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인 May 01. 2022

예쁜 다섯 살을 보내고 있는 너에게

육아일기라 쓰고 반성문이라 읽는 편지


새벽 두 시쯤 되었을까. 오늘도 어김없이 침실에서 울리는 너의 울음 사이렌 소리에 영문도 모른 채 잠이 깨고 말았지. 나쁜 꿈이라도 꾸었던 건지, 잠은 오는데 소변이 마려워 깬 것이 짜증이 난 건지, 잠결에 어둠이 무서웠던 건지, 그 와중에 모든 것이 나름의 규칙대로 정돈이 되어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너에게 흐트러진 너의 이부자리조차 마음에 안 들었던 건지. 대체 왜 우는 건지 얘기를 해보라고 해도 동네 사람 다 깨울 기세로 목이 쉬어라 울기만 하는 너를 이불째 거실로 데리고 나와 뭐가 속상한지 얘기를 하라고 언성을 높이며 몰아세웠지. 화난 엄마의 눈치를 보면서 고개를 숙인 채 품에 안은 쿠션만 만지작 거리는 너에게 잘 거냐고 묻자 대답 없이 끄덕이며 엄마를 등지고 돌아눕던 너. 울다 지쳤는지 금세 잠이 들어버린 너의 조그만 등을 쓸어주면서 밀려드는 미안함과 후회로 엄마는 잠이 싹 달아나버리고 말았어. 네 감정을 먼저 토닥여 줄 걸. 또 별것 아닌 일로 너에게 화를 낸 것 같아서.

언젠가 "엄마는 경찰이에요. 경찰은 도둑을 좋아해요." 한 적이 있었지? 경찰은 도둑을 쫓아다닌다면서. 너의 귀여운 상상력에 피식 웃음이 나던 말. 그런데 정말로 직업상 나쁜 사람들이나 아픈(정신적으로)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엄마도 좀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 물론 구차한 변명이지만. 고슴도치처럼 가시 돋친 모습으로는 너를 안아줄 수가 없는데. 죄 없는 너까지 나의 날 선 가시들에 찔리고 아프게 한 건 아닌가 하는 자책감도 드는구나.

사실 너의 예민한 기질의 출처는 나인데. 유전이든 함께 지내며 자연스럽게 후천적으로 닮아간 행동양식이든 너를 이렇게 만든 게 나인데 엄마는 '바담 풍' 하면서 너는 '바람 풍'하라고 가르치려 드는 꼴인 것 같아서 정말 미안하다. 제발 울고 떼쓰지 말라고 야단치지만 사실 우는 건 나쁜 게 아니야. 기쁜 일이 있으면 웃음이 나는 것처럼 슬프면 우는 게 당연한 거지. 네 감정은 항상 옳아. 다만 가족이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지. 모두가 잠든 늦은 시간에 큰소리를 내서 다른 사람의 잠을 깨우면 안 되는 것처럼. 네 마음을 먼저 읽어주고 따듯하게 이야기해주어도 충분히 알아듣는 너인데. 엄마의 그릇이 작아서 너를 다 못 담을 때가 많구나. 머리로는 항상 되새기고 노력은 하는데 막상 실전에서 실천이 참 어려운 것 같아.

치과 진료도 씩씩하게 받고, 유치원에서 음식도 골고루 남김없이 먹고,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흥이 많은 너. 따로 가르쳐주지 않아도 어른에겐 항상 존댓말을 쓰고 아빠가 요리할 때, 엄마가 빨래를 갤 때 돕겠다고 스스로 나서는 너. 주관이 뚜렷하고 고집이 세서 쌀쌀한 날에도 겉옷을 입지 않겠다거나 빨래통에 들어간 옷을 입겠다며 매일 사소한 전쟁을 치르기도 하지만 엄마ㆍ아빠는 네가 참 대견하고 예쁘단다. 책 읽기도, 영어공부도 선생님 흉내를 내가며 주도적으로 하고 동생을 챙겨야 할 때는 의젓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너. 부족한 엄마ㆍ아빠에게 너무나 고맙고 자랑스러운 딸이야.

올해로 꽉 찬 네 살이 된 50개월 우리 큰 딸. 네가 첫째다 보니 너의 나이가 곧 나의 '엄마 경력'인 셈이니 어느덧 나도 5년 차 엄마가 되었네. 엄마가 더 오래 살았기 때문에 너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 뿐이지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란다. 엄마도 열심히 배우고 더 노력할게. 나도 엄마로서는 다섯 살이니까. 작은 그릇이라 많이 담을 수 없다면 최소한 깨지지 않도록 더 단단한 그릇이 될게.
우리 더 사이좋게 지내보자.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내 딸.
영원한 너의 편, 엄마가.

작가의 이전글 '경찰'은 더 이상 '호구'가 아닙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