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친정은 동네 유지였다고 하셨다.
장손인 오빠에게 신문사까지 내줄 정도로 부자였던 부모님이었지만
여자인 당신에게는 초등학교 교육으로 끝을 냈다고 하셨다.
일꾼들이 많아 집에 늘 음식이 많았고, 어머님은 식탐이 많아 작은 키에 체격이 커서 좋은 혼처가 없었다고 하셨다.
어려서 일찍 죽은 언니가 하나님을 믿었는데 그 언니를 만나기 위해 신앙을 갖게 되었는데
교회 전도사님이 소개해 준 아버님이 교회 다니게 해 준다는 약속을 하셔서 부부가 되었다고 하셨다.
아버님은 이십에 들어선 어느 날 지나가는 마차에 다쳐 허리를 다쳤고,
가난한 살림에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평생허리로 고생하셨다.
쌀보다 보리가 많은 밥을 처음 먹은 새색시는 허리 아픈 신랑과 함께 살림을 일구느라 몸이 반쪽이 되었다.
아버님 아래로 두 형제가 있던 터라 두 분은 고향을 떠나 서울살이를 시작했는데,
몸이 편치 않은 아버님은 일 얻기가 쉽지 않으셨단다.
이런저런 과정 끝에 아파트상가 안에 지물포를 내게 되었지만,
아버님은 허리통증으로 일을 많이 할 수 없어 벌이가 나아지진 않았다고 하셨다.
궁리 끝에 가게 안 공간을 만들어 만화방을 만들고 어머님이 떡볶이를 팔면서
조금씩 돈이 모아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도망가고도 싶고 힘이 많이 들었지만 종교 때문에 묵묵히 사셨다고 하셨다.
내가 시집가고 5년 후 아버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그런 삶을 사셨던 어머님은
내게 따뜻한 말 같은 건 한 번도 해 주지 않으셨다.
나는 애교 있는, 말도 잘하는 그런 며느리는 아니었지만,
잘 지내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서 어머님께 애정표현을 조금씩 하곤 했는데..
그러다 어느 날
어머님의 손을 슬쩍 잡고
어머님과 함께 해서 좋아요..라고 했다.
확 뿌리치진 않아도 손은 빼시고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아 무안해라~~
그 후에도 간혹 손을 잡아도 슬쩍 빼시기 일쑤였다.
그런 어머님이 딱 한번 먼저 내 손을 잡아 주신 적이 있다.
어머님은 다낭성신장병으로 투석을 하셨는데, 그 원인 때문인지 복통과 심장통으로 힘들어하셔서
그날은 이것저것 종일 검사를 하고 검사준비와 검사로 하지 못한 투석을 하기 위해 병원에 누워계셨다.
서로 근무하고 만난 우리 부부는 종일 어머님 모시고 고생한 아가씨와 교대하기 위해 병원에 들렀다.
아가씨는 일을 보러 가고 남편은 물이라도 사 온다고 가고 나는 병실에 남았다.
힘드신 듯 얼굴이 잠시 일그러지기도 하시는 어머님 손에 손을 얹었다.
평소라면 가만히 계시거나 쓱 옮기실 텐데 그날은 손위 치를 바꿔 내 손을 잡으셨다.
힘 있게 한번 꼬옥 잡아 주시고는 다시 손을 편히 하셨다.
난 순간 뭔 일이 일어났던 건지 멍해졌다
그리고 혼자 참 좋아했다.
집 가는 방향이기도 하여 퇴근 후 들린 아주버님도 병원으로 오시고
일을 마무리하고 돌아온 아가씨도 함께
삼 남매의 호위를 받으며 퇴원하신 어머님은
그날 검사가 너무 힘드셨는지 집으로 돌아가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생을 달리 하셨다.
마음은 먹고 있었지만 그날일 거란 생각은 못했었기에 다들 너무 황망한 상태로 어머님을 보내드렸다.
그것도 벌써 9년 전 일인데 가끔 내 손을 비비적거리다가도 그날이 생각난다.
그 한 번의 손잡아주심이 내겐 참 따뜻한 어머님으로 기억하게 한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칭찬의 말 한마디 없으셨던 어머님이지만
타박의 말도 한번 없으셨음을 깨달았다.
왜 한 번도 못마땅한 게 없지 않을셨을까만은
그렇게 어머님은 나름 애정을 표현하신 게 아니었을까 위안을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