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일
마지막 기말고사 시험을 끝내고 나온 대학교를 빠져나온 나는 가방 안에 든 누런 대봉투 여러 개를 들고 각 신문사마다 돌아다녔다. 코로나가 온 세상을 뒤엎기 전의 ‘신춘문예’는 방문 접수를 받는 일도 있었다. 무슨 로망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우체국에 가서 부치는 비용이 아까워서 저지른 짓이었다.
서대문 경찰서 부근에서 내려 문화일보사로 가는 길은 눈이 제법 쌓여있었다. 발목까지 잠기는 눈을 힘겹게 헤치며 걸었다. 젖은 바지와 운동화에 묻은 눈을 구르는 두 발로 털어낸 나는 잠시 쏟아지는 입김을 주체하지 못했다. 육중한 유리문을 여니, 내 옆에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 한 분이 원고 봉투를 든 채로 열린 문 사이로 들어갔다. 나는 잠시 손잡이를 잡았다. 경비 데스크에 수없이 많이 쌓인 원고가 보였고, 할아버지는 원고를 경비원에게 이미 건네주고 등을 돌려 다시 문 쪽으로 가셨다. 나 또한 할아버지를 따라 원고 봉투를 놓았다.
경비원이 별말 없이 들여보내줘서 나는 경향신문사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카디건을 입은 기자 사이로 나는 두 손에 원고 봉투를 든 채, 꼼짝없이 둘러싸여 있어야만 했다. 엘리베이터를 나오자마자 나는 크게 한숨을 쉬고 주변을 살폈다. 사람들이 서류를 들고 분주하게 오가는 동안, 나는 문화부 팻말이 붙은 책상을 찾았다. 팻말 아래서 한 남자가 전화를 받던 중에 나를 쳐다봤다. 그는 내가 들고 있던 원고 봉투를 보고는 한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플라스틱 바구니 안에 여러 봉투가 들어있었다. 원고 봉투를 거기에 놓고 오는 동안, 손잡이가 달린 박스를 든 기자 하나가 내 옆을 지나 잰걸음으로 통로를 가로질렀다.
횡단보도를 건넌 다음에 (지금은 용산으로 이사 간) 세계일보사를 찾아갔다. 사무실은 경향보다 적었지만, 있을 건 다 있었다. 내가 원고 봉투를 들고 문화부 데스크로 가니, 맨 앞자리에 있던 남자가 전화를 받고 있었다. 아마 업무 관련 전화였으리라. 그는 눈짓 손짓을 다 사용해 가면서 해당 장르에 적합한 상자 안에 넣으라고 내게 지시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장르의 상자에 원고를 넣었다. 다른 사람의 원고 제목을 그때 슬쩍 엿봤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세 줄 이상 되는 긴 문장형 제목이었다.
조선일보사를 들르니 경비원이 나를 제지했다. 그는 내 원고봉투를 보더니 뒤쪽에 있는, 조선일보 미술관이 있는 경비실에 원고를 맡기라고 말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쪽으로 갔다. 점토 벽돌로 외장을 꾸민 건물 안은 점심을 먹기 위해 부리나케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많았다. 나 또한 급한 마음이 들어 얼른 원고 봉투를 건네주고 빨리 그 자리를 나왔다.
다시 횡단보도를 건너, 서울 프레스 센터로 갔을 때, 거기엔 나처럼 원고 봉투를 든 사람이 우글우글했다. 내가 경비원에게 다가가니 그는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바로 엘리베이터를 손으로 가리켰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와중에 접수자가 많이 왔다. 나는 원고봉투를 든 아줌마 한 명과 아저씨 두 명, 할아버지 한 명과 더불어 엘리베이터를 탔다. 우리 다섯 명은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건만, 한 줄로 나란히 서서 문화부가 있는 데스크로 갔다. 원고를 주는 일도 한 줄로 서서 줬다. 받은 기자는 잘 받았다는 말을 맨 앞에 있는 아줌마에게 했다. 나를 비롯한 나머지는 이하 동문이라는 듯 원고만 받았다. 사무적인 그의 말이 되려 마음에 들었다. 그가 나한테도 저런 말을 했다면 엄청 부끄러웠을 테니까.
한국일보까지 가려면 서울역까지 가야 해서 제법 걸었다. 남대문에 쌓인 눈을 보면서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건만, 신문사 문은 열려있었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안에 아무도 없었다. 햇살이 책상 위에 있는 모니터며, 전화며, 서류 위에 가만히 얹혔다. 나는 누구를 부른다는 발상을 한 번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사람처럼 서류 봉투를 들고 멀뚱멀뚱 서있었다. 원고 봉투를 반드시 기자의 손에 건네줘야 한다는 묘한 고지식함이 내 안에 생겨났다. 그렇게 10여 분이 흘렀을까. 저 멀리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쪽을 바라봤다. 기자 한 명이 문화부 데스크 한 구석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그에게 접수를 어디서 해야 하는지 말했다. 그는 자신에게 봉투를 건네 달라고 말했다. 원고 봉투가 내 손을 떠나자마자 나는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다 이루었다는 환희와 얼른 여길 나와야 한다는 창피함이 심장 언저리에서 요동쳤다.
졸업하기 앞서 나는 다시 신문사에 원고를 내기 위해, 한 신문사로 갔다. 어느 할아버지가 든 원고 봉투를 보면서 경비가 더 이상 여기서 접수를 받지 않는다고 조곤조곤 일렀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광화문 우체국에 들러 내 원고를 접수했다. 근처 ‘유림면’에서 ‘돌냄비’ 사 먹기로 했던 돈을 조금 떼어서 우편물 요금으로 사용했다. 그렇게 나의 둘레길 트래킹은 단 한 번으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