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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여곡쩔 Apr 13. 2024

짝퉁을 입는 CEO라니요?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내가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하기 두 달 전쯤 대표님이 먼저 회사에 사표를 내고 그만두셨다.


대표님은 흔히 ’검머외‘라 불리는 미국 시민권자였고, 미국의 좋은 학교에서 MBA를 마친 유학파 고학력자였으며, 미국과 한국 금싸라기 땅에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가진 자였으며, 미국과 한국 양 쪽에서 기업을 이끈 경영자였다.


미국물을 많이 잡수셔서 그랬을까. 그는 늘 권위주의와 격식에 얽매여 본질이 흐트러지는 걸 경계했으며, 수평적이고 자유롭게 소통하는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으레 경영진들이 출동하는 행사 자리에 가면 마치 진시황제 무덤 따라가는 종과 노비들처럼 높은 분의 사방으로 의전 인력이 줄줄이 따라붙는 판국에, 그는 늘 홀로 이곳저곳을 보헤미안처럼 돌아다니며 구경했고, 자신의 자리는 됐고 서 있는 게 좋다며 구석에 서 있었다.


사무실에서는 대표 집무실도 스스로 없애고 일개 말단 사원이 앉는 자리보다 더 불편한 사무실 정 한가운데에 앉아 누구나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대표가 되고자 솔선수범했다. 자신의 많은 시간을 할애해 정기적으로 직원들과 1:1 미팅을 가졌으며, 전 직원들이 다 모이는 사내 타운홀 미팅 때는 뭘 이런 것까지 묻는 거지 싶은 주제라도 질문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해 대답했다.


대다수의 임직원들이 그를 좋아하고 따랐으며, 나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많은 배움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그 시간에 늘 감사했다.


대표님이 그만두신다는 소식을 듣자 많이 아쉬웠다. 단박에 감사의 뜻을 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선물이 좋을까를 고민했다. 하지만 나이가 있고 사회적 지위가 있는 남자의 선물을 고르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대표 퇴임 선물을 키워드로 집요하게 검색하다 보니 비서들의 커뮤니티도 발견하여, 비서들 간의 선물 관련 고민글과 댓글들을 샅샅이 읽어보기도 했다.


와인을 무척 좋아하시는 분이니 와인과 관련된 걸 사야 하나, 아니 그건 이미 다 있거나 더 좋은 걸 원하실 텐데, 여러 가정과 그에 대한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시간이었다.


그러다가 후배가 옷 같은 걸 사드리는 게 좋지 않겠냐고 조언했다. 대표님이 프랑스에서 건너온 한 캐주얼 브랜드 티셔츠를 즐겨 입는 것 같으니 같은 브랜드로 사드리면 어떻겠냐고 덧붙였다. 나도 대표님이 종종 그 브랜드의 피케티셔츠 입은 걸 유심히 보았던 터라 후배의 생각에 동의하고 대표님의 비서에게 옷 사이즈를 묻고 곧장 백화점으로 달려갔다.


매장에서 어떤 것이 대표님의 사회적 지위에도 어울리면서, 고루하지 않고 세련되어 보일까를 고심하고, 내가 감당할 수 있으면서도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 좋은 적정한 가격대도 생각해 보았다. 남편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 후보들 간의 최종 선택을 위한 자문도 구했다. 그렇게 돌다리를 수백 번 두드려 산 티셔츠를 잘 포장하여 대표님께 드렸다.


그는 내가 건네는 쇼핑백을 보자마자 이야기했다.


“어? 이거 비싼 브랜드 아니에요?”

“아… 네. 제 마음입니다! 즐겨 입으시길래요. “

“그거 짝퉁이에요!”

“네………..?!“

“나는 옷 사는 건 돈 아까워서 비싼 옷 안 입어요. 사는 것도 다 와이프가 알아서 사 오면 주는 대로 입어요. 돈은 오로지 와인에만 쓰지. “


그렇다. 그는 회사에서 판촉물로 만드는 티셔츠나 굿즈 같은 것들도 항상 기뻐하며 챙기시고 늘 열심히 착용하고 사용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폼 나는 백그라운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알뜰살뜰’의 표상이었던 것이다.


물론 보통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짝퉁을 입을 거라고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지위를 통한 의심 원천 제거 효과를 이용하여 전략적으로 짝퉁옷을 구매하는 사람들도 곳곳에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게 ‘옷’이라는 것은 신체를 더위와 추위로부터 보호하고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타인에게 노출하지 않는 수단 1에 지나지 않을 뿐이었다. 옷을 통한 자신의 이미지 메이킹 또는 허세나 과시에 대한 열망은 단 1g도 가지고 있지 않는 듯했다. 그러니 그에겐 짝퉁 커밍아웃은 아무 일도 아닌, 너무나 쉬운 죽 먹기의 일이었으리라.


대표님의 진실을 알게 되자, 나와 나의 동료들은 갑자기 하염없이 부끄러워졌다. 저렇게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도 소탈한 마음으로 절약을 실천하는데 우리는 무슨 자격이 있어서 흥청망청 돈을 쓰고, 유행이 다 끝나고 나면 상폐된 주식 같이 무쓸모 해져 버리는 브랜드 따위에 집착하나. 우리는 ‘지금 당장 장바구니에 담아둔 옷들 다 삭제해!.‘ ’ 쇼핑하지 마!‘ 를 너도 나도 외쳤다.


성공은 그렇다.

자신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와 대상 외에 나머지 사사로운 것들에 크게 개의치 않을 수 있는 대범함과 집중력을 가진 자가 얻는다.

그리고 자신을 흔들어대는 여러 잡념, 무리, 세력으로부터 자신을 건강하게 지켜내는 굳은 심지가 있어야 이룰 수 있다.


대표님과는 모두가 아쉽게 이별했지만, 그는 나 그리고 우리에게 마지막까지 교훈과 가르침을 남기고 떠났다. 그의 다음 행보, 그리고 그간의 시간을 함께 일구고 함께 견딘 나 그리고 모두의 행보를 응원한다.


두고두고 곱씹게 되는 기억과 그 속에서의 깨달음을 정리합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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