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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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MIN

이 앨범을 살피기에 앞서, 이 앨범보다 먼저 나온 정규 앨범 『바람』(1973)과 싱글 앨범 『봄/햇님』을 먼저 눈여겨봐야 한다. 『바람』엔 『NOW』의 수록곡 7곡이 먼저 실렸다. 『봄/햇님』엔 「봄」, 「햇님」이 먼저 실렸다. 『NOW』에 실린 나머지 노래 중 「고독한 마음」은 (『바람』에는 실리지 않은 「가나다라마바」와 더불어) 김정미가 데뷔 앨범서부터 꾸준히 새로 녹음하여 취입했던 곡이었다. 「당신의 꿈」과 「나도 몰래」는 양희은이, 「아름다운 강산」은 ‘신중현과 더 멘’이 먼저 취입한 곡이었다. 애당초 『바람』은 신중현의 ‘야심작’이기도 했다. 그가 『바람』에서만 신곡을 6곡이나 실었기 때문이었다. (『NOW』에 실린 「바람」, 「불어라 봄바람」, 「비가 오네」가 바로 그 6곡의 신곡 중 3곡이었다.) 싱글 앨범인 『봄/햇님』에 실린 「봄」과 「햇님」은 『NOW』에 들어있는 버전과 사운드 면에서 큰 차이점이 들리지 않는다. (이 싱글 앨범이 『NOW』 발매 전에 나왔는지 발매 뒤에 나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아무튼 신중현은 이전에 발표했던 곡 중에서 몇 곡을 가려 뽑아 새로 녹음해서 『NOW』를 만든 셈이었다.


기실 컴필레이션 앨범에 가까운 앨범이지만, 이 앨범의 음악은 흥미롭게도 (독특하면서도) 고른 흐름을 지녔다. 첫 곡인 「햇님」서부터 오보에 연주와 어우러져 피어오르는 스트링 연주 사운드가 (보다 너르고 복잡한 감정으로) 청자의 마음을 가만히 (그러나 우아하게) 고양시켰다. 이 사운드를 그야말로 정갈히 입은 「햇님」의 (한번 끊었다가 다시 처음 사운드로 돌아가는) 독특한 곡 구조에 힘입어 「봄」의 생동감 넘치는 질감이 더욱 선명하게 살아났다.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정갈하지만 누추하지 않다. 해사한 세계로 마침내 나아가는 모습을 소리로 구체화했던 이 앨범의 사운드엔 소위 ‘삿된 것’이 없는 듯이 들린다.


신중현은 『바람』에 실렸던 세 곡을 (키보드 파트를 거의 없애고) 다시 녹음해서 이 앨범에 실었다. 『바람』에 실린 버전에 비해 더욱 깔끔한 이 앨범의 「바람」은 김정미의 비음 섞인 관능적인 목소리가 (저음부를 강조한 드럼 연주와 선명한 베이스 연주가 큰 힘을 보태면서) 더욱 매혹적으로 들린다. 곡의 후주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신중현의 기타 연주는 이 앨범의 ‘끝까지 밀고 나가는’ 방식을 음악으로 푼 명연(名演)이다. 「고독한 마음」과 「비가 오네」와 같은 블루스 곡 또한 김정미의 보컬 속에 깃든 특유의 관능미를 보다 선명히 살렸다. 이 앨범에 참여한 ‘신중현과 더 멘’ 또한 곳곳에서 맹활약했다. 짧은 곡에 속하는 「불어라 봄바람」의 후반부 코러스는 지금 시대에도 충분히 먹힐 정도로 신선한 뉘앙스를 머금었다. 「나도 몰래」의 선명한 베이스 연주는 곡의 그루브를 감각적으로 살렸다. 이 앨범의 「가나다라마바」를 연주하는 이들의 자유로운 연주는 한층 더 순정(純正)했다.


신중현이 ‘소화’한 사이키델릭 음악은 늘 자연의 품에 안기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나 이 제스처는 단 한 번도 음풍농월(吟風弄月)로 타락하지 않았다. 신중현이 만든 정갈한 사운드에 김정미의 목소리가 깊은 매력과 품위를 부여한 덕분이었다. 캘리포니아의 해를 사모했던 “사랑의 여름”을 가을 하늘의 평온함으로 멋지게 치환했던 신중현의 사이키델릭 사운드 시대는 이 앨범에서 (자의든 타의든)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신중현은 이 앨범에서 얻은 음악적 역량과 자신감(과 거대한 위기의식)을 등에 업고, (이 앨범이 발매될 당시에 결성한) 기존의 5인조 밴드인 ‘신중현과 엽전들’을 3인조 밴드로 재편성하여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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