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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슬로 Oct 30. 2023

17+15가 32가 되는 날

23.10.15

나이를 먹어가는 감각이란 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내 육체는 나이 앞자리가 3으로 바뀜과 동시에 새벽 2시를 절대 넘길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지만, 나의 정신은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17살 이후로는 어딘가 화석화되었다고 해야 할까. 어디선가 사람은 상처받은 나이에서 정신적인 성장이 멎어버린다고 하던데, 나는 지박령처럼 고등학교 시절에서 맴돌고 있었다. 마치 1m도 안 되는 줄에 묶인 세상이 전부인 시골개처럼.

그땐 항상 죽음을 꿈꿨다. 하지만 누군가를 죽이는 일도, 그렇다고 옥상에서 떨어지는 일도, 그렇다고 한강에 떨어지는 일도 상상 속의 일로만 존재했을 뿐, 나는 지독한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앓으며 10여년의 시간을 통과해왔다. 내 나이는 서른 몇 살이다, 라고 소개하긴 했지만 그 뒤에 17살에 죽었어야 하는데, 그 나머지 10몇년간은 죽음이 유예된채로 살아온 인생이란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육체를 가졌지만 육체 그 자체라기보다는, 마치 사고로 육체는 잃었으나 철 갑옷에 영혼이 봉인된채로 살아가는 <강철의 연금술사> 의 '알' 처럼 어느 순간 이후로 유예된 순간을 살아가는 존재에 가까웠을 것 같다.

제 나이, 제 정신의 감각을 찾아가는 일은 간단하지만은 않다. 나는 소위 한국 나이로 서른 둘이 된 올해에서야 처음으로 주변 사람에게 화를 벌컥 내거나, 멀어져버리지 않고 서운한 점을 말하는 시도를 해보았다. 내가 이걸 10대, 20대에 주변 사람들과 도대체 왜 해보지 못했는가? 란 물음과 서운한 건 역시 즉시 말하지 않으면 서로에게 본의아닌 상처가 커질 수 있다는 것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한편 PT를 처음으로 받으며 오랜 시간 나아질 가능성을 탐구하지 못했던 내 육체를 바라보게 되었다. 근육이란 것을 붙여 나갈 수 있다는 상식적인 문장을 직접 '진리' 로써 체험하게 되면서, 내 정신과 육체 모두는 절멸을 유예하였던 '화석' 의 상태에서 벗어나 점차 이 땅에 발 붙인 연수만큼의 시간을 회복해 나갔던 것 같다.

오늘도 몇번이나 패닉을 겪어 아픈 심장을 부여잡고, 불안으로 오는 이 모든 고통을 끝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육체이지만 시간의 감각을 온전히 내 것으로 붙들고 싶은 그 이상의 존재이므로, 지금 혹은 가까운 시일 안이 아닌 내 시간을 온전히 채운 후 멈추고 썩어지고 싶다. 적어도 오늘과 내일은 '현재' 에 발 붙여 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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