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지트 바르도는 아름다움과 자유로움, 반항과 모순이 교차하는 복잡한 인물이다. 그녀는 섹시 심벌이자 여성 해방의 아이콘이었고, 문화적 혁명가이면서 동시에 보수적 가치관의 옹호자였다. 모성을 거부하면서도 다른 생명체에 대한 깊은 연민을 보였다. 그녀의 삶은 우리에게 단순한 미의 아이콘이 아닌, 인간의 모순과 복잡성을 담은 하나의 거울을 보여준다. 비판받을 부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브리지트 바르도—이 이름은 20세기 후반의 사회적, 문화적 변화를 체현한 상징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최고의 미인 브리지트 바르도는 1950년대 세계를 매혹시킨 배우에서 지금은 격렬한 동물보호운동가로 살아가고 있다. 현재 89세의 그녀는 많은 사람들에게 괴팍한 노인으로 비치기도 하지만, 그 화려했던 과거와 파란만장한 인생은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나는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 중 한 명으로 추앙받은 사람의 고백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말이다. 그러나 브리지트 바르도는 실제로 어릴 때부터 항상 자신이 못생겼다고 푸념했다고 한다. 궁극의 아름다움을 지녔던 그녀의 이런 자기 인식은 그녀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1934년 프랑스 파리 15 구역의 부촌에서 태어난 바르도는 가톨릭 상류층 집안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사립학교에 다니면서 별도의 가정교사에게 수업을 받고, 러시아 안무가에게 발레를 배우는 등 엘리트 교육을 받은 그녀는 출신과 교육 환경이 미국의 섹스심벌 마릴린 먼로와는 천양지차였다. 어린 시절부터 춤에 소질을 보이던 그녀는 10대 때 모델 일을 시작했다. 서양인의 빠른 발육 특성상 10대에 모델 데뷔가 일반적이었던 시대적 배경도 있었다. 15세에 '엘르(Elle)' 잡지 표지를 장식한 바르도는 얼마 후 젊은 영화감독 로저 바딤의 눈에 들어 영화계에 입문했다.
그녀의 관능미에 매료된 대중은 브리지트 바르도를 프랑스를 대표하는 섹스심벌로 자리매김했다. 1950~1960년대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 중 한 명으로, 미국의 마릴린 먼로나 이탈리아의 소피아 로렌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초특급 섹시미의 여신으로 인정받았다. 마릴린 먼로가 뇌쇄적이고 육감적인 매력으로 빛났다면, 바르도는 마치 에덴동산의 이브와 같은 원초적이면서도 순수한 섹시함을 지녔다. 발레를 통해 단련된 우아한 자태와 인형 같은 얼굴, 자연스러운 금발 머리카락은 오드리 헵번의 우아함과 마릴린 먼로의 관능미가 절묘하게 조화된 독특한 매력을 창조했다.
1956년 바딤이 감독한 영화 '신이 여자를 창조했다(And God Created Woman)'는 그녀를 국제적 스타로 만들었다. 이 영화에서 바르도는 억압된 시골 마을의 관습을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가려는 젊은 여성을 연기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노출과 관능적 장면으로 논란을 일으켰지만, 그 논란이 오히려 홍보 효과가 되어 전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화려한 스타 생활 이면에는 깊은 고통이 있었다. 바르도는 대인공포증에 시달렸고, 촬영이 시작될 때마다 극심한 심리적 불안으로 입병을 달고 살았다고 한다. 그녀는 "대중이 자신을 숭배하려는 것에 질식할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라고 고백했다. "선배나 동료 연예인들이 대중의 숭배로 인한 고충과 탐욕으로 절망하며 죽어간 세월을 답습하고 싶지 않았다"는 그녀의 말은 명성의 무게가 얼마나 버거웠는지를 보여준다. 바르도는 스타로서의 삶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자유를 찾았다고 말했다.
1973년, 39세의 나이에 바르도는 전격적으로 연기 생활에서 은퇴했다. "내 얼굴이 신문 잡지에 도배되는 것이 지겨웠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이후 그녀는 프랑스 남부 생트로페의 자택에서 조용히 지내며 새로운 사명을 찾았다.
은퇴 후 바르도가 선택한 길은 동물 보호 활동이었다. 1986년 그녀는 '브리지트 바르도 재단'을 설립하여 동물 권리 보호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녀는 인간들에게 학대받는 동물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그런 공감대가 그녀를 멀리 떨어진 나라의 식용 문화까지 반대하게 만드는 열정을 낳았다.
바르도는 캐나다의 물개 사냥, 중국과 한국의 개 식용, 스페인의 투우 등 전 세계 동물 학대 문제에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한국의 개고기 식용 문화에 대해 격렬한 반대 운동을 펼쳐 많은 한국인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얼마나 개를 사랑하면 남의 나라 식용 문화까지 참견을 하셨을까" 싶지만, 동물 권리에 관한 한 그녀의 신념은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동물 보호라는 숭고한 사명 이면에, 바르도는 반이슬람주의와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수차례 프랑스 법원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녀의 엘리트주의적 가풍과 자국 문화 중심적 세계관이 나이가 들수록 더 강하게 표출되면서 대중의 비난을 받게 된 것이다.
더욱 논란이 된 것은 미투 운동에 대한 그녀의 발언이었다. 여배우들의 미투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 바르도는 "수많은 여배우가 배역을 따기 위해 유혹해 놓고서는 나중에 미투를 당했다고 주장한다"며 운동을 비판했다. 또한 자신은 "남자들이 성적으로 칭찬하는 말에 기분이 좋았다"라고 말해 페미니스트들의 공분을 샀다.
이러한 발언은 그녀가 살아온 시대적 배경과 특권적 위치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상류층 출신으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여건 속에서 성장한 바르도는 다른 여성들이 겪는 현실적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했을 수 있다. 또한 그녀 자신이 섹시 심벌로서 성적 대상화의 혜택을 받은 입장이었기에, 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바르도의 또 다른 논란은 그녀의 모성애 부재였다. 두 번째 남편 샤리에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니콜라에 대해 그녀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혼 후 아들의 양육권은 샤리에에게 넘어갔고, 바르도는 아들을 거의 만나지 않았다. 결국 아들 니콜라는 결혼식에도 어머니를 초대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관계는 현재까지도 소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동물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무한했다. 어린 시절 키우던 토끼가 저녁 식탁에 올라온 사건은 그녀에게 평생의 트라우마를 안겼다. "동물들은 나를 배신한 적이 없다. 그들만이 내게 진정한 위로를 주었다"는 바르도의 말은 인간관계에서 충족되지 못한 그녀의 정서적 욕구를 보여준다.
현재 89세의 바르도는 많은 사람들에게 괴짜 노인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의 정신만큼은, 적어도 동물 권리에 관한 한, 그 누구보다 강인하고 일관되게 유지되어 왔다. 그녀는 "현재까지 자신을 유지하게 만든 건 동물보호 운동가로 살게 된 확고한 자기 신념 때문"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