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로 샤케드는 아몬드를 뜻한다. 고대 사람들은 아몬드를 매우 귀하게 여기며 다양한 용도로 사용했다. 영양과 실용적 가치로 인해 쓰임이 다양했던 것으로 보인다. 생명과 부활을 상징하는 나무로 여러 고대 문화에서 신성한 열매로 여겼는데, 특히 이스라엘 문화에서는 신속함과 깨어있음, 그리고 생명을 상징했다.
민수기 17장 8절에 아몬드 나무가 등장한다. 한글 성경에는 살구나무로 표기되어 있지만, 이는 번역 오류로 간주되며 아몬드를 의미한다. 하나님이 아론에게 권위를 주기 위해 생명 없는 지팡이에 아몬드 꽃과 열매가 열리게 한 장면이다.
아몬드 나무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나무로 겨울이 끝나고 봄이 왔음을 알린다. 보통 1~2월에 가장 먼저 개화한다. 언뜻 보면 벚꽃과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다르다. 아몬드 꽃은 꽃잎이 통통하고 듬성듬성 피며 비교적 꽃잎이 큰 편이다. 반면 벚꽃은 3월 말에서 4월 초에 피며 꽃잎이 얇고 가지에 집중해서 핀다. 품종에 따라 흰색에서 진분홍색까지 다양하다.
아몬드는 생명과 부활을 상징한다. 가장 먼저 꽃을 피우기 때문에 생명력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몬드의 히브리어 '샤케드(שָׁקֵד)'는 '깨어 있다, 지켜본다'는 의미를 가진 동사 '샤카드(שָׁקַד)'와 어원을 공유한다. 이 언어적 연결은 아몬드를 새벽을 깨우는 나무, 혹은 하나님의 눈길 아래 가장 먼저 반응하는 존재라는 상징으로 발전시켰다. 그래서 신속함과 깨어있음은 하나님이 깨어서 그의 뜻을 이루신다는 상징으로 성경에 자주 등장한다.
예레미야 1장 11~12절에도 아몬드 나무가 나온다. 여기서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지켜 이루심을 상징한다. 예레미야가 아몬드 가지가 보인다고 대답하자, 하나님은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라고 말씀한다. 히브리어로 아몬드 나무를 뜻하는 샤케드와 '지켜본다'는 뜻의 샤카드의 발음 유사성을 이용한 언어유희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이른 시기에 확실하게 성취될 것임을 강조한다.
민수기 17장 8절에서는 죽은 지팡이에 아몬드 열매가 맺게 하는 기적으로 하나님의 생명력과 능력을 나타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누구를 제사장으로 세워야 하는지를 두고 혼란에 빠졌을 때, 하나님은 열두 지파의 지팡이를 성막 안에 두게 했다. 그 가운데 아론의 지팡이에서만 아몬드꽃이 피고 열매까지 맺게 되었는데, 이는 제사장직의 신적 정당성을 선언하는 상징적 장면으로 기록된다. 아몬드가 이 장면에서 선택된 이유는 조기 개화의 특성 때문이다. 아주 짧은 시간 안에 꽃과 열매가 동시에 나타나는 아몬드 특유의 속성은 "하나님의 선택은 즉각적이며 명확하다"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아론의 지팡이는 이후 언약궤와 함께 제사장 권위의 증거물로 간주되었다.
출애굽기 25장에는 하나님이 성막 안에 있는 금 등잔대를 아몬드 꽃을 형상화해서 만들라고 명령한 부분이 나온다. 등잔대(메노라)의 잔과 꽃 장식은 아몬드 꽃의 형상으로 제작되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성소에 항상 임재하시며 이스라엘 백성을 깨어 주목하고 지켜보신다는 의미를 상징적으로 전달한다. 등잔대의 디자인에 아몬드 꽃이 새겨진 것은 빛과 생명, 그리고 깨어있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랍비 전통에서는 아론의 지팡이에 핀 아몬드를 단순한 권위의 표식 이상으로 해석했다. 어떤 전승에 따르면 아몬드꽃의 구조는 성막의 등잔대(메노라)의 형식을 연상시키며, 빛과 계시의 통로를 상징한다고 여겨졌다. 또 다른 유대 전승에서는 아몬드가 '영적 성숙의 속도'를 은유한다고 보았다. 남들보다 일찍 피고 일찍 열매 맺는 나무의 속성이 영적 각성이나 계시 체험의 빠른 깨달음을 상징한다는 해석이다.
아몬드는 종교적으로 신성시되고 귀한 의미를 부여받았는데, 그 근거는 가치 있는 쓰임새 때문일 것이다. 우선 식용으로 고단백, 고에너지 식품으로 활용되었다. 아몬드에는 단백질과 지방, 그리고 비타민 E가 풍부해 오랜 시간 보존이 가능하면서도 건강을 유지하는 중요한 식량으로 활용되었다. 장거리 여행할 때 비상식량으로 적합했다.
식용뿐만 아니라 아몬드에서 기름을 짜내어 음식 조리는 물론 피부 보호에도 활용했으며 등불의 연료로도 사용되었다. 아몬드 오일은 향유의 기반이 되었고, 여성들의 피부를 보호하는 화장 재료로도 쓰였다. 위장병이나 소화를 돕는 치료제로 쓰인 것은 물론 피부나 상처 치료에 사용하기 위해 아몬드 기름을 바르기도 했다.
아몬드는 성경 시대 팔레스타인·시리아·메소포타미아 전역에서 귀한 작물로 취급되었다. 척박한 땅에서도 자라는 생명력과 풍부한 영양가 때문에 왕가의 식탁이나 제의적 음식에 자주 등장했다. 고대에는 생산량이 적고 귀해서 특권층이나 부유층에 한정해서 소비되었다. 고대 이스라엘과 근동 지역에서는 왕족과 귀족의 식탁에만 올려졌다. 창세기 43장을 보면 야곱이 아들들을 통해 이집트 총리에게 선물을 보낼 때도 아몬드를 상납한 구절이 나온다.
로마 제국 시대에는 팔레스타인 지방의 아몬드가 귀한 수입품으로 취급되며 귀족들의 선물 문화에 포함되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성전 파괴 이전의 예루살렘 시장에서 아몬드가 왕족과 사제계급의 주요 환대 음식으로 사용되었다고 기록한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아몬드를 '부활의 상징'으로도 보았다. 딱딱한 껍질을 깨고 드러나는 하얀 씨앗의 구조가 죽음 속에서 드러나는 새 생명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카타콤의 벽화나 초기 성상에서는 종종 아기 예수를 감싸는 아몬드 형태의 광배(만도를 라)가 등장하는데, 이는 신성한 존재가 세상에 도래할 때 나타나는 빛의 영역을 표현한 것이다. 아몬드 모양의 광배는 이후 중세 서방 교회에서 신적 공간의 '문지방'을 나타내는 도상학적 기호로 자리 잡았다.
중세의 수도원에서는 아몬드 우유가 금식 기간의 대체식으로 널리 쓰였다. 동방 교회에서는 부활절 기간에 아몬드를 넣은 빵을 나누며 생명력과 재탄생을 기념하는 풍습이 이어졌다.
아몬드는 그 오랜 재배 역사와 실용성 덕분에 다양한 문화권에서 특별한 의미와 이야기를 형성했다.
스웨덴: 스웨덴에서는 아몬드가 행운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에 먹는 쌀 푸딩인 '리스그륏스그뢰트'를 만들 때 아몬드를 숨겨 놓는 관습이 있다. 이 아몬드를 발견하는 사람은 다가오는 해에 결혼하거나 행운을 얻는다고 믿어진다.
이탈리아와 그리스: 지중해 연안 국가에서는 아몬드를 설탕으로 코팅한 '콘페티' 또는 '쿠페타'를 결혼식 기념품으로 제공하는 관습이 있다. 이는 신혼부부의 행복, 건강, 부, 다산, 그리고 장수를 기원하는 다섯 가지 의미를 상징한다.
빈센트 반 고흐: 네덜란드 후기 인상파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는 1890년경 프랑스 남부에서 자신의 조카 탄생을 축하하며 아몬드 꽃을 주제로 한 연작을 제작했다. 이른 봄에 피어나는 아몬드 꽃은 새로운 생명과 희망을 상징하며, 현재까지도 그의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현대 소설: 대한민국 작가 손원평의 소설 『아몬드』는 감정 표현 불능증을 앓는 소년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소설의 제목인 아몬드는 뇌에서 감정을 처리하는 부위인 편도체(Amygdala)의 아몬드 모양에서 착안되었다.
아몬드는 성경에서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계시의 속도, 신의 감시, 선택된 권위, 부활과 재탄생 같은 영적 의미의 총체적 상징으로 기능한다. 고대 근동의 문화와 결합해 생명력, 보호, 지혜, 신적 빛의 도상학을 이끄는 핵심적 자연 기호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에도 아몬드는 성경적 상징과 문화적 전통이 겹겹이 쌓인 독특한 의미망을 유지하고 있으며, 고대 신비사상 속에서 인간과 신의 간극을 이어주는 매개자로 해석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