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색은 'pinks flower'라는 패랭이꽃(Dianthus)에서 유래했다. 한국에서는 일명 패랭이꽃으로 불리며, 최근에는 길가에서 철쭉보다 더 흔하게 볼 수 있을 정도로 번식력이 강한 꽃이다. 패랭이꽃이라는 이름은 꽃잎의 들쭉날쭉한 가장자리 모양에서 비롯되었다. 패랭이꽃의 고유색 이전에도 장미에서 핑크색을 찾을 수 있었다. 핑크색은 그전에 장미를 뜻하는 '로즈'로 불렸으나, 'Pink'라는 단어는 16세기부터 꽃 이름으로 사용되었고 색상명으로는 18세기 초반에 등장하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19세기까지 핑크는 남자의 색을 상징했다. 남자아이에겐 핑크색 옷을 입히고 여자 아이에겐 블루 옷을 입히는 것이 상류층의 스타일이었다. 1918년 미국의 유아복 잡지에서도 "핑크는 더 강한 색으로 남아에게 적합하고, 파란색은 더 섬세하고 예쁜 색으로 여아에게 적합하다"라고 언급되었다. 핑크색은 그렇게 강함과 권위를 상징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미지가 변화하게 된다.
1930년대, 패션 디자이너 엘사 스키아파렐리에 의해 이름 그대로 '쇼킹 핑크'가 탄생한다. 귀족 출신의 엘사는 이 강렬한 핑크색을 자신의 시그니처 컬러로 사용했다. 그녀의 친구이자 고객이었던 최상류 층 데이지 펠로우즈는 이 쇼킹 핑크 드레스를 특히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엘사가 데이지를 위해 특별히 이 색상을 디자인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구체적인 증거는 찾기 어렵다. 다만 펠로우즈가 소유했던 17캐럿 이상의 핑크 다이아몬드 색상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설은 신빙성이 있다. 이 쇼킹 핑크의 등장 이후 핑크는 점차 여성의 색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1953년 아이젠하워 대통령 취임식에서 퍼스트레이디 마미 아이젠하워 여사는 핑크색 드레스를 입고 나왔고, 이후 핑크는 그녀를 상징하는 컬러가 되었다. 1960년대에는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 여사가 핑크색, 특히 샤넬 스타일의 핑크색 슈트를 자주 입고 등장하여 그녀를 상징하는 컬러가 되기도 했다. 비극적이지만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 당시에도 그녀는 이 핑크색 슈트를 입고 있었다.
엘사 스키아파렐리의 쇼킹 핑크 이후 일련의 변화를 거쳐 핑크색은 점차 여성의 색으로 자리 잡았다. 확실히 핑크색은 여성들에게 더 쓰임이 있었고 사랑을 더 받았다. 핑크를 강인함의 상징으로 유지하기에는 너무 부드럽고 아름다운 컬러로 보였기 때문이다. 서양에서 핑크색의 성별 인식이 변화하는 동안,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분홍색에 대한 인식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했다. 일부 문화에서는 분홍색이 여성스러움과 연관되었지만, 이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달랐다. 한국에서는 '도화살'이라 하여 분홍빛 복숭아꽃처럼 발그레한 여성의 볼을 비유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복숭아 하면 여성의 발그스레하고 여성스러운 볼이 떠오르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심리학적으로 핑크는 치유와 휴식의 색으로 본다. 현대에는 확고하게 여성을 상징하는 컬러가 되었고, 더불어 사치와 허영, 유치함을 내포하기도 한다. 원숙미보다는 미숙하지만 발랄하고 순수한 이미지가 있다.
핑크색은 기분을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도 있다. 이는 벨-베이커 효과라고 불리며, 일부 연구에서는 핑크색 환경이 공격성을 줄일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효과는 완전히 검증된 것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간호사 복장이 블루로 바뀐 것 같은데 블루가 신뢰감을 줄 수는 있지만 핑크만큼 편안함을 주는 색상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핑크색은 어찌 보면 평화와 안정의 상징 같은 색이다. 21세기, 핑크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 색이 다시 한번 변화의 시간을 맞이하길 바란다. 19세기 이전처럼 남성의 색이었던 역사적 사실을 상기해 볼 때, 핑크가 특정 성별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미 진행 중인지도 모르지만, 핑크가 단순히 정체성에 대한 커밍아웃 컬러가 아닌, 여성에겐 더욱 여성적으로 빛나게 하고 남성에겐 오히려 남성미를 강화하는 양면성을 지닌 컬러로 재해석되기를 바란다. 색상에 인위적으로 부여된 성별의 경계를 넘어, 핑크가 본래의 아름다움과 생기만으로 평가받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