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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소설) 2 왕버들 춤출 때

(2)위험한 모험

'휴우!'

나도모르게 짧은 한숨이 입밖으로 새어나왔다. 인적이 드문곳이라 사람들에게 들킬 확률은 적었지만 가끔씩 이웃집 아저씨가 지게를 짊어지고 이곳을 지나다녔기때문에 촉각을 곤두세워야만 했다. 그런데 정말 조심해야 할 사람은 바로 아빠였다. 만약 아빠가 담장 위에 있는 나를 본다면 지난번 동네 공용창고에서 벌어진 사건을 빌미로 다시는 높은 곳에 오르지 못하도록 엄포를 놓을게 분명했다.


사건이 벌어진 그날, 나는 그곳에 있던 어른들을 예상치못한 방법으로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날은 일년에 몇 차례만 창고문이 열리는 특별한 날이기도 했다. 그 기회를 놓칠세라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아빠를 따라 창고안으로 쏙 들어갔다.


언젠가 창고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놀다가 창고 안이 무척 궁금해진 적이 있었다. 평소에도 그곳을 중심으로 아이들과 숨박꼭질, 나이먹기등을 자주 했지만 한번도 들어가보질 못했기때문에 그 궁금증은 솜사탕처럼 잔뜩 부풀어 있는 상태였다. 열리지 않을 걸 뻔히 알면서도 나는 손을 뻗어 철문을 힘껏 끌어당겨보았다. 그 순간 양쪽 철문이 삐끄덕거리며 소리를 내더니 조금씩 틈이 벌어지면서 앞으로 살짝 삐져나오는 것이었다. 그 틈 사이로 나는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대었다. 밝은 대낮인데도 창고안은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얼마동안 그렇게 어둠과 대면하다가 갑작스레 나타난 흉물스런 귀신과 눈이라도 마주칠까봐 두려운 나머지 그곳을 황급히 도망쳐나오고 말았었다.


그토록 궁금했던 창고 안이 텅텅 비어있을 줄이야.곳곳에 나무판자 몇 개만 널부러져 있을 뿐 넓은 공간은 휑하기만 했다. 몇 발자국 뛰어다녔을 뿐인데 검정 고무신은 금새 뿌연 먼지로 뒤덮혔다. 그래도 마냥 좋아서 나는 흥분한 망아지처럼 창고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그 사이 어른들은 쌀가마니를 어깨에 들쳐매고 창고 안으로 부지런히 나르기 시작했다. 추수한 쌀가마니는 수매가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동네 공용창고에 차곡차곡 쌓였다가 한꺼번에 모두 빠져나갈 예정이었다.

"저리 비켜라. 다친다."

쌀가마니 위를 오르내리는 내가 거슬렸는지 보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내뱉고 지나갔다. 그때 나는 한 줄씩 높아지는 쌀가마니 위를 오르내리는 재미에 푹 빠져서 어른들 말은 귀에 들리지 않았다.


창고 절반이 쌀가마니로 채워져 갈 무렵, 나는 산처럼 높아진 쌀가마니를 올려다보며 꼭대기까지 꼭 오르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 어른들은 아빠를 중심으로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쌀가마니 쌓는 일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나는 어른들 시선을 피해 제일 한적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목표를 정하면 방법은 있게 마련이었다. 그 방법을 찾아내는 일은 오로지 내 몫이었다. 때론 어른들의 도움조차도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 세계에서는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었다.


나는 오르기전, 거대한 성처럼 보이는 쌀가마니를 한번 쭉 훑어본 뒤 검정 고무신을 벗었다. 한 발씩 쌀가마니를 딛고 오를때마다 양손은 머리위에 있는 쌀가마니 모서리를 단단히 붙잡았다. 그리고 미끄러지지 않도록 군데군데 보이는 작은 공간에 발가락을 끼워넣고 몸을 잽싸게 위로 끌어올렸다. 몇 번씩 미끄러지기는 했으나 꼭대기까지 오르는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꼭대기에 다다르자 이번엔 천정을 가로지는 큰 대들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친김에 나는 대들보까지 오르기로 했다. 대들보에 두 팔을 걸어 대롱대롱 매달리다가 다리를 힘껏 쳐들어 금새 그 위로 몸을 세우며 걸터앉았다. 그 기쁨의 순간을 느낄

찰나에 어디선거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메 오메 쟈좀 봐! 겁도 없이 어떻게 저길

올라갔디야."

"대들보에 있는 애기가 지금 여울이 아녀?"

삼삼오오 몰려든 어른들은 모두 입을 벌리고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여울아! 조심해서 내려와라. 떨어질 수도 있으니

조심해서 내려와야 한다."

허겁지겁 달려온 아빠는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이르듯 나에게 말했다. 나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높은 곳에서 어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있으려니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대들보에서 바닥으로 미끄러지듯 단숨에 내려왔다. 이 일이 있은 후로 나는 높은 곳에 오르려면 어른들의 시선을 피하는것이 서로에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꼬르륵'

조금 전, 학교에 갔다오자마자 허기진 배를 깜박 부스러기로 대충 때우고 났더니 배고픔이 더 강렬해졌다. 홍시를 따먹을 심산으로 뒤안에 있는 감나무   아래로 곧장 달려가보았으나 간짓대로 가지들만 실컷 들쑤셔놓고서 결국 허탕만 치고 돌아왔다. 어제 먹었던 홍시 한 개가 마지막이었으니 이제 이 기억이 잊혀질때쯤이면 나머지 감들도 그 사이에 붉은 옷을 걸치고서 나를 반겨줄 것이다.


나는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미 깨져버린 기왓장은 미련없이 발로 툭 쳐내어 담장아래로 떨어뜨렸다. 수십 년 동안 기왓장에 억눌려 지내온 누런 속살이 세상밖으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빛때문인지 기왓장 속에 숨어 있던 벌레들이 순식간에 다른 기왓장속으로 몸을 숨겼다.


담장위에서는 허리를 약간 구부리는것이 걷기에 훨씬 수월했다. 처음보다 균형잡기도 훨씬 수월했다. 담장끝에 이르자 나는 위를 올려다보며 혼잣말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번엔 지붕이군!'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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