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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끌 Feb 28. 2021

식탁 위의 중국사

책끌(책에끌리다) #서평 119

한 상 가득 펼쳐진  중국 오천 년 미식의 역사



10여 년 전 중국 광저우에 있는 친인척 집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아침에 집에서 밥을 하는 대신, 근처 가게에서 만두나 두부 등 간단한 먹거리로 아침을 먹는 모습이 특이했다. 중국 사람들은 다리 4개 달린 책상 빼고 다 먹는다는 말이 있을 만큼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갖가지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있다. 


<식탁 위의 중국사>는 50권이 넘는 풍부한 사료에서 찾은 중화요리의 흥미로운 뒷이야기를 다루면서 '음식'이라는 키워드로 5천 년 중국의 역사를 '요리'라는 주제를 통해 중국 문화와 중국인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 초점을 맞췄다. 


이 책은  50권이 넘는 풍부한 사료에서 찾아낸 역사적 진실을 기반으로 중국이라는 이름 아래 모인 다양한 민족의 다채롭고 흥미로운 음식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진짜 중국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비교문화사를 공부하고 일본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데, 틀에 박힌 중화사상에서 벗어나 지금 중국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문화가 융합되어 왔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설명했다. 


중국의 식문화 역사는 5천 년의 역사로 불릴 만큼 길다. 많은 민족이 공생하며 서로 다른 문화가 격렬하게 교차하고 충돌했던 중국에서는 왕조 교체가 빈번했고, 전혀 다른 민족이 각 시대를 지배했다. 이처럼 정치 주체가 바뀔 때마다 변방과 한족 사이에는 문화이 확산과 흡수가 반복됐고, 그 와중에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변하듯 음식도 계속 달라지며 발전했다. 하지만 고대 중국인도 지금과 같은 요리를 먹은 건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인들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과 달리 음식으로 보는 중국사는 수많은 이민족의 침략, 서역과의 교류를 통해 다양한 문화가 뒤섞였으며,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중화요리점이 그 문화 속에 융합되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이런 ‘짬뽕 문화’가 중화요리의 근간을 이루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식탁 위의 중국사


<식탁 위의 중국사>의 저자는 중국요리의 조리법을 기준으로 보면 중화요리의 역사는 사백 년을 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천요리는 대표적인 중화요리 중 하나로 매운맛을 먼저 떠올리지만 매운맛을 내는 고추는 17세기 명 말기에나 중국에 전해졌다. 고추가 식용으로 재배된 것은 더 이후인 18세기 초로 추정된다. 따라서 매운맛이 특징인 사천요리는 길게 잡아도 사백 년을 넘지 않는다. 그 이전에 사천요리는 고추 대신 산초를 사용했다. 


중국에서는 옛날부터 매운 음식을 즐겨 먹었을 것 같지만 매운맛을 내는 고추는 18세기 초가 되어서야 중국에 퍼졌다.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마라탕’ 역시 비교적 최근 음식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만두나 면에 대해 몰랐으며, 쌀이 아닌 콩이 서민의 주식이었다. 현대 중국인은 생선회를 먹지 않지만 춘추시대에는 생식이 매우 일반적이어서 공자도 육회를 즐겨 먹었다.


마파두부는 근대 이후에 진이라는 할머니가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지는데, 역사로 보면 백 년 정도다. 중국식 햄인 화퇴는 국물을 낼 때 꼭 넣어야 하는 재료로 감칠맛을 내는 숨은 공신이다. 화퇴의 시작은 송대까지 내려와야 하므로, 당대 살았던 양귀비는 화퇴 국물 맛을 본 적이 없다. 이처럼 역사가 오래된 식자재도 원래는 중국산이 아닌 게 많다고 이야기했다.


우리가 중화요리라고 부르는 일반인들도 즐기는 현대 중국요리는 '상중하'로 구분할 수 있다. '상'은 고급 요리로 상어 지느러미 찜, 제비집, 통돼지구이, 북경오리, 전복 채소찜 등이다. '중'은 일품요리 주문이 가능한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요리로 칠리새우, 피망 쇠고기 볶음, 해파리냉채, 피단 등이 있다. '하'는 시내 곳곳에 있는 대중식당의 메뉴로 부추 간 볶음, 마파두부 같은 요리와 면 요리, 만두, 슈마이, 완탕, 춘권 등의 점심(딤섬)을 이야기한다.


우리 집 근처에도 중국집이 여러 곳이 있고, 가까운 시내는 물론 유명 관광지에 가면 중국요리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어 보니 그동안 중화요리라고 하면 중국의 전통 요리라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이민족의 침략과 서역과의 교류 과정에서 만들어진 근대적 산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중국 식문화는 역사 속에서 몇 번이나 큰 변혁기를 맞았고, 식자재에서 조리법에 이르기까지 음식과 식습관이 급격히 달라졌다는 점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중국의 음식 문화의 변화는 시대별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데 생산력 향상, 서역과의 교류, 이민족의 지배 혹은 새로운 조미료의 탄생 등에 따라 맛없는 음식은 도태되고 맛있는 음식은 남았다. 저자는 중국의 음식 문화를 보면 식자재도 조미료도 조리법도 태생이 어떻든 맛있게 먹을 수만 있다면 끊임없이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중화요리가 세계 어디를 가도, 누가 먹더라도 크게 이질감을 느끼지 않게 된 건, 많은 이민족의 요리 문화를 받아들이고 융합하는 과정에서 잡종의 식문화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요즘 '중화요리'라고 하면 맵고 짜고 기름진 음식을 떠올리는데, 실제로도 그렇다. 현대 중화요리의 대표적인 조리법인 초(볶음), 폭(삶은 후 기름으로 볶음), 작(튀김), 전(재료 3분의 1이 기름에 잠긴 상태로 튀김)은 모두 기름을 사용한 조리법이고 완성된 요리에도 참기름이나 샐러드유가 더해졌다. 현대 중화요리의 주메뉴는 항상 볶음 요리지만 옛날 중화요리는 꽤 달랐다고 한다. 송대 책인 <동경 몽화록>에 나오는 볶음 요리는 허파, 조개, 게, 세 종류뿐으로, 현대에서 많이 먹는 돼지고기나 닭고기 볶음 혹은 생선이나 새우볶음은 아예 없다. 


1990년대 이후 서구와 일본에서 들어온 패스트푸드도 중국의 식문화 및 중국인의 미각을 크게 바꿔 놓았다. 맥도널드 1호점은 예상을 뒤엎고 매출이 계속 상승하여 짧은 기간에 서민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또한 KFC가 중국에 진출하면서 '켄터키'라는 브랜드명을 의식해 치킨을 전문으로 하는 토종 패스트푸드점 '룽화지(영화로운 중국의 닭)'를 열었는데, 두 브랜드 모두 공생하며 매출을 늘리고 있다.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중국에서 패스트푸드는 성공하지 못할 것으로 봤다. 하지만 중국의 청소년들은 패스트푸드를 외래 음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만큼 이미 생활 속 깊숙하게 음식 문화로 자리 잡았다.


<식탁 위의 중국사>는 위진, 남북조 시대, 수당시대, 송대, 송원시대, 명청시대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중국의 음식 문화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소개했다. 특히 50여 권의 음식 관련 서적에서 찾아낸 진짜 중화요리는 무엇인지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했다. 유목 민족의 요리는 어떻게 전해졌는지, 개고기가 사라진 이유, 천대받던 돼지고기는 어떻게 중국인들의 주식으로 떠올랐는지, 춘권의 내력, 매운맛의 혁명 등 중국을 대표하는 요리들의 변천사를 재미있게 짚었다.


17세기에 청왕조가 세워지면서 만주족의 수많은 요리가 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만한전석(滿漢全席)'이라는 말로 상장되는 중화요리의 가장 큰 특징은 잡종성에 있다. 또한 중국은 지역과 지역 사이의 편차가 너무 커서 출신지가 다르면 서로 문화충격을 느낄 만큼 식생활이 다르다. 두부도 지방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조리법뿐만 아니라 식습관이나 의례 음식도 지역에 따라 전혀 다르다. 


따라서 이 책의 저자는 '전통요리'를 역사의 길이로만 측정할 수는 없다며, 서양 문물이 들어오기 이전 청 말기의 요리가 전통을 이어왔냐고 묻고 있다. 오늘날 중국 전통의 맛에 가까운 요리는 대륙의 요리가 아니라 홍콩이나 대만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외국 음식과 패스트푸드의 진출로 중국의 음식문화는 또 다른 국면을 맡고 있다. <식탁 위의 중국사>는 중국의 여러 가지 상황들을 고려해 볼 수 있는 동시에 음식 문화의 다양한 변화에 대해 살펴볼 수 있었던 흥미로운 책이다.




이 글은 현대지성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 출처 : https://blog.naver.com/twinkaka/222254297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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