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관이 열리는 순간

그 밤, 우리는 심장과 싸웠다 — 3

by 혈관튼튼연구소

모니터 화면에 조영제가 퍼졌다.

하얗게, 천천히. 혈관을 따라 흘러가다가 어느 지점에서 뚝 멈췄다. 거기였다. 막힌 곳. 조영제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선 그 지점을, 나는 화면으로 보고 있었다.

이게 내가 하는 일이다.

의사가 카테터를 움직이는 동안, 나는 그 모든 것이 화면에 제대로 잡히도록 모니터를 조작한다. 각도를 맞추고, 조영제가 들어가는 타이밍에 맞춰 촬영을 시작한다. 의사의 손이 혈관 안에서 움직이는 동안, 나는 그 움직임이 보이도록 빛과 각도를 만든다.

보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가 화면을 잘 잡아야, 의사가 혈관을 본다.

풍선이 들어갔다.

막힌 혈관을 넓히기 위한 첫 번째 단계. 화면 속에서 풍선이 부풀어 오르는 게 보였다. 혈관 벽을 밀어내는 그 장면을, 나는 모니터로 지켜봤다. 직접 손을 쓰는 건 의사지만, 그 손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가장 선명하게 보는 건 나였다.

"조영 한 번 더."

내가 버튼을 눌렀다. 조영제가 다시 퍼졌다.

혈관이 열려 있었다.

아까 뚝 멈췄던 그 지점을 조영제가 넘어가고 있었다. 하얀 흐름이 막혔던 곳을 지나 저 너머로 이어졌다. 화면으로 보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냥 하얀 물질이 혈관을 따라 흐르는 것처럼.

하지만 나는 안다.

저 흐름이 다시 시작됐다는 건, 심장이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는 뜻이라는 걸.

"TIMI 3 flow."

의사의 목소리가 시술실에 울렸다. 나는 화면을 보면서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아무도 보지 않았을 작은 동작이었다. 그래도 했다. 오늘 밤 이 화면을 붙잡고 있던 내가, 나한테 하는 말이었다.

잘했어. 끝까지 잘 잡았어.

스텐트가 자리를 잡았다. 혈관은 이제 닫히지 않는다. 환자의 심장은 다시 제 길로 피를 보내기 시작했다.

나는 모니터 각도를 원위치로 돌렸다. 시술이 끝나가고 있었다. 장비를 정리하면서 화면을 한 번 더 봤다. 조금 전까지 막혀 있던 그 혈관이,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흐르고 있었다.

화면 밖에서는 아무도 몰랐다.

조금 전 이 화면이 얼마나 아슬아슬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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