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틀맘의 인터뷰] 능력을 발휘하는 ADHD 진단받은 사람들 #2
'ADHD가 있는 가족을 보면서 자라왔고 자녀 중 한 명이 같은 길을 가고 있으며, 본인 또한 ADHD 치료제를 복용 중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브런치에서 마인드립 작가님의 소개를 처음 봤을 때 눈이 번쩍 뜨였다. ADHD에 대한 직접 경험과 전문 지식을 겸비한 의사 선생님이라니! 터틀이를 키우면서 부딪히는 생활 속의 문제들에 조언해 줄 적임자로 보였다. 게다가 보통 ADHD 진단받은 사람들은 집중력이 부족해서 공부를 잘 하기 힘들다고 인식되는데, 그 어렵다는 의대에 입학하고 전문의가 되었다니 정말 ADHD의 강점을 제대로 발휘한 사례구나 싶었다.
인터뷰에 시간을 내어준 마인드립 작가님을 만나러 가는길. 브런치 매거진 '놓지마 집중력'을 다시 읽으며 묻고 싶은 질문들 중에 꼭 필요한 것만 다시 추렸다. 사실 질문하고 싶은 것이 정말 많았지만 진료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의학적인 질문은 피하려고 했다. 내가 부모로서 터틀이에게 일상 생활에서 어떤 환경을 제공하고 양육하는 것이 최선일지 마인드립님의 실제 경험과 사례에서 인사이트를 얻고 싶었다.
1. ADHD 진단받은 아이를 키우고 있는 터틀맘입니다. ADHD 진단받은 형제가 있고 자녀분과 본인도 ADHD 진단을 받았다고 밝히고 경험을 글로 나눠주셔서 저에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터틀이를 키우면서 다른 아이들에게 통하는 양육방식이 터틀이에게 전혀 통하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본인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모님의 어떤 점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까?
> 아버지는 '말 안 들으면 매가 약이다'라는 신조로 엄하게 훈육한 반면 어머니는 헌신적으로 챙겨주는 수용적인 분이셨습니다.
동생은 어릴 때부터 부주의로 인해 사고를 당하거나 다치는 일이 잦았고, 꾸물거림이 심해서 아버지께 자주 혼이 났습니다. 강박적인 성향으로 인해 학업면에서는 모범적이었던 저 또한 알 수 없는 반항과 고집으로 부모님을 난감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버지의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태도는 현 시대의 기준에서 양육 방식으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지만, 적어도 저의 어이없는 고집을 단호하게 차단하는데는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제가 과학 고등학교에서 갑자기 문과로 가기 위해 자퇴하겠다며 기숙사에서 무단으로 나와서 등교를 거부했을 때 아버지가 폭풍 같은 일갈로 일언지하에 반대한 것은 천만다행인 일이었습니다. 잘못된 진로 선택을 할 뻔 했죠. ㅎㅎ 아버지의 엄격함은 제게는 많은 선택지를 두고 여러 시행착오를 겪을 가능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작용했지요. 한편 어머니는 저희를 너그럽고 따뜻한 마음으로 품어주셨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께 대들고 당당하게 집을 나가서 서너 시간을 배회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멀찍이 떨어져 말 한마디 없이 제 뒤를 따라오시는 것을 봤어요. 결국 배고픔에 어머니께 말을 건냈고 같이 근처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은 후 집으로 돌아간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 동생에게는 두 분의 양육 방식이 좋은 쪽으로 작용하지 못했습니다. 동생은 아버지의 강압에 더 반발하고 거꾸로 행동하기도 했고, 어머니의 자상한 배려는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데 방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양육방식은 ‘엄해야 한다’ ‘자상해야 한다’ 와 같이 일방향의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녀의 성향에 따라 달리 적용될 수 있는 균형잡힌 일관된 태도가 필요합니다.
말하고 보니 너무 어려운 과제이네요. 저도 부모가 되어 학령기의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교육학적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느끼고 있습니다.
현재 ADHD를 치료중인 아이가 ‘존경하는 선생님에 대해 써보기’ 과제를 존경하는 선생님이 아직 없어서 못 한다고 버티다가 선생님께 연락이 와서 어이없고 당황스러웠는데, 순간 제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어린 시절 저를 겪었던 부모님의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2. 어떤 환경이나 조건에서 본인이 가진 강점을 잘 발휘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환경이나 조건에서 본인이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언제,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단점이 두드러지는 환경이나 조건이 있습니까?
> 저의 경우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을 좋아하고 사회적 관계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서 일찍 부모님 곁을 떠나 과학 고등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한 것이 제 내적 동기를 채우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중학교 때까지 사회성이 부족했지만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사회적 스킬을 익히고 학습적으로도 다양한 방식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유도가 높은 환경이라서 여러 가지를 해보려다가 학업을 소홀이 하면서 성적이 떨어져 첫 대학 입시에서는 실패했습니다. 처음 입학한 대학에서도 수업은 거의 듣지 않고 동아리나 친구 모임만 찾아다니다가 2.08이라는 처참한 학점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듬해 재수를 해서 의과대학에 입학하면서 극도로 구조화된 환경에서 일정한 생활패턴에 따라 지내면서 자주 시험을 보는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꾸준한 미션을 통과해야 하는 환경에서는 노력이 분산되지 않고 한 가지를 이루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반면 공부만 해야하는 지루하고 단조로운 환경이라 몇 번의 위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의과대학 실습 중에는 한시도 긴장감을 늦추기 어려운 절박함이 있기 때문에 이것이 집중할 수 있는 연료가 되어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환경 면에서도 구조화가 잘 되어 있는 생활이든 자유도가 높은 환경이든 뚜렷하게 장단점이 나뉩니다.
다만 ADHD가 있는 아동이나 청소년의 경우 아직 자신의 장단점을 파악하기 어렵고, 스스로 적응에 유리한 환경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일단 어느 정도 조직화된 환경에서 일상 생활 루틴을 연습하는 것을 권합니다. 그럼으로써 부족한 시간 관념이나 제 때 마무리하는 기술을 배운 후 점차 자유도가 높은 환경으로 옮겨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3. ADHD 진단받은 자녀를 어떻게 키우고 싶으신가요? 어떤 환경과 교육을 제공해 주고 싶다고 생각하십니까?
> 먼저 무엇보다 "어떤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기 죽지 않을 수 있도록" 지지해 주고 싶습니다. ADHD 진단받은 아이들은 대부분 어릴 때부터 혼나고 부정적인 피드백을 반복적으로 받기 때문에 자신감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밖에서 부정적인 메시지를 받더라도 부모는 항상 자신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본인의 관심사를 찾아서 그것을 심화하고 확장할 수 있는 시간과 자유를 가지도록 해주는 것이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일상 생활이 아이에게 알맞은 정도로 조직화되고, 아이가 꼭 필요한 기본적인 실행능력을 학습할 수 있는 루틴을 몸에 익히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이 둘 간에 균형이 이루어지는 교육 환경을 ADHD를 가진 아이에게 마련해 주고 싶습니다. 물론 아이가 보통 본인의 관심사에만 집중하고 하기 싫은 것은 최대한 안 하려고 하기 때문에 부모가 현실적으로 이 둘 간의 균형을 잡는 것이 쉽지는 않겠죠. 게다가 아이가 계속 변하고 성장하기 때문에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 시기에 맞게 균형을 맞춰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도 어렵지만 최대한 아이를 이해하고 이런 방향으로 이끌어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4. ADHD를 가진 아이가 형제가 있는 경우 부모는 어떻게 중심을 잡는 것이 좋을까요? 서로 다른 아이들을 함께 키우면서 각각 필요한 것과 적합한 환경이 달라서 부모 입장에서 곤란한 경우가 많습니다.
> 이것은 저도 고민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제 경우 아이 셋을 키우면서 지켜보면 첫째와 ADHD 진단받은 둘째에게 적합한 환경이 다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첫째는 좀더 경쟁적이고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이 많은 학교가 더 맞는 것 같고, 둘째는 본인의 관심사에 몰입할 시간과 여유가 있는 상대적으로 덜 경쟁적인 학교가 편한 것으로 보입니다. 같은 학교를 보내야 한다면 부모 입장에서 당연히 갈등이 있죠. 고등학교부터는 아이들의 관심사와 필요한 부분에 따라 서로 다른 학교에 진학하도록 하는 방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5. ADHD가 있는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 꼭 기억해야 할 기본적인 양육 원칙을 정리해 주세요.
첫째, 정답은 없습니다. 우리 아이에게 맞는 맞춤형 양육 태도와 환경을 찾아가야 합니다.
둘째, 규칙은 예고되고 간략하고 일관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셋째, 규칙을 지키기 위해 훈육도 필요하지만, 기가 꺾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넷째, 어릴 때는 공부도 좋지만 일상 생활 습관의 구조화와 대화기술을 연습합니다. 그리고 운동도 중요합니다!
다섯째,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되, 넛지(nudge)를 통해 부모님의 예상된 선택지 중에 결정하도록 합니다. ADHD가 있는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만 한다고 무조건 자유도가 높은 환경에 노출하고 내버려 두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