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때 선물 많이
올해 8년 차인 남편이 입사 후 첫 해외 출장을 가게 됐다. 가까운 일본, 짧은 1박 2일 일정이었지만 해외에 가본 게 한 손에 꼽는 남편이라 걱정이 됐다.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야 해서 전날 인천 공항 근처에서 같이 하룻밤 자기로 했다.
5년 전 결혼식을 마치고 왔던 호텔을 일부러 예약했다. 그때는 둘 다 지치고 몸도 아픈 상태라 몰랐는데 다시 와보니 제법 큰 호텔이었다.
"이렇게 중년 부부가 돼서 올 줄이야."
"그러게. 여기 뭐가 많다."
호텔 주변에 줄지어 선 식당들을 둘러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무리 멋지고 근사한 곳에 와도 내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소용이 없구나 싶었다. 그래도 지금은 이런 것들이 눈에 보이는 걸 보면 5년 전보다는 괜찮게 살고 있는 것 아닐까.
출장을 가는 건 남편인데 각종 겁에 질려 있는 건 나였다.
"여보, 이거 봐. 태풍이 여기까지 왔대."
"큰 지진 난 지 얼마 안 돼서 일주일 정도는 위험할 수 있대."
"호텔 가서 방은 꼭 낮은 층으로 달라고 해.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뛰어나와야 하니까."
걱정을 쏟아놓는 나를 놀리듯 남편은 더더욱 천하태평이었다.
"그거는 그때 생각하면 되지."
"아유, 냅둬~ 그만 찾아봐~"
낯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는데 문득 아주 오래 전 공항 풍경이 떠올랐다.
"예전에 나 7살 때, 아빠가 미국으로 3개월 정도 장기 출장을 갔었거든? 그때 공항에서 배웅하면서 빼액 하고 울었던 게 아직도 기억나."
"공항이 쩌렁쩌렁 울렸겠네."
"그때 아빠도 비행기에서 울었다고 했었어."
"아버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빠 가고 엄마랑 OO이(동생)랑 나랑 집에 왔는데 엄마가 갑자기 침대에 엎드리더니 엉엉 우는 거야. 혼자 애 둘 데리고 3개월을 보내려니 얼마나 막막했을까. 그때 엄마 나이가 서른도 안 됐었어. 나는 여보가 겨우 하루 가는 것도 이렇게 걱정이 되는데."
"진짜 젊으셨네."
"나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엄마만큼 어른이 못 되겠지."
다음 날 새벽같이 일어난 남편은 두 번째 지하철을 타고 떠났다.
-이제 안으로 들어왔어. 면세점에 아직 문 안 연 데도 많네.
-뭐라도 먹고 비행기 타.
-나 이제 외국도 혼자 갈 수 있는 남자야.
-어... 축하해.
걱정왕을 위해 출국 전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해주길래 사진 한 장을 부탁했다.
-브런치에 여보 첫 해외 출장 얘기 쓰게 사진 좀 찍어서 보내줘.
-무슨 사진?
-해외 출장 느낌 나게. 비행기 같은 거?
-무슨... 비행기 홍보 사진이야?
갬성이라고는 1도 없는 사진에 나는 작게 탄식했다.
-우리 사위 잘 갔대?
-날씨 괜찮대? 태풍 온다던데.
이틀 동안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관심과 걱정을 한 몸에 받은 남편은 어제저녁 무사히 돌아왔다. 다음 해외 출장 때는 조금 덜 걱정해 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