼자 실실 웃었던 기억도 있다. 낡아가는 아파트와 늙어가는 부모님 옆에서 오래돼 우뚝한 벚나무 조합은 상서로웠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것이었다. 벚나무가 태풍의 칼춤에 꺾어지던 날, 나는 거대한 상실 앞에 치를 떨었다. 그건 슬픔이라기보단 분노에 가까웠다. 삶을 견딘다는 것이 고통이나 슬픔이 아닌 분노를 견뎌내는 것임을, 나는 그때야 비로소 깨달았다. 분노는 감전된 몸통의 상흔처럼 오래도록 남았지만 세월은 무심히 또 흘렀다. 그리고 어느 봄날, 기적처럼 벚나무 가지에서 싹이 움트기 시작했다. 나는 낡아가는 오래된 아파트에서 벚나무 가지 새싹 같은 아이를 키웠다.


아이가 자라면서 아파트 담벼락엔 수많은 실금이 생겼다. 입주자 대표들은 서둘러 아파트 페인트 공사를 시행했다. 오래지 않아 무늬만 새로워진 아파트 외관에 보란 듯이 또 균열이 생겼다. 균열은 낼름낼름 혓바닥을 내밀며 그것을 감추려는 주민을 조롱하는 듯 번져 나갔다. 그 즈음 친정 엄마의 몸 깊은 곳에도 균열이 생겼다. 그러나 외관은 너무도 멀쩡했기에 우리는 오래도록 몰랐다. 내 아이는 태풍 맞은 벚나무 새싹처럼 씩씩하게 자랐고, 아이가 다 성장했을 때 엄마의 균열은 엄마를 지탱하지 못하고 쩍 갈라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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