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목적

인간의 생존이란?

by Bird

인간은 생존을 위해 산다고들 말한다.

먹고, 벌고, 자리를 지키고, 관계를 유지하는 모든 행동은 결국 살아남기 위한 전략처럼 보인다.

조직 안에서의 침묵, 위험을 알아도 모른 척하는 태도, 진실보다 안전을 택하는 선택들까지도 그렇게 보면 꽤 합리적이다.

생존을 목적함수로 놓으면, 인간의 많은 비겁함은 설명된다.


그런데 이상하다. 인간은 생존에 불리한 선택을 너무 자주 한다.

벌거벗은 임금님에게 옷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늘 존재했고, 거짓된 경보를 반복하다 진짜 위험을 맞는 양치기 소년도 있었다.

배제를 각오하고 조직의 짜고 치는 판에 들어와

규칙을 바꿔보려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진실을, 굳이 흔들지 않아도 될 판을, 인간은 왜 자꾸 건드릴까.


아마 인간의 생존은 단순히 숨이 붙어 있는 상태를 뜻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살아 있음’과 ‘살아도 되는 상태’를 구분한다. 모욕 속에서의 생존, 자기부정 위에 쌓은 안정, 거짓에 동조한 채 연명하는 삶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미 죽음에 가깝다.

그래서 어떤 인간은 생존 확률을 낮추는 선택을 하면서도, 그게 유일한 생존이라고 믿는다.


조직은 늘 생존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안정을 숭배한다.

안정은 위험을 제거하는 방식이 아니라, 위험을 말하는 사람을 제거함으로써 유지된다.

그렇게 조직은 오늘을 넘기지만, 내일을 잃는다. 진실을 말한 사람은 부적응자가 되고, 침묵한 사람만이 충성으로 인정받는다.

그 구조 속에서 가장 먼저 죽어나는 것은 무능한 사람이 아니라, 판의 본질을 너무 빨리 이해한 사람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생존을 위해 만든 시스템 안에서 스스로의 생존 가능성을 깎아 먹는다.

단기적 생존을 위해 장기적 생존을 포기하고, 집단의 안정을 위해 개인의 경고를 묵살한다.

그리고 일이 터진 뒤에야 말한다.

“그땐 어쩔 수 없었다”라고.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정말로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인간은 생존 말고 다른 목적함수를 동시에 계산하고 있었으니까.


만약 인간이 정말로 생존만을 목표로 하는 존재였다면,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다.

인공지능은 체면을 계산하지 않고, 소속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불편한 진실을 감정 없이 처리한다.

순수한 생존 게임에서는 인간이 애초에 불리하다. 그래서 인간은 그 게임을 끝까지 하지 않는다. 비합리성과 모순을 끌어안고, 때로는 손해가 되는 선택을 하면서까지 인간으로 남으려 한다.


결국 인간의 생존이란, 살아남는 기술이 아니라 살아남아도 되는 이유를 지키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인간의 세계는 아이러니하고, 왜곡되어 있고, 솔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 불완전함 덕분에 아직 완전히 계산 가능한 존재가 되지 않았다.


어쩌면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어떤 것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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