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전 요즘 생각하는 게 있어요. 인간이 다른 동물과 전혀 다른 점이 뭘까. 언어도 지혜도 생각도 사회 질서도 각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동물도 모두 갖고 있잖아요? 신앙도 갖고 있을지 몰라요.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으스대지만, 다른 동물과 본질적인 차이가 하나도 없는 것 같지 않아요? 그런데 어머니, 딱 한 가지 있어요. 모르실 테죠? 다른 생물들에게는 절대로 없고 인간에게만 있는 것. 그건 바로 비밀이라는 거죠. 어때요?
학문이란 허영의 또 다른 이름, 인간이 인간답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인간은 모두 다 똑같다. 이 얼마나 비굴한 말인가요? 남을 업신여기는 동시에 자신마저 업신여기고, 아무런 자부심도 없이 모든 노력을 포기하게 만드는 말. 마르크시즘은 노동하는 자의 우위를 주장합니다. ‘다 똑같다.’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존엄을 주장합니다. ‘다 똑같다’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오직 유곽의 호객꾼만 그렇게 말합니다.
간밤의 취기는 말끔히 가셨습니다. 나는 맨 정신으로 죽습니다. 한 번 더, 안녕, 누나. 나는 귀족입니다.
혁명은, 대체 어디서 일어나고 있을까요?
적어도 우리들 주변에서 낡은 도덕은 여전히 그대로 털끝만큼도 바뀌지 않은 채, 우리의 앞길을 막고 있습니다. 바다 표면의 파도가 아무리 요동친들 그 밑바닥의 바닷물은 혁명은커녕 꿈쩍도 않고 자는 척 드러누워 있을 뿐인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