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첫째 주 일요일에는 파리의 국립 박물관과 미술관이 무료로 개방된다. 평일에 입장료를 지불하고 간다면 한산하게 관람할 수야 있겠지만, 한정된 재정으로 안식년을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일 인당 14유로(약 19,000원)는 적은 돈이 아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9월 첫째 주 일요일에는 마레 지구에 있는 피카소 미술관을, 10월 첫째 주 일요일에는 센강 좌안에 위치한 오르세 미술관을 다녀왔다
지난번에는 천재 화가 피카소의 다양한 작품을 아이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 짝지와 아이들을 대동하고 갔지만, 이번 오르세 미술관만큼은 방해받고 싶지 않아 홀로 다녀왔다. 지하철은 숨 막힐 정도로 이미 꽉 찼음에도 멈추는 역마다 내리는 사람 없이 계속해서 사람들이 비집고 들어왔다. 다음 역에서 환승해야 하는 나는 사람들에게 밀리고 밀려 중앙에 껴있어 옴짝달싹 못 하는 상황이었다. 이 고밀도의 인파를 어떻게 뚫고 내려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내려야 할 역에 전철이 멈췄다. 급한 마음에 “실례합니다”란 의미의 “Pardon”, “Excusez-moi”라고 호방하게 소리쳤다. 그 순간 내 바로 앞에 있던 젊은 여성, 그 옆에 있던 10대 소년, 두 할머니, 그 앞에 있던 유모차를 붙들고 있는 젊은 아저씨, 그 옆에 있던 중년의 아저씨 그리고 그 옆에 할아버지가 한 목소리로 “Attention(조심해요)”을 외치며 뭔가 큰일이라도 난 듯 다들 호들갑을 떨며 지하철 문을 열어주고 잡아주고 내가 무사히 내리도록 단합하여 도와주었다.
파리에 살면서 이런 친절과 배려를 많이 받지만, 어떨 때는 그 배려가 익숙하지 않아 어색할 때가 있다. 사실 혼자의 힘으로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도움을 요청하는 게 당연한데 나 하나 때문에 여러 명이 내리고 유모차까지 내려야 하는 번잡스러움에 미안했고, 괜한 핀잔을 받을까 봐 두려웠다. ‘에티켓’을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이나 ‘권리’도 당당히 요구하는 파리지앵들은 이런 사소한 걸로 나처럼 걱정하진 않을 것이다. 타인을 배려하고 공감하는 감수성이 저절로 생기지 않듯이 내 권리에 떳떳해지는 태도도 숱한 훈련이 필요한 듯싶다.
언제는 그런 적도 있다. 만원인 지하철에서 두 명이 앉는 좌석에 짐을 올려두고 혼자 두 자리를 차지한 채 헤드폰을 끼고 핸드폰에 심취해 있던 20대 여성이 있었다. 바로 앞에 서 있던 짝지는 다리 아프다고 투덜거리는 아이들을 앉히고 싶은 마음에 “으흠~”하고 나지막이 헛기침하며 그 여자를 주시했다. 아무리 기침 소리로 신호를 보내도 미동 없는 여자를 째려보며 이번엔 가방에서 물건을 부스럭대며 꺼내는 시늉을 하였다. 그래도 꿈쩍이지 않는 여자를 향해 눈으로 레이저를 쏘고 있는 게 아닌가. 멀찌감치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실례한다고 말하며 짝지와 아이들 쪽으로 가로질러 갔다. 그리고 음악을 듣는 여자를 톡톡 치며 미안하지만 앉아도 되겠냐고 짐을 치워달라고 말했다. 상황 파악을 한 그녀는 미안하다고 재차 사과한 뒤 활짝 미소 짓고는 얼른 짐을 내려놓았다. 그냥 말 한마디 하면 되는 건데, 이 간단한 방법을 놔두고 상대가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며 혼자 머리를 싸맸던 짝지는 이날 정신적, 문화적 충격과 함께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오르세 미술관에 도착하니 입장을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구불구불 줄지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30분을 기다려 입장한 후 짐 검사를 후다닥 마치고 0층부터 관람을 시작했다. 5년 만에 다시 찾은 오르세 미술관인지라 감회가 남달랐다. 나는 클래식하면서 고풍스러운 이런 프랑스 특유의 오래된 건물이 좋다. 오르세 미술관은 원래 1900년에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지어진 초호화 기차역이었다고 한다. 워낙 미술관 자체로서 완벽한 곳인지라 벽면 중앙에 버티고 있는 시계가 아니었다면 한때 이곳에 존재했을 딱딱한 플랫폼과 활기 띤 여행객들의 풍경은 상상도 못 했을 거다. 오르세 미술관에는 1848년부터 1914년 제1차 세계 전쟁 발발 시기 전까지 창작된 회화, 조각, 장식예술, 사진, 드로잉 등 다양한 서양 예술 작품이 0층, 2층, 5층에 전시돼 있다.
고흐, 고갱, 르누아르, 세잔, 드가, 모네, 시슬레 등 유명한 인상파 화가의 그림들이 5층에 몰려 있다 보니 그곳으로 관광객들이 붐볐다. 그래서 난 상대적으로 인파가 적은 0층부터 찬찬히 둘러봤다. 고흐가 존경했던 장 프랑수아 밀레.
밀레는 농민의 삶 속에 스며들어 그들의 고단한 노동을 숭고하면서 서정적이게 장엄하면서 소박하게 그려낸 화가다. 그 역시 농부의 아들이었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에서 진실함이 느껴졌다.
실제로는 가난하고 피폐했을 19세기 하층민 농민들의 일상이었겠지만 밀레가 그린 인물들에게서 그러한 우울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외려 인간의 존엄과 노동의 정직함 그리고 생의 경건함이 보였다.
장 프랑수아 밀레
풍경화인 [봄] 작품에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 속에 저 멀리 한 사람이 자연의 일부인 듯 서 있다. 밀레가 의도한 건지 모르겠으나 그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그 인물에 동화돼 내가 마치 그 안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밀레는 천성이 매우 따뜻했던 사람이었을 거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봄의 따뜻한 기운을 그 생명의 움트임을 이토록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아쉽게도 밀레의 대표작인 [만종], [이삭 줍는 여인들]은 다른 전시 때문에 옮겨져 있었다.
귀스타브 쿠르베
쿠르베는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다.
[세상의 기원]이라는 그의 작품을 보라.
처음에 이 그림을 접했을 때 꽤나 충격적이었다. 누드를 넘어서 여성의 외음부가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적나라하게 도드라져 있어 다른 이의 소중한 부분을 몰래 훔쳐보는 거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세상의 기원L'Origine du monde을 얼마나 더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쿠르베 또한 밀레처럼 노동자 계급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린 화가다. “천사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천사를 그릴 수 없다"라는 말을 남긴 쿠르베의 그림은 밀레의 그림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밀레가 천성이 순박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면 쿠르베는 냉철하고 뜨거운 사람이었을 거 같다. [화가의 작업실], [오르낭의 장례식] 같은 작품을 보면 그가 얼마나 민중을 대변하는 민중의 편에 서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그의 그림에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을 고발함으로써 그들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세우고 남기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그는 코뮌 혁명 같은 정치적 활동에도 참여했으며, 창작의 자유를 목적으로 맺어진 미술 동맹의 회장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에두아르 마네
그림을 보면 화가의 성향이 보인다.
[올랭피아], [풀밭 위의 점심 식사] 같은 당대로선 파격적인 그림을 그려 혹평받았던 마네는 한 성깔 하는 거침없고 열정적인 사람이었을 거 같다. 그림의 소재만큼이나 색감도 붓의 터치도 분명하고 과감하며 힘이 느껴진다. 왠지 따지지도 재지도 않고 그저 마음 가는 대로 보이는 대로 척척 그렸을 거 같은 느낌의 그림들이다. 마네는 당시 그림에 대해 안다는 심미안을 갖춘 지식인들이 “이게 아름다움이야!”, “이것이 예술이지!”라고 규정하던 종류의 그림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그림을 그렸다. 외려 자기 작품을 통해 그들의 위선과 가식을 꼬집으며 심기를 건드렸고 불편한 진실 속에서 진정한 진실에 다가가려는 질문을 던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여성 누드는 신비롭고 완벽한 여신의 아름다움으로 과장되게 표현하는 것이 공식이었지만 마네는 당당한 자태의 매춘부 여성의 몸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예술이 무엇인지 다양하게 정의하고 해석할 수 있겠지만 비판 의식을 가지고 통념에 질문을 던지며 진실에 다가가려는 과정이 예술의 한 기능이라면 마네는 진정한 예술을 한 셈이다. 공식과 전통을 깬 그의 그림이 반향을 일으키리라는 걸 알고도 비평을 두려워하지 않은 채 신념에 따라 의도적으로 예술을 한 마네의 정신은 위대하다. 그런 맥락에서 인상주의 화가들이 정말 존경스럽고 이것이 내가 인상파 작품들을 좋아하는 이유기도 하다.
빈센트 반 고흐
5층에 있었던 반 고흐의 그림들 앞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몰렸다. 생전에 2,100여 점의 그림을 그렸음에도 단 하나의 그림밖에 팔지 못해 가난과 질병에 시달렸던 반 고흐는 시대를 뛰어넘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화가가 됐다. 사람을 끄는 그의 그림에는 어떤 매력이 있는 걸까.
사실 나는 반 고흐가 재정적 후원자인 친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들을 담은 [반 고흐, 영혼의 편지]란 책을 읽기 전까지 그의 그림에 큰 감흥이 없었다.
다만, 누구나처럼 다양한 굿즈의 디자인으로 사용되는 [별이 빛나는 밤] 그림은 좋아했다. 단조로운 밤 풍경이 이렇게 따뜻하고 마법같이 보일 수 있구나 느끼며 그 그림에 끌렸다. 하지만 책을 통해 자신의 그림이 인정받기 못하고 판매로 이어지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어떠한 심정으로 그림을 계속해서 그릴 수 있었는지 인간 고흐에 대해 알고 나니 그의 그림에 더 끌리게 되었다. 그는 고독하고 마음이 여리고 고집스럽고 인간과 자연을 사랑한 심장이 뜨거운 사람이었다. 그는 늙고 가난한 사람이 아름답다고 여겼고, 색의 조화와 풍경에 대한 인상을 화폭에 진실하고 온전하게 담는 일에 미쳐있었던 지독하게 가난한 화가였다.
농촌 생활을 그리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그러나 예술과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진지한 반성을 하게 될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용납할 수 없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이런저런 유파에 속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진정으로 표현하는 그림을 남기고 싶다. 그것이 나의 목표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의욕적으로 일하려면 실수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흔히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면 훌륭하게 될 거라고 하지.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너도 그런 생각은 착각이라고 말했잖아. 그들은 그런 식으로 자신의 침체와 평범함을 숨기려고 한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그림이란 게 뭐냐? 어떻게 해야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까? 우리가 느끼는 것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사이에 서 있는 보이지 않는 철벽을 뚫는 것과 같다. 아무리 두드려도 부서지지 않는 그 벽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인내심을 갖고 삽질을 해서 그 벽 밑을 파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럴 때 규칙이 없다면, 그런 힘든 일을 어떻게 흔들림 없이 계속해 나갈 수 있겠니? 예술뿐만 아니라 다른 일도 마찬가지다. 위대한 일은 분명한 의지를 갖고 있을 때 이룰 수 있다. 결코 우연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고흐가 어떤 사람인지 이미지를 갖고 그의 그림을 감상하니 안 보이던 게 비로소 보였다. 그의 그림은 그처럼 따뜻하면서도 슬프다. 적막하고 쓸쓸하면서도 따뜻하다. 참 인간적이다. 상황과 타협하지 않은 진심이 담겨있는 그림이기에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사람의 영혼에 닿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에드가 드가
드가의 특별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시간이 부족한데 못해도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줄을 보고 드가 회화 작품 감상은 포기했다. 대신 5층에 상설 전시된 드가의 조각 작품을 보며 아쉬움을 달랬다. 드가가 화폭에 표현한 발레리나들을 보면 각자의 개성과 더불어 무용수 특유의 생동감이 느껴지는데 조각에서도 그런 느낌을 잘 살렸다. 오르세에 전시된 로댕의 [지옥의 문]이나 신화를 소재로 한 거대하면서 압도적인 조각만 보다 드가의 아기자기하면서 말, 발레리나 같은 친근한 소재의 작품을 보니 왠지 반가웠다. 드가의 조각 작품을 보며 ‘나도 조각 한번 배워볼까’라는 무식해서 용감한 욕구가 뿜뿜 삐져나왔을 정도니.
구스타브 클림트
[키스], [유디트] 등의 독특한 황금색 그림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화가 클림트가 그린 풍경화. 처음에 이 작품을 보고 화가가 누군지도 모른 채 그림 자체의 아름다움과 에너지에 매료돼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봤다.
내가 이런 여백 없이 꽉 찬 화려한 파스텔 계열의 몽환적인 풍경화를 좋아하는구나 확인한 순간이었다.
오르세 미술관에는 인상주의, 신인상주의뿐만 아니라 신고전주의, 사실주의, 자연주의, 상징주의, 절충주의, 나비즘, 포비즘 등 미술 사조별로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 무수히 많다. 오르세 미술관은 하루 종일 봐도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귀한 명화가 차고 넘쳐 있는 보물 창고 같은 곳이다.
사실 툴루즈 로트렉 작품을 보고 싶었는데 현재 그랑 팔레에서 특별 전시 중이라 그런지 찾을 수 없었다.
로트렉 특별 전시는 내 돈 주고 봐도 아깝지 않을 테니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나 혼자 슬렁슬렁 다녀와야겠다.
툴루즈 로트렉 전시. 왠지 늦가을과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