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5. X-62-53
「헬리콥터」는 조동익이 미처 구사하지 못했던 비트와 사운드를 들려준다. 앓는 몸의 괴리되는 느낌을 사운드로 구축한 치밀한 밀도의 사운드는 불쑥 듣는 이의 곁으로 와서 듣는 이를 다시 멀리 데려간다. 「동창」의 키보드 사운드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우러지는 지하철 소리의 소스나, 「고백」의 인트로를 차지하는 사운드 소스 또한 곡의 멜로디와 톤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릴 정도로 치밀하지만, 어느 순간 이 앨범은 현실의 맥락 자체에서도 일탈한다. 「모래 언덕」의 건조한 사운드는 레게 리듬을 첨가했음에도 생경한 미감이 되어 듣는 이의 감정을 뒤흔든다. 전작의 주요 작곡가인 조동익과 윤영배, 그리고 장필순이 이 앨범에도 참여했지만, (엔지니어들의 도움도 많이 받은) 그들이 구축한 세계는 전작과 다른 곳으로 ‘이탈’한다.
「어떻게 그렇게 까맣게」, 「Soony rock」을 쓴 장필순은 그이의 보컬과 더불어 이 앨범에서도 여전히 눈부시게 빛난다. 더 이상 힘주어 부르지 않는 그이의 노래는「흔들리는 대로」나 「동창」,「10년이 된 지금」와 같은 곡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서늘한 감각을 눙치게 하는「햇빛」의 사운드와 장필순의 보컬은 이 앨범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머무른다.
조동익은 그 자체로 선명한 사운드를 앞세우며 장필순의 목소리를 문득 ‘낯설게’ 하기도 하고 어느덧 친숙하게 만들기도 한다. 「모래 언덕」을 압도하는 사운드 속에서 이펙터를 건 장필순의 목소리는 거의 들릴 듯 말 듯하다. 리얼 악기와 미디 음악의 구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한 사운드가 건조한 자장가를 부르는 장필순의 목소리를 강조한다. 덕분에 감상적인 성격으로 떨어질 수 있었을 소재를 적확하게 표현한다. 「동창」을 노래 부르는 장필순의 따듯한 톤을 서늘하게 만드는 곡의 사운드는 동창이라는 호칭의 반가움과 거리감을 적절하게 표현한다. 「흔들리는 대로」의 건조한 톤을 지닌 리듬 트랙 또한 곡의 따스함을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앨범의 가장 훌륭한 걸작인 「신기루」는 조동익이 편곡한 뛰어난 사운드가 곡의 건조한 정서와 절묘한 위치에서 조응한다. 전작의 「TV. 돼지. 벌레」에서 독특함에 머물렀던 조동익의 감각은 이 앨범에서 깊은 사운드로 숙성하여 말 그대로 한 몸처럼 움직인다. (「Soony rock」의 후반부에 휘몰아치는 사운드는 도무지 빈틈을 찾을 수 없다.) 여기에 무언가를 보태면 과잉이 되어 사운드가 곡을 먹어버릴 테고, 무언가를 빼면 모래로 만든 집처럼 와르르 무너질 듯하다. 정말이지 어렵고 미세한 톤과 어조와 뉘앙스의 중용을 이 앨범은 능숙하게 구사한다.
이 앨범은 포크트로니카니 도회적 감각이니 하는 정의도 훌쩍 벗어난다. 현기증과 신기루, 도시와 고독을 이 앨범의 사운드가 비교적 가지런히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 차근차근한 가지런함이, 도회적 감각이나 해당 장르, 심지어 전작조차 미처 챙기지 못한 희미한 따사로움을 온전히 표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햇빛」에서 나는 도시라는 사막 한가운데에도 여전히 일정한 속도로 뛰는 맥동을, 햇볕을 받은 맨살의 온도와 더불어 듣는다.
오늘날 음악적 자존을 택한 수많은 일렉트로니카 뮤지션의 ‘방법’을 이 앨범은 먼저 실천한 듯하다. 물론 이는 우연이다. 그러나 이 앨범을 들을 때마다 그들의 반짝거리는 빛 또한 더불어 생각난다. 모든 자존은 결국 아름답다는 사실을 저 한 움큼의 빛이 일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