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8. X-X-99
90년대의 대표적인 음악 레이블 중 하나였던 하나음악에서 자신이 만든 곡을 처음 발표했던 윤영배는 (하나음악이 사실상 흩어진) 2010년대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앨범을 연달아 내기 시작했다. 첫 앨범인 『이발사』 EP(2010)는 기타와 목소리만 들어간 (역시 그가 만든) 다섯 곡이 여타 다른 풀 렝스(Full-Length) 앨범 이상의 만족감을 채워줬던 앨범이었다. 두 번째 앨범인 『좀 웃긴』(2012)은 자신이 만진 마스터링 버전과 소위 ‘관행적인’ 마스터링 버전이 함께 실린 독특한 앨범이었다. 우리가 믿는 전부가 사실 시스템이 ‘인식’한 전부일 수도 있다는 걸 그는 관습적 사운드와 자신의 사운드를 나란히 놓으며 지적했다. 이렇게 독특한 사유를 실천주의적인 행보로 풀어냈던 그는 마침내 이 앨범을 발매하며 (소외된) ‘옛 우물’을 캐냈다.
이 앨범의 모든 소리는 그 ‘옛 우물’의 어두운 수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듯하다. 이 앨범의 ‘강한 말’을 노래하는 윤영배의 목소리는 은근하고 낮으며 또한 거칠다. 「자본주의」와 「구속」의 강한 사운드는 바로 윤영배의 이런 낮은 목소리를 더욱 강조한다. 그는 이 앨범의 사운드가 지닌 거친 질감을 온전히 살리기 위해 소리를 ‘듣기 좋게’ 가공하는 ‘안전장치’를 사실상 거부했다. 마스터링에 대한 의구심을 사운드로 실천했던 전작에서 이 앨범은 더 나아갔다. 이 앨범의 사운드가 제법 꺼끌꺼끌하게 들리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이 앨범의 ‘질감’은 우리가 기존에 들었던 ‘달콤한’ 사운드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 앨범은 바로 까슬까슬한 사운드로 세상의 모든 ‘권력’에 저항했다. 앨범의 중심에 자리한 「점거」와 「위험한 세계」는 이 앨범의 ‘적’을 명확하게 지목했다. 철탑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는 자의 (피로가 섞인) 절실한 분노를 이어받은 「점거」의 연주는 점차 프리재즈의 즉흥 연주에 가까운 ‘난장’과 ‘탈진’의 연주로 이어졌다. 다음 곡인 「위험한 세계」는 바로 그 ‘탈진’에서 출발했다. 관조적인 시선으로 저항하는 이의 대지를 그린 윤영배의 낮은 목소리는 투쟁하는 이들과 ‘어깨동무’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 앨범이 지닌 ‘흙 가슴’은 사람 냄새로 웅숭깊다.
「목련」에 깃든 체념의 서정을 천천히 부르는 보컬이나, 「농부의 꿈」이 장조와 단조를 넘나들며 부르는 (자율적으로 지키는) 4.4조의 가사, 「빈 마을」의 섬세한 연주는 바로 저 ‘어깨동무’를 염두에 둬야 비로소 온전히 작동한다. 이 세 곡이 지닌 결은 고스란히 ‘위험한 세계’에서 왔다는 사실을 그는 일관된 어조의 사운드로 ‘발언’했다.
앨범의 공동 편곡자이자 기타 세션이었던 이상순은 (「자본주의」의 인트로에 등장하는 리듬 기타 연주에서 알 수 있듯,) 이 앨범이 지닌 자연스러운 ‘저항’에 시니컬하며 건조한 톤의 기타 연주를 보태며 이 ‘저항’에 확실한 무게감을 부여했다. 김정렬은 노이즈를 줄이고 저음부를 키운 중용의 베이스 연주를 이 앨범에 보태며, 앨범이 지닌 아우라를 고스란히 살렸다. 「위험한 세계」의 후반부를 비롯하여 여러 곡에 등장하는 박용준의 키보드 연주는 이 앨범의 수록곡마다 깃든 날 서린 비판에 인간의 ‘체온’을 보탰다.
신자유주의(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라는 거대 시스템을 직시하며, 「선언」은 말한다. 우리는 네게 우리를 소모할 권리를 주지 않았다고. 사람은 결국 다른 사람의 마을이 되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