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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Nov 13. 2019

#27. 부부의 만찬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

 자다 일어나니 공항 근처 호텔이었다. 주위는 이미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우리를 내려 준 동이 친구들은 뒤풀이를 하러 간다고 했다.

 "나도 가고 싶다아."

 "가자. 다시 타."

 "잘 가!"

 두 번 잡으면 진짜 따라갈까 봐 재빨리 돌아섰다.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가자마자 드러누웠다. 길고 길었던 하루의 피곤함이 사방에서 몰려왔다. 

 "드디어! 끝났어!"

 "고생했어."

 감기 걸린 와중에 열창까지 한 동이의 목은 완전히 잠겨 있었다. 내가 대신 앓는 소리를 내다가 벌떡 일어났다.

 "너무 배고파!!!"

 아침은 샌드위치 반쪽, 점심은 예식장에서 마신 샴페인 한 잔이 전부였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며 위장이 아우성을 쳤다. 동이가 재빨리 룸키를 들었다.     


 식당이 모여 있는 골목에서 간판을 올려다봤다. 막창도 먹고 싶고 떡볶이도 먹고 싶었다. 하지만 그보다 뜨끈한 국물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우리는 감자탕집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평소 같았으면 전골냄비에 나오는 메뉴를 시켰겠지만 오늘은 뼈다귀해장국 한 그릇씩을 주문했다. 동이는 뼈에서 살코기를 다 바른 후 밥 한 공기를 말아 후루룩 먹기를 좋아하고 나는 국물 따로 고기 따로 밥 따로 먹는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만나 결혼을 했다.

 "여보게, 남편. 우리가 드디어 유부의 강을 건넜구려."

 "그렇게 됐구려, 부인."

 "자네는 어찌 나랑 결혼할 생각을 하였는가?"

 "갑자기? 그게 궁금해?"

 "응. 궁금해."

 "오빠가 말이야..."

 수저를 내려놓고 휴지로 땀을 훔치는 동이의 표정이 아련해졌다.

 "나랑 결혼한 이유가 따로 있었어?"

 "이유라기보다는 계기가 있었지."     


 동이는 꼭 그 일을 해야겠다며 몇 해째 준비하고 지원하고 떨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지만 그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양가 부모님과 나는 점점 지쳐갔다. 또 한 번 불합격 통보를 받은 그때, 동이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제주도 가자."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처음 받은 금일봉을 털기로 했다. 30만 원이면 두 밤은 자고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루 휴가를 내고 평일 늦은 저녁 김포공항으로 갔다.

 "동아, 비행기 탈 때 신발 벗는 거야."

 "그래? 안 부끄럽겠어?"

 "... 부끄러워."

 벨트를 매고 비행기가 출발하길 기다렸다. 그 틈을 못 참고 또 떠들었다.

 "동아, 힘내라고 노래해야 비행기 뜨는 거 알지? 앞줄부터 떴다 떴다 비행기 부를 건데 돌림 노래 형식으로..."

 "화음도 넣을까?"

 낄낄거리는데 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눈을 감았다. 귀가 먹먹해지면서 몸이 뒤로 기울었다. 창밖으로 불빛이 멀어졌다.

 "동아, 있잖아..."

 "또 뭐, 뭐, 뭐."

 "이제 다른 일 찾아보면 안 될까? 이 정도면 할 만큼 했으니까 그만하자.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세상에 직업이 얼마나 많아."

 동이는 정면을 본 채 말이 없었다. 가만히 대답을 기다렸다.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인데... 올해 한 번만 더 해볼게. 그리고 안 되면 포기할게."

 '하고 싶다'는 말이 가슴에 박혔다. 차마 더는 말릴 수 없었다.     


 "그때는 제주도 가는 게 이별 여행 같은 건 줄 알았어. 또 떨어진 마당에 차여도 할 말 없었지, 뭐. 근데 네가 그만하라고 하고, 내가 한 번만 더 해보겠다고 했을 때 아무 말 안 하는 거 보고 너랑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헤어질 거였으면 여행을 왜 갔겠어. 내가 살면서 잘한 게 몇 개 없는데 그중의 하나가 그때 더 안 말린 거야."

 제주도에 다녀오고 나는 기왕 이렇게 된 거, 목표를 합격 말고 1등으로 바꾸자고 했다. 그리고 정확히 1년 뒤, 동이는 수석으로 붙었다.     


 해장국 한 그릇을 비우고 호텔로 돌아왔다. 씻기 전에 아침부터 무겁던 머리를 정리했는데 실핀이 70개 넘게 나왔다. 수북이 쌓인 그것을 보고 있자니 속이 다 시원했다.

 뜻깊은 날이므로 맥주를 마셨다. 아픈 동이는 무알코올이었지만 표정만큼은 빨간 뚜껑을 딴 얼굴이었다. 이렇게 귀여운 사람이 내 남편이라니. 입꼬리가 방정맞게 들썩였다.     


 약 기운에 먼저 곯아떨어진 동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까는 다 끝났다고 떠들었지만 생각해보면 결혼은 끝도, 시작도 아니었다. 그저 함께 지나온 시간에 수많은 순간 중 잠시였을 뿐. 당장 내일도 알 수 없는 인생에 선을 그을 필요가 있을까. 

 아주 오래전 이맘때쯤, 어느 공중전화 앞에서 처음 만나 먼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게 될까. 어디든 상관없을 것 같다. 당신과 함께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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