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25일 오전 00:43 마침
오늘은 괜히 뜬금없는 이야기를 하나 쓰고 싶다. 누구나 한 번 즈음은 생각해볼 수도 있고, 겪어보기도 하는 게 바로 이런 느낌. 사는 게 재미가 없다는 느낌이 아닐까 싶다. 오늘은 지인분이 잠시나마 삶을 놓아버리려고 했던 순간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런데 생존본능이 1초도 채 지나지 않아 도로 돌아오더란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그분이 그 짧은 순간이나마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면, 그리고 가끔은 난 그 정도는 전혀 아니지만, 가끔 삶이 조금 재미없다고 느낄 때의 이유를 생각해 보면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
첫째는 무력감이다. 내가 목표로 삼고 열심히 한 일의 성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가 그렇다. 여기서 '일'의 정의를 아주 넓게 정의를 내려서 가정사와 직장사, 대인관계까지 포함시켜서 내가 어떤 목적의식을 가지고 한 행위가 전혀 효과를 나타내지 못할 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그리고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 그 노력에 대해 인정해주는 이들이 없을 때, 이럴 때 정말 삶이 재미는 물론이거니와 의미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 같다.
사실 두 번째 원인이 내가 더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두 번째는 소통의 부재이다. 누군가 대화 상대가 없다는 점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을 때, 비록 있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생각할 때 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대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 그럴 때는 정말 혼자서 무력하고 재미없는, 그리고 의미도 없어 보이는 자신의 일상이 너무나 허무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삶의 무력감은 사는 것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기 시작하는, 아마 학창시절부터 느낄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래도 학창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드문 경우를 제외하곤 그래도 가장 친한 한두 명의 친구가 있을 것이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직장생활로 들어간 이들부터는 이게 조금씩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는 좁아진다. 그리고 나랑 맞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주로 어울리게 된다. 그런데 직장 동료도 곧 경쟁자일 수 있고, 사장과 직원의 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친해질 수 있는 관계인지 생각해 보면, 자기 이야기를 하며 말과 글로 그 스트레스를 털어버리고, 오히려 즐거움도 얻을 수 있는 그 시간과 상대는 참 얻기 힘들 수도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나처럼 자주 글을 쓰는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연결될 수 있는 막강한 커뮤니티가 있다. 일면식이 없어도 글을 통해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마저도 없는 사람들도 많다.
노인의 삶이 괴로운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을 대상이 없다는 데 있는 것 같다. 나이 들수록 친구가 더 소중하다는 게 그런 측면에서 더 와닿는 것 같다.
남자는 나이 먹어도 첫째가 아내, 둘째는 애인, 셋째는 여자친구 등등 여자가 필요한데, 여자들은 나이가 들면 가장 필요한 대상이 친구로 순위가 정해진다는 이야기를 TV 프로그램에서 들은 적이 있는데, 공감이 간다. 성향상 남자들의 경우 자기 자존심, 체면 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자기 이야기를 잘 드러내고 누군가와 쉽게 소통하는 게 더 힘이 든 것 같고, 내 생각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이들과의 소통에 대한 거부감이 더욱 강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그냥 내 경험상 그런 것 같다.
여하튼 중요한 점은 자기 이야기를 터놓고 나눌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 그리고 거꾸로, 학생들 가르치는 지문에서 읽은 내용인데,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고자, 즉 자기 이야기를 누군가 들어주길 바라며 30년간 만들 수 있는 친구의 수보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짐으로 인해 3년 동안 만들 수 있는 친구의 수가 훨씬 많다는 이야기가 무료하고 무력하고 의미 없게 느껴지는 삶에 대한 답이 아닐까 싶다.
어찌 보면 학생들을 늘 상대하는 나의 직업은 그런 면에서는 질적으로 좋은 직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