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곡인 「Breezy」에서 반복하는 허밍은 90년대가 미처 획득하지 못한 나른함으로 가득하다. 조원선의 코드 위주의 키보드와 이상순의 펑키한 기타, 지누의 그루브 넘치는 베이스가, 객원 드러머로 참여한 이상훈의 스네어 드럼 위주의 드러밍과 만나 이룩한 이 소리의 세계는 단조로운 멜로디를 토대로 자잘한 변용을 발휘한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곡의 구조를 그들은 마치 반복을 거듭하는 일상처럼 하나의 루프로 만들어 반복한다.
「가만히 두세요」에 등장하는 지누의 훵키 베이스 사운드나, 「떠나가네」와 「힘을 내요 미스터 김」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이상순의 기타는, 1집에서 주로 선보인 톤 위주의 연주에서 벗어나 좀 더 명확한 음을 내는 방식으로 선회한 그들의 방식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지누의 베이스는 그로 인해 음장감을 얻었고, 이상순의 기타는 그로 인해 이상순의 장점인 필링을 더욱 맛깔나게 내세울 수 있었다. 조원선의 키보드는 이상훈의 명확한 드러밍까지 합쳐서 자칫 소화불량이 될 수 있었던 사운드를 하나의 톤으로 지그시 추려낸다. 1집의 서늘하다시피 한 세련미(와 명백한 오류)를 상실했지만, 그 상실이 아쉽지 않을 정도의 사운드를 이 앨범은 들려준다. 더욱 발전된 세션과 녹음을 들려주면서도 자신들의 추구한 기조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힘을 내요 미스터 김」이나, 「runner(day by day)」의 사운드는 그들이 여전히 세련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홈 레코딩으로 만든 결과물이기에, 「어느 하루」의 초반을 장식하는 사운드 배치 믹싱과 같은 다소 실험적인 어프로치도 가능했으리라. 이상순이 자신이 연주한 최고의 플레이로 꼽은 바가 있는 이 곡은 이상순의 기타를 위시한 반주와 (그마저도 팝필터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은 흔적이 들리는) 조원선의 목소리가 괴리된 채 들린다. 곡의 간주가 끝날 무렵이 되어서 베이스 연주와 더불어 드럼 필인이 등장하자, 세션의 연주와 조원선의 목소리는 비로소 합일한다. 감정과 사운드에 거리를 둔 조원선의 목소리는 더 깊은 체념의 스캣을 청자에게 들려준다.
전작과 달리 이 앨범에서 대부분의 곡을 작곡한 조원선은 자신의 곡을 보컬로도 완벽히 장악한다. (해금의 새로운 표현법을 발견한) 「love virus」, 「말하지 못한 이야기」의 서늘함과 「떠나가네」의 유쾌함과 「일상다반사」의 따듯함을 겸비한 그이의 보컬은 홈레코딩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톤을 명확히 유지하며 이 앨범의 성격에 일관된 감정적 거리를 부여한다. 더할 나위 없이 따듯한 「일상다반사」는 바로 이러한 거리감 덕분에 감정까지도 풍경의 일부분으로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다양한 톤의 곡을 일관된 표현과 감정으로 갈음하는 그이의 심플한 보컬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1집이 홈레코딩으로 만든 조인트 앨범이고, 3집이 롤러코스터가 만든 일렉트로니카 음악의 정점을 찍은 앨범이라면, 이 앨범은 ‘롤러코스터’라는 밴드가 만든 앨범이다. 롤러코스터는 이 앨범에 이르러 단순한 사이드 작업을 벗어나 좀 더 확실하게 완성되었다. 그들이 들려준 이 명확하고 수더분한 사운드의 세계는 감정과 일상을 담백하게 조망한다. 90년대의 강박적인 세련미에서 마저 탈피한 그들의 세계는 한결 산뜻하게 피부에 직접 와닿는다. 소위 '개성시대'에서 개인주의의 시대로 넘어갈 무렵의 사운드를 이 앨범은 잘 구현했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