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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체 Dec 31. 2024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이야기

서양 문학의 기초를 정립한 전설의 작가 호메로스는 기원전 8세기 인물로 추정되며 생몰년을 알 수 없어서 실존 인물이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실존 인물이라는 전제 하에 그는 철학가의 고향 이오니아 출신이며 그리스 말기 암흑시대에 활동했던 유랑 시인으로 전해지고 있다. 게다가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라고 하였는데 그러니 더욱 가상 인물로 보인다. 


일리아스 스토리


신비로운 작가가 쓴 일리아스의 줄거리는 뻔하다. 전쟁 중 펼쳐진 영웅들의 장엄한 이야기이며 항상 등장하는 미인 그리고 미인을 쟁취해야 하고 전우애와 부성 및 모성애가 신파적으로 섞여 있다. 하지만 일리아스의 핵심은 이게 아니다.


일리아스는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서사가 펼쳐지는 인본주의에 입각한 소통을 다룬 서사시가 포인트이다. 그것도 아주 원초적인 인간들의 내면을 다루었기 때문에 신들의 조언 및 개입이 수반된다. 이제 걸음마를 하기 시작한 아이를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이라고 해두자.


일리아스를 통해 본 서양의 세계관은 신들의 존재가 불멸하되 완벽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어떻게 신들이 그럴 수 있지? 그런 차이를 알고 읽으면 매우 흥미롭다. 물론 일리아스의 주인공은 신들이 아니지만 사건의 발단과 중요한 사건마다 신들이 개입하고 자기들끼리 두둔하는 인간들도 따로 있다. 내가 인상적으로 여기는 부분은 서양 고전을 읽으면 탁월함을 유난히 추구한다는 점이다. 심성보다 모든 면에서 출중하면 신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는다. 서양신들은 철저하게 인간의 혈통을 따지며 불공평하며 질투와 탐욕 또한 넘친다. 어찌 보면 인간보다 더 인간적으로 보인달까? 서양신은 불멸하는 것 말고는 욕심 많고 괴팍한 노인들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렇게 전지전능한 신이 완벽한 모습이 아니라는 게 서양 철학 및 문학의 특징 중 하나이며 그것이 인간 중심 세계관을 만드는 데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일리아스는 인본주의에 입각한 서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보는 재미가 있다. 이것이 호메로스의 뛰어난 통찰로 바뀌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으나 모든 이야기는 급작스러운 반전보다는 자연스러운 변화를 선택한다. 그러니까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변하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신은 아직도 영향력이 대단하고 인간은 미숙하다. 게다가 일말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함인지 온전하게 인간들 세상에 놓이게 두지 않고 반신반인을 툭 던져 놓는다. 



무엇보다 일리아스는 계급 사회 구조를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 신에서 인간으로 내려오면서 인간과 신으로 맺어진 귀족 혈통과 온전히 인간계에서 탁월한 자의 겨룸이 어떠한 지를 잘 보여준다. 동양은 약자를 보호하는 성향이 강하지만 서양은 강한 자를 더 예뻐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신의 혈통을 조금이라도 이어받은 자는 신의 축복이 있다는 점이 불공평하게 느껴질 수 있겠으나 또한 노블레스 오블리주(귀족은 의무를 갖는다)를 잘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 인정을 안 할 수가 없다.


다시 일리아스의 얘기로 넘어가자면,  이 이야기는 트로이 전쟁 10년 중 마지막 51일간의 기록을 다룬 이야기이다. 


첫 장은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한다. 자신이 모욕을 당했다는 것인데.... 그 얘기를 하기 전 트로이 전쟁은 왜 발발했는지 배경 지식을 알아야 글이 더 흥미로우니 잠깐 설명해야겠다.



트로이 전쟁의 발단은 신들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어떤 위대한 결혼식장에서 신들이 모여 화기애애한 가운데 불화의 신 에리스만 초대를 받지 못했다. 당연한 거 아닌가. 아무튼, 에리스는 발끈해서 불청객으로 식장으로 들이닥쳐서는 황금 사과를 던져주고 갔다. 그리고 황금 사과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에게 바치노라.'



신들 중에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세 여신이 있었는데 미와 질투의 여신 헤라, 승리의 여신 아테네, 그리고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있었다. 세 여신이 황금 사과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통에 정신이 없던 신들의 왕 제우스는 인간계에서 가장 잘생긴 청년 파리스(알렉산드로스)에게 선택권을 준다. 이에 미의 여신들은 파리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각기 조건을 제시한다.


먼저 헤라는 파리스에게 부귀영화와 권세를 약속했고 아테네는 승리와 명예를, 그리고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녀를 선물로 주겠다고 하자 파리스는 황금 사과를 아프로디테에게 냉큼 건네준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녀는 바로 스파르타의 여왕 헬레네였다. 그러니까 왕의 여자, 유부녀였던 거다. 그야 알 바 아니던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와 함께 헬레네를 차지하러 스파르타로 향하고 아프로디테의 주술에 힘입어 헬레나는 파리스와 사랑의 도피 행각을 펼친다. 이에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는 깊이 열받아 근처 아카이드 군(희랍군)과 연합하여 트로이를 공격하기로 한다.




일리아스가 읽기가 힘든 게 스토리 순서는 그렇다 치고 낯선 지명부터, 이름 등이 헷갈려서 그렇다. 같은 이름도 나오고, 물상도 의인화해서 부르는 통해 저게 강 이름인지 신 이름인지 당최 헷갈린다. 그러나 다 필요 없고 그냥 핵심적인 인물 아킬레우스랑 헥토르, 아가멤논, 오디세우스 정도만 기억하면 된다. 지역도 트로이 연합군과 아카이드 연합군 이 정도로 알고 있으면 된다. 


아무튼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여왕 헬레나를 빼앗아 전쟁이 시작되었고 일리아스는 전쟁의 막바지를 다루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자.


"분노를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파괴적인 분노를.

그것은 아카이아인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주었으며

영웅들의 수많은 굳센 혼들을 하데스에게 보내고,

그들 자신은 개들과 온갖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우스의 뜻은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을, 인간의 왕인 아트레우스의 아들과 고귀한 아킬레우스가 처음에 서로 다투고 갈라선 그때부터 노래하소서."


위의 문장이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한 일리아스 첫 장이다. 대체  그가 왜 분노한 것일까. 일종의 내분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아카이드 군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전쟁 중 상대 진영의 여자를 차지하는 일이 생겼다. 그 여자는 태양의 신 아폴론의 사제 크리세스의 딸 크리세이스이다. 크리세스는 딸을 되찾아오기 위해 아가멤논 진영에 가서 거금을 가지고 가서 딸을 돌려달라고 했건만 아가멤논은 되려 크리세스에게 모욕을 주고 돌려보낸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리스인의 세계관은 모욕을 참을 수 없어한다는 점이다.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수치를 당하거나 모욕을 당하면 반드시 복수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향이 다분하다. 각설하고, 딸을 찾지 못하고 모욕을 당하고 온 크리세스는 아폴론 신에게 가서 자신이 입은 모욕에 복수를 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아폴론이 아카이드 진영을 향해 9일간 분노의 화살을 날렸고 그 결과 역병이 돌아 수많은 장병이 죽어 나갔다. 열흘 째가 되자 전장의 영웅 아킬레우스가 참모들을 불러 모았고 예언가의 힘을 빌리게 된다. 새가 나는 모습을 보면서 점을 치기로 유명한 예언자 칼카스가 말하길,


아폴론 신이 노한 이유를 말하며 아가멤논이 뺏은 크리세이스를 돌려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킬레우스가 돌려주라고 말하고 아가멤논은 크리세이스를 돌려보냈고 역병은 사라졌지만 대신 다른 여자라도 차지해야겠다고 억지를 부려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의 탐욕을 비난한다. 그러자 아가멤논이 또 발끈하여 아킬레우스의 여자 브리세이스를 달라고 한다. 이러니 아킬레우스가 분노와 모욕을 참지 못하고 이후로 전투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승기를 잡던 아카이드 군은 초 긴장을 탔고 적진이 눈치채지 못하게 아킬레우스의 절친 파트로클로스에게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혀 전장에 나가게 하였다.


그러나 트로이의 왕자이자 영웅 헥토르의 창에 찔려 전사한다. 아킬레우스는 친구를 잃은 슬픔과 분노를 참을 길이 없어 전쟁터에 나가 트로이 군을 도륙하고 트로이 군은 성문 안으로 도피하여 문을 굳게 잠갔다. 참고로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에게 친구 이상의 연인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한편, 바다의 여신이자 아킬레우스의 엄마인 테티스는 제우스에게 실추된 아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고 간청했다. 제우스는 테티스의 청을 들어주기로 한다. 아킬레우스는 여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초인에 가까운 최강 귀족 혈통이다. 테티스의 엄마는 아킬레우스가 요절할 운명을 알고 명예라도 줘야 하지 않겠느냐며 호소한 걸로 보인다.


그런 이야기 중간중간 치열한 전투도 있고 브로맨스인지 동성애인지 넘치는 사랑 및 피의 혈투 등등 시각적으로 흥미진진한 요소가 넘치는 가운데 이야기는 결말로 치닫는다. 앞서 매우 원초적인, 그러니까 2차원적인 성격 묘사가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요즘같이 등장인물들의 성격들이 복잡 미묘한 것과는 거리가 멀고 복수 혈전과 같아서 원수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것처럼 적수끼리 만나 치열한 승부 대결이 펼쳐진다. 


트로이 목마 이야기


그리고 싸움을 승리로 이끈 트로이 목마에 관한 이야기를 할 차례이다.


어떤 날 아가멤논의 꿈에 제우스 신이 나타나 진격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 또한 제우스의 의도였다고는 하나 아무튼, 아가멤논은 병사들을 모아놓고 제우스의 꿈 얘기를 하고 의중을 떠보기 위해 반대로 퇴각 명령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퇴각을 부추긴 못생긴 독설가이자 선동꾼인 테르시테스의 말을 듣고 병사들이 함선을 띄우고 신이 나서 고향 갈 생각에 들떠 있었다.



그러자 오디세우스가 못생긴 테르시테스를 혼쭐 내고 병사들아 그러지 말고 우리 다 같이 성을 함락하고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고국으로 돌아가자고 설득했다. 그렇게 사기가 잔뜩 오른 병사들을 오디세우스가 고안한 목마에 싣고 진격을 했다나 뭐래나. 그렇게 아가멤논, 오디세우스, 아킬레우스 영웅들이 함께한 정예병사들이 거대한 목마를 성문 앞에 세워두고 후퇴한 것처럼 위장했고 이에 트로이 군은 자신들이 승리했다며 전리품으로 목마를 성 안으로 들여놓고 부어라 마셔라 술판을 벌이다 잠이 들었다. 으슥한 밤이 되자 목마에서 병사들이 나와 트로이 성문을 열었고 그날 밤 기습 작전에 말려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은 막을 내렸다.


얘기가 이렇게 끝나면 아쉽다.


정리하자면, 일리아스는 불멸이 아닌 필멸의 인간, 그것도 영웅을 다룬 이야기다.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도 치열하게 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 또한 서양 세계관의 근간이기도 하다. 이것이 서양에서 희극보다 비극이 추앙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맹렬한 전투 끝에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친구를 죽인 헥토르를 죽였고 죽인 다음에도 지속해서 괴롭혔다고 한다. 진정 사이코가 아닌가. 이에 헥토르의 아버지는 아킬레우스 앞에 무릎 끓으며 요단강은 건너게 해줘야 할 거 아니냐면서 아들의 시체를 돌려 달라 애원했다. 


아킬레우스는 비통해하는 헥토르 아버지를 보면서 찡했던지 아버지에게 헥토르의 시신을 넘겨주었다. 이런 일련의 경험 후 아킬레우스가 성장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파리스가 아킬레우스를 향해 활시위를 당겼고 아폴론이 방향을 조정해 발뒤꿈치를 관통해서 아킬레우스는 그 자리에서 죽는다. 아킬레우스는 아버지보다 위대할 것이라는 예언을 받고 태어났지만 발뒤꿈치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트로이 전쟁의 발단을 제공한 파리스는 여신의 도움을 받아 비굴하게 위기를 모면하지만 결국 외전으로 독침 해독을 못 받아 비참하게 죽어갔다고 하던데 딱 봐도 여자만 밝히는 호색 캐릭터처럼 보이긴 하다.


일리아스는 청년 아킬레우스의 성장 소설이라고 보는 이도 많다. 완벽한 귀족 전사가 시련을 통해 성장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는 뭐 그런 감동... 반면 헥토르는 호메로스라는 작가가 가장 사랑한 작가라는 평이 많다. 가족을 사랑한 자상한 아버지에, 착한 아들 등 성실한 면모를 보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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