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보편성

평범 속에 숨어있는 악

by Bird

사람이 악한가, 집단이 악한가.

이 질문을 오래 붙들고 있으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왜냐하면 답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해치고 싶어 하는 얼굴은 드물다.

상사는 난처한 표정으로 “어쩔 수 없었다”라고 말하고,

담당자는 낮은 목소리로 “규정이라서”라고 답한다.

그 말들은 대부분 거짓이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악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결과는 늘 비슷하다.

누군가는 밀려나고,

누군가는 침묵 속에서 사라진다.

가해자는 없는데, 피해는 분명히 남는다.


이 모순은 집단에서 시작된다.

집단은 책임을 나눈다.

결정은 회의록 속 문장이 되고,

판단은 절차라는 이름으로 희석된다.

그 과정에서 사람은 숫자와 등급, 지표로 바뀐다.

이때 악은 더 이상 의도가 아니라 기능이 된다.

누가 마음먹고 잔인해진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그렇게 굴러간다.


집단의 악함이 더 위험한 이유는

그것이 너무 정상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합법이고, 공정하고, 관행이라는 말들이

도덕의 자리를 대신한다.

아무도 “내가 했다”라고 말하지 않지만,

모두가 “그렇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개인이 완전히 무죄일 수는 없다.

집단의 악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조금씩 물러난 판단,

한 번쯤 눈 감은 침묵,

“나 하나쯤이야”라는 선택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다.

결정적인 가해자는 없지만,

구조를 유지하는 사람

모두가 가해자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인간 사회의 악은

짐승의 잔혹함과 다르다.

피를 흘리지 않고,

즉각적으로 죽이지 않으며,

서서히 삶을 마모시킨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합리와 상식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있다.

집단은 질문하지 않지만,

개인은 질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정말 최선이었는지,

다른 선택은 없었는지,

누군가를 희생시키지 않고도

유지할 수 있는 방식은 없었는지.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사람은 집단의 톱니바퀴에서

잠시 벗어난다.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해도,

아무 생각 없이 돌아가지는 않는다.


아마 인간 사회가

완전히 괴물이 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집단이 만들어낸 악함을

끝내 개인의 마음속에서

불편함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이 질문이

비관이 아니라 희망에 가깝다고 믿는다.

악함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겠지만,

그것이 집단의 산물이라면

적어도 한 사람의 질문으로

균열을 낼 수는 있으니까.


개인의 질문과 깨인 생각은

불편함을 일깨우고,

그러므로 집단의 악은

보편타당할 수 없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조직의 합리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