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달 제너는 킴 카다시안의 이부동생으로, 어릴 때부터 패밀리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 과정을 고스란히 공개하며 톱 모델로 자리 잡은 미국 최고의 스타. 그녀가 벌써 이십 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가족 모두가 막장을 넘어 기상천외한 세계관과 라이프스타일로 보수적인 청교도 문화권 미국인들에게 그다지 환영받는 편은 아니지만, 이미 국제적 스타가 된 터라 그딴 혀 차는 소리쯤이야 무시하면 그만이다.
킴 카다시안 패밀리는 부모부터 자식들 모두 예체능에 소질이 있다. 공부와는 거리가 먼 삶이지만 그래서 남들이 갖지 못한 특출한 재능을 하나씩 장착하고 태어난 것 같다. 켄달 제너는 지금은 성전환으로 여성이 된 육상선수 출신 아버지와 전직 모델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우월한 인자만 뽑아 태어난 아이였다. 게다가 이부 언니들은 이미 차고 넘치게 유명한 분들이었으니, 어릴 때부터 특히 킴 카다시안을 롤모델로 삼았을 게 분명하다. 엄마부터 나이 차 나는 언니들의 옷 스타일을 보며 패션 감각을 익혔을 것이고.
켄달 제너는 가족 중 가장 완벽하게 성장했다고 해도 될 정도다. 엄마와 달리 힙이 발달하지 않았고, 딱 옷발 좋은 모델 체형을 타고났다. 집안이 유명하지 않았어도 모델로 비교적 성공했을 외모이다. 다만 오래가지는 못했을지도 모른다. 끼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끼는 오히려 동생 카일리 제너가 더 많이 물려받았지만, 안타깝게도 외모 쪽은 그렇지 못했다. 카일리 제너는 자신의 재능과 끼를 다른 방향으로 활용해 돈을 상당히 벌었다고 하니 그건 그것대로다. 여하튼 켄달 제너는 가진 것에 비해 타고난 끼가 부족해서 사진이나 포즈에서는 뻣뻣함 자체로 뭥미를 시전 했지만, 대신 일상에서는 누구보다 빛이 났다.
켄달 제너처럼 무대보다 일상에서 옷을 더 잘 입고 주목받은 모델 출신은 꽤 있다. 알렉사 청도 그렇고 올리비아 팔레르모도 그렇고, 옷 잘 입는 능력 하나로 돈을 더 긁어모을 수 있었다. 케이트 모스 또한 모델 체형으로는 부족한 편이었지만 탁월한 패션 감각과 매력으로 중년을 넘긴 지금까지 사랑받는 스타다. 그러나 이들은 옷을 잘 입는 만큼 외모가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다. 켄달 제너는 완벽한 체형에 옷까지 잘 입어서 독보적이라는 거다.
켄달 제너의 공식 석상 포즈를 보면 좀 어이가 없다. 저렇게 완벽한 체형으로 저렇게밖에 포즈를 못 취하나 싶다. 자신감도 없고 매력도 없고 포즈도 영 3류다. 그래서 공식 석상보다 일상에서 더 빛이 나는 거다. 약간 수줍은 듯, 대인을 기피하는 듯 고개 숙인 자세로 다니니까 온전히 스타일만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심한 표정이 멋을 더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저렇게 일관되게 한쪽 팔을 허리에 얹는 포즈는 기본이 안 되어 있거나 끼가 없거나 둘 중 하나다. 집안 버프가 아니었으면 모델로 데뷔는 하되 1류는 되지 못했을 거다. 얼굴과 몸매가 완벽한데 싼티 나는, 연예인들에서 종종 보이는 전형이라고나 할까.
그건 그렇고, 켄달 제너는 직업 모델로서의 평가는 최하위에 속하지만 데일리 룩 스타일로는 21세기를 이끈 주역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은 약간 한물 간 느낌도 있고, 벌써 이십 대 중반인 것도 있긴 하지만, 이전까지 모든 스타일의 원천은 켄달 제너와 지지 하디드에게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멋을 아는 셀럽이었다.
그녀의 스타일 영감은 90년대에 있었다. 켄달은 90년대 스타일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재해석해 유행을 이끌었다. 밑위가 긴 배바지 스타일의 청바지도 그녀가 입어서 유행한 것이고, 밑단이 찢어진 스타일과 박시룩도 마찬가지다. 명품을 캐주얼화해서 입는 스타일 기법도 그녀가 붐을 일으켰다. 발렌시아가 운동화부터, 금기시되던 허리색을 크로스로 메고 다니는 것까지, 촌스러운 것을 럭셔리와 세련됨으로 바꿔놓는 재주가 있었다.
요즘은 뜸해지는 기미가 보이는 밑단 짧고 찢어진 스타일의 청바지는 그녀를 대표하는 아이템이었고, 가장 빅히트 친 아이템은 동양인 체형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딱 붙은 레깅스다.
90년대 케이트 모스가 헝클어진 헤어스타일과 스키니 진, 스모키 메이크업을 유행시켰다면, 켄달 제너는 딱 붙는 요가 팬츠나 가죽 레깅스에 흑발 생머리, 단정하게 묶은 발레리나 업두 스타일을 유행시켰다. 가운데 가르마도 그녀가 유행시켰고. 메이크업은 군더더기 없는 피부에 볼륨 있는 입술, 그것도 매트하면서 누디한 스타일로, 킴 카다시안과 카일리 제너가 함께 만들어놓은 흐름이기도 하다. 다만 켄달의 깔끔하고 시크한 스타일은 90년대 유행과는 분명히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케이트 모스는 이제 오십 줄이라 트렌드세터라고 부르기는 뭐 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전히 스타일 아이콘으로 관심을 받았다. 그렇게 장기간 자리를 지켰듯 켄달 제너도 여전히 멋쟁이로 불리긴 한다. 그러나 한결같은 스타일에 대중은 약간 식상한 느낌을 갖고 있고, 밑단 찢어진 청바지도 슬슬 안 될 것 같은 시기가 온 것 같기도 하다. 켄달도 스타일의 다양성을 시도하는 듯하면서도 꾸준히 배바지 스타일은 즐겨 입는 모습이다. 인기가 시들해진 것인지 스타일에 발전이 없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도 대중도 변화를 줄 때가 된 건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