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다르게 만드는 국제적 시도, 한국은 왜 지금 주목해야 하는가
인공지능(AI)은 더 이상 미래 기술이 아닙니다. 병원 진료실의 진단 보조, 제조 현장의 생산 최적화, 뉴스 기사 작성, 그리고 우리가 매일 접하는 영상 추천까지, 이미 AI는 산업과 일상의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AI 개발은 대부분 기술적 성능 지표에 집중해 왔습니다. 모델의 정확도, 처리 속도, 대규모 데이터 학습 능력 같은 것들 말이죠. 이런 지표들은 분명 중요하지만, 현실 세계는 훨씬 더 복잡합니다. 문화적 뉘앙스, 사회적 맥락, 지역의 특수성은 숫자로만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그 결과, 해외에서 성공한 AI 서비스가 한국에서는 전혀 엉뚱한 결과를 내거나, 한국에서 잘 작동하던 AI가 해외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기술은 뛰어나지만 맥락을 읽지 못하는 AI가 만들어내는 한계입니다.
Doing AI Differently는 바로 이런 문제에서 출발합니다. “AI를 다르게 만들 수는 없을까? 기술만 보지 말고, 사람과 문화, 그리고 맥락을 설계 초기부터 함께 고려하면 어떨까?” 이 질문이 이 프로젝트의 모든 출발점입니다.
Doing AI Differently는 영국의 국가 AI 연구기관인 Alan Turing Institute가 주도하는 국제 연구·실행 네트워크입니다. 캐나다, 미국, 유럽, 아시아 등 6대륙에서 150명 이상의 연구자와 40여 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제안하는 핵심 개념은 해석적 AI(Interpretive AI)입니다. 기존 AI가 주어진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단일 정답을 빠르게 산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해석적 AI는 다양한 관점과 문화적 뉘앙스, 그리고 맥락적 의미를 함께 고려해 결과를 도출합니다. 이는 단순히 기술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AI의 ‘사고 방식’을 재설계하는 접근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특히 세 가지 변화에 주목합니다.
첫째, AI의 입력과 출력이 점점 더 문화·사회적 맥락과 맞물리는 질적 전환입니다.
둘째, 소수의 아키텍처와 데이터에만 의존하면서 다양성이 사라지는 동질화 문제입니다.
셋째, AI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인간의 사고와 창의, 의사결정 방식을 재편하는 인간 인지의 변화입니다.
Doing AI Differently는 단순한 학술 연구가 아니라, 정책, 산업, 학계 모두에 적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행동 지침입니다. 한국 역시 이 흐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합니다.
정책적으로 보면, 이 프로젝트는 OECD, UNESCO 등 국제 기구의 AI 규범 논의와 직접 연결되어 있습니다. 참여를 통해 한국은 국제 표준과 발맞춘 정책 설계가 가능해집니다. 특히 공공부문 AI 조달과 평가 기준에 ‘맥락 반영 능력’을 포함하면, 단순 기술지표만으로는 잡아내지 못했던 실패 가능성을 줄일 수 있습니다. 또한 국내 규제 샌드박스나 특구에 이 원칙을 적용하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실험 환경을 만들 수 있습니다.
산업 측면에서도 기회는 큽니다. K-콘텐츠 추천 AI가 각국의 문화 코드와 소비 패턴까지 반영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 가능성은 훨씬 높아집니다. 의료, 제조, 지속가능성 분야의 글로벌 프로젝트에 참여해 해외 조달 사업에 진입할 수도 있습니다. ‘책임형 AI’ 파트너라는 레이블은 해외 협상과 B2B 신뢰 구축에도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학술적으로도 가치가 큽니다. 인문학·예술·사회과학과 공학·데이터 과학이 설계 단계부터 함께 일하는 구조는 흔치 않습니다. Doing AI Differently는 공동 집필, 국제 워크숍, 글로벌 컨퍼런스를 통해 학생과 연구자가 세계 수준의 네트워크와 협업 경험을 쌓을 수 있게 합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네 가지 축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연구 혁신 방향입니다. 해석적 AI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노력이 필요합니다. AI가 다중 관점과 문화적 뉘앙스를 처리할 수 있는 해석적 기술, 현재 주류를 넘어서는 새로운 설계 방식인 대안적 아키텍처, 그리고 AI와 사람이 각자의 강점을 살려 협력하는 인간–AI 앙상블입니다. 이를 위해 인문학적 해석 기법을 학습과 설계에 포함하고, 문화·언어·상황별 맞춤 평가 지표를 적용하며, 인간의 판단을 대체가 아닌 보완하는 방향으로 구조를 설계합니다. 그 결과 다양한 문화권에서 신뢰받는 AI가 만들어지고, 해외 시장 현지화 비용이 줄어들며, 사회적 수용성이 높아집니다.
둘째, 정책 로드맵입니다. 기술만으로는 변화가 어렵습니다. 제도와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혁신이 작동합니다. Doing AI Differently는 공공부문 조달·평가 기준 개선, 산업별 해석적 AI 챌린지, 융합형 인재 육성을 포함한 7대 정책 권고를 제시합니다. 이를 통해 국가 AI 프로젝트의 실패율을 낮추고, 글로벌 규제·표준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셋째, 실행 구조입니다. 비전과 정책을 현장에서 실행하기 위해 5개의 워크스트림(Workstream)을 운영합니다. 연구개발을 위한 W1W3, 인재와 인프라 구축을 위한 W4W5가 그것입니다. 국제 공동연구소 설립, 해석적 AI 전용 데이터·평가 도구 개발, 산업–학계 교류 프로그램, 오픈 플랫폼 공유 등으로 연구 성과의 산업·정책 확산을 가속화하고, 글로벌 인재 교류와 다분야 협업 문화를 정착시킵니다.
마지막으로, 방법론입니다. 인문학은 종종 기술 개발의 마지막 단계에서만 투입됩니다. 하지만 Doing AI Differently는 설계 초기부터 인문학을 반영하는 ‘Upstream Humanities Integration’을 핵심 원칙으로 삼습니다. 여기에 새로운 연구·산업 장(field)을 의도적으로 조성하는 ‘Intentional Field Formation’을 결합해, 기술·정책·산업이 분리되지 않고 동시에 발전하는 구조를 만듭니다. 이를 통해 AI 설계가 다양한 사회적 가치와 조화를 이루도록 합니다.
한국은 Doing AI Differently의 여러 영역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정부기관은 국제 공동 펀딩과 정책 연계를 주도할 수 있고,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국제 R&D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자체 제품을 글로벌 시장에 선보일 수 있습니다.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은 테스트베드 제공이나 파일럿 파트너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대학과 연구기관은 국제 연구자 교류, 공동 집필, 워크숍을 통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장할 수 있습니다. 해외 사례를 보면, 영국은 Creative Industries 분야에서 AI 창작물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유지하는 해석적 평가를 도입했고, 캐나다는 지속가능성 프로젝트에서 지역별 기후 대응 전략에 문화·정치적 맥락을 반영했습니다. 한국에서도 K-콘텐츠 추천 AI의 문화별 최적화, 지역 건강 상담 AI의 지역 언어·문화 반영, 제조 설계 AI의 브랜드 가치·환경·안전성 통합 같은 적용이 가능합니다.
아직 한국이 공식적으로 Doing AI Differently 네트워크에 참여했다고 발표된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가 제시하는‘문화와 맥락을 반영하는 AI‘라는 방향성과 맞닿아 있는 흐름들이 국내에서도 이미 나타나고 있습니다. 2024년 5월, 서울에서 열린 AI Seoul Summit에서는 27개국이 참여해 “안전하고 혁신적이며 포용적인 AI”를 위한 서울 선언문을 채택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각국은 AI 위험 평가, 신뢰성, 포용성을 국제 협력의 핵심 과제로 합의했는데, 이는 Doing AI Differently가 지향하는 가치와 궤를 같이합니다. 2025년 1월 제정된 AI 기본법(AI Framework Act)은 고위험 AI와 생성형 AI에 대한 투명성, 안전성, 윤리성 확보 의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기술적 성능만이 아니라 사회적 영향과 책임성을 제도적으로 담보하겠다는 의지로, 해석적 AI의 정책적 기반이 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마련한 셈입니다. 또한 KAIST와 Alan Turing Institute가 연구 및 인재 교류 강화를 위한 MOU를 체결한 바 있습니다. 이를 통해 Doing AI Differently의 국내 연결 고리가 열릴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습니다. 의료 AI 윤리 가이드라인 수립, 한국어 사회적 편향 데이터셋 개발(KoSBi) 등도 모두 ‘AI를 다르게 만들기’와 맞닿아 있는 국내 연구 사례입니다.
즉, 공식 참여는 아직 없지만, 정책·국제 협력·연구 개발에서 이미 상당한 기반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이 기반을 Doing AI Differently의 구체적인 실행 네트워크와 연결하는 것이 한국의 다음 단계가 될 수 있습니다.
Doing AI Differently는 기술 혁신이면서도 문화 혁신입니다. AI를 다르게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알고리즘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사회와 관계 맺는 방식을 다시 설계하는 일입니다. 한국이 이 흐름에 동참한다면, 정책, 산업, 학계 모두에서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언제”가 아니라 “어떻게”입니다. 설계 초기부터 문화와 맥락을 반영하는 AI, 국제 표준과 연결된 정책, 그리고 다양한 분야가 함께 만드는 연구 생태계. 이것이 바로 Doing AI Differently가 제안하는 미래이며, 한국이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선택입니다.
영국 앨런 튜링연구소 홈페이지: https://www.turing.ac.uk
카이스트와의 MOU 기사: https://www.turing.ac.uk/news/new-partnership-foster-closer-ai-and-data-science-research-links-between-uk-and-republic-korea
Doing AI Differently 프로젝트 홈페이지: https://www.turing.ac.uk/news/publications/doing-ai-differently?fbclid=IwQ0xDSwMJrltleHRuA2FlbQIxMQABHqeYJpFaZHHkV5Op6P6AawHgjzwNCWDn1NIkatiHfVsh7VeoMffHWbkDxz-3_aem_JIaixaf_RYuxLVWz_2jGI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