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가 말하는 존재의 언어
창가에 놓인 낡은 나무 의자가 있다. 햇살이 반쯤 머물다 가는 그 자리에, 오랫동안 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신문을 펼치거나, 멀리 강가를 바라보거나, 때로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던 자리. 지금은 텅 비어 있지만, 의자는 여전히 그 시간을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가까이 다가가면 등받이에 새겨진 세월이 손끝에 닿는다. 닳아 윤이 난 나무 결, 앉은자리에 패인 곡선, 삐걱거리는 소리 속에는 여전한 체온이 남아 있다. 사람은 떠났지만, 의자는 그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버지는 이 의자에서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새벽이면 창가 커튼을 조금 열고, 신문을 가지런히 펼쳐 들었다. 고요한 집안에 사각거리는 종이 소리와 가끔 목 가다듬는 기척만이 들려왔다. 아직 잠에서 덜 깬 내가 부엌으로 걸어 들어가면, 아버지는 시선을 들지 않고도 "왔니" 하고 낮게 물으셨다. 그 목소리는 의자 결마다 스며들어 오늘도 살아 있다.
어떤 날은 의자에 앉아 라디오를 들었다. 오래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지직거렸지만, 아버지는 몸을 약간 흔들며 따라 흥얼거렸다. 낮은 창밖으로 바람이 스치면 커튼이 흔들렸고, 그 바람이 의자와 아버지를 감싸듯 지나갔다. 그 장면이 내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가끔은 그 의자에서 잠이 들었다. 무겁게 감긴 눈꺼풀, 흘러내린 신문, 떨어지는 돋보기. 나는 몰래 다가가 의자를 살짝 흔들며 돋보기를 벗겨드리곤 했다. 그 평온한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짧은 순간이 좋았다. 그때마다 의자가 내 작은 손길을 대신 받아주었다. 그 부드러운 순간들마저도 의자는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이제 그 자리에는 누구도 앉지 않는다. 가끔 손님이 와도, 이상하게 그 의자에는 앉지 않고 비워둔다. 사람들은 이유를 묻지 않지만, 그 공백이 우리에게는 하나의 약속처럼 남아 있다. 비어 있음이 곧 아버지의 자리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빈 의자를 바라보며, 부재의 무게가 오히려 존재를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는 것을 배운다. 앉아 있지 않아도, 의자는 여전히 아버지를 말한다. 의자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가구의 형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시간과 습관, 목소리와 체온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자주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우리는 어떤 자리에, 어떤 사물에, 누군가의 삶을 그대로 담아내는 힘을 부여하는가. 아마도 그것은 사물이 인간의 손길을 받아들이고, 반복되는 시간을 견뎌내며, 결국엔 우리와 함께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빈 의자는 더 이상 누군가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 자리는 여전히 살아 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르게 존재하는 방식으로. 의자의 침묵은 나에게 말한다. 사라짐 속에서도 이어지는 것들이 있으며, 비어 있음 속에서도 채워지는 것들이 있다고.
나는 오늘도 그 의자 옆을 지나며 잠시 멈춘다. 손끝으로 닳은 나무를 쓰다듬고, 햇살이 비껴가는 결을 바라본다. 그 순간, 나는 아버지가 이곳에 여전히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을 한다. 착각일지라도, 그것은 나에게 충분하다.
빈 의자는 말없이 내게 알려준다. 부재란 단절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존재라는 것을. 그 깨달음 덕분에 나는 삶의 덧없음을 두려워하기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물들과 시간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