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신체 미학 기준에서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한 계기가 있었다. 이 시기의 주역은 단연 전지현이었다. 그녀의 등장은 단순한 연예인의 데뷔가 아닌, 미의 기준을 재정의하는 데 크게 일조했다. 전지현은 광고 속 역동적인 퍼포먼스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특히 그녀의 잘록한 허리라인이 새로운 미의 기준으로 부상했다. 같은 시기 이효리 역시 길고 가는 허리를 통해 독특한 관능미를 표현하며 이러한 트렌드를 공고히 했다.
밀레니얼 세대 전지현의 영향력은 단순히 가는 허리를 넘어, 미묘한 곡선이 골반 라인을 자연스럽게 강조하는 실루엣으로 확장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일반인은 물론 다른 스타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고소영에게 상당한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했다.
지오다노 캠페인을 기점으로 광고계의 주도권은 고소영에서 전지현으로 이동했다. 고소영이 여전히 성공적인 모델 활동을 이어갔음에도, '광고의 여왕' 자리는 전지현에게 넘어갔다. 물론 이 시기 김희선과 고소영 사이의 화보 관련 긴장감도 업계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고소영은 약간의 관능적 콘셉트가 가미된 작업을 맡게 되었지만, 두 여배우 간의 관계가 원래부터 경쟁적이었는지, 이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생겼는지는 현재까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주목할 점은 신체 비율의 자연적 다양성이다. 고소영과 김희선 모두 당대의 미적 기준으로 극찬받는 얼굴과 다리 라인을 지녔으나, 허리 정의는 상대적으로 덜 강조되었다. 당시 다리에 열광하는 트렌드이기도 했다.
전지현의 영향력 이전, 90년대 최고 스타이자 1호 슈퍼모델 이소라는 훤칠한 키와 남다른 건강미로 한국에 새로운 이상적 체형을 각인시켰다. 이소라의 비교적 덜 강조된 허리라인(소위 '일자형' 실루엣)은 당시 국제적 트렌드와도 일치했다. 미국의 스타 모델 엘 맥퍼슨 역시 넓은 어깨와 직선적인 비율로 명성을 얻었으며, 이 시대는 허리 곡선보다 다리 길이를 우선시한 경향이 짙었다.
전지현 이후 허리 라인에 대한 미적 기준은 크게 변화했으나, 주목할 만한 점은 다양한 체형의 스타들이 여전히 사랑받았다는 사실이다. 김태희, 송혜교, 이나영과 같은 톱스타들은 특별히 강조된 허리 라인 없이도 큰 인기를 얻었다. 이는 한 시대의 미적 기준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전지현 이후로 잘록한 허리가 주목받긴 했으나, 신민아의 S라인처럼 특정 체형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각선미에서 전체적인 곡선미로 관심이 변화했음을 의미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전지현의 유명한 실루엣이 전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데뷔 초기 사진을 보면, 그녀의 상징적인 체형이 상당 부분 꾸준한 노력과 관리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신체 조건에 있어 선천적 요인 못지않게 후천적 관리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그렇게 2000년대 초반 전지현이 쏘아 올린 잘록한 허리라인의 시대를 지나, 2020년 전후부터 신체 미학의 기준은 또 한 번 주목할 만한 변화를 맞이했다. 허리에서 힙라인으로 관심이 이동하는 현상이 뚜렷하게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는 글로벌 트렌드와 맞닿아 있다. 서구에서는 이미 2010년대부터 킴 카다시안, 비욘세, 제니퍼 로페즈 등이 이끈 '볼륨감 있는 힙라인' 트렌드가 강세를 보였으며, 이제 한국에서도 이러한 영향이 가시화되고 있다. 최근 K-팝 아이돌과 인플루언서들 사이에서도 '힙 트레이닝'이 강조되면서 균형 잡힌 하체 볼륨이 새로운 미적 가치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트렌드 이상의 사회문화적 의미를 반영한다. 첫째, 여성의 신체에 대한 인식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있다. 극도로 마른 체형 일변도에서 벗어나 다양한 신체 형태에 대한 인식이 확장되고 있다. 둘째, 한국 사회가 글로벌 미적 감각과 더욱 밀접하게 연결되면서 서구의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디어 속 여성 연예인의 이미지도 변화하고 있다. 가는 허리와 우아한 실루엣에서, 젊은 세대 아이돌과 인플루언서들이 보여주는 탄탄하고 볼륨감 있는 힙라인으로 관심이 옮겨가는 중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미적 취향의 변화를 넘어,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문화적 가치관의 변화를 반영한다.
이 같은 신체 미학의 변화는 결국 사회·경제·문화적 흐름과 맞물려 진행되는 현상이다. 글로벌화된 미디어 환경, 다양성에 대한 인식 확대, 건강과 피트니스 문화의 대중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한국의 미적 기준을 지속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허리에서 힙라인으로의 관심 이동은 이러한 복합적 요인들이 만들어낸 현대 한국 사회의 미학적 변화를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