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들

by 딸이랑 엄마랑 아빠랑

by typed thoughts

《한 글자 사전(김소연 글, 마음산책 펴냄)》에서 영감을 받아 브런치북 "한두 글자 사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1년 넘는 기간 동안 네 편의 브런치북, 백 편이 넘는 글이 쌓였습니다. "한두 글자 사전 리덕스"는 그중에서 고른 글들의 표제를 사전 형식으로 정리해 본 것입니다. 딸이랑 엄마랑 아빠가 썼던 프롤로그로 "한두 글자 사전 리덕스"를 시작합니다.



1. ‘똥’에서 시작됐다

by 딸

나는 미국에서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었다. 엄마 아빠는 계속 한국에 있었으니 떨어져 산 지 벌써 이십 년이 다 되어 간다. 그 사이 우리가 연락하는 방법은 국제 전화에서 스카이프로, 스카이프에서 페이스톡으로 바뀌었다.

무료로 영상 통화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엄마와 나는 자주, 오래 떠들었다. 거의 매일 통화하는데도 이야깃거리가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자러 가야 하거나, 엄마가 나가봐야 할 때가 되어야 통화가 끝났다. 아빠는 왜인지 우리 이야기에 잘 끼지 않았다. 쉬는 날에나 겨우 보는데도 “영현이 안녕~”과 같은 인사 정도만 하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작년 말 한국에 갔을 때 엄마를 따라 청강대학교 도서관에 간 적이 있다. 만화 도서관이 있다고 해서 구경 간 건데 공사 중이라고 했다. 아쉬운 김에 일반 도서관이라도 둘러보기로 했다. 눈높이에 있는 책을 쭉 훑어보면서 책장 사이를 걷다 ‘한 글자 사전’이라는 제목에서 발길이 멈췄다. 사전 중에 한 글자만 추린 책인 것 같았다. 내 생각이 맞는지 궁금해서 책을 꺼냈다.

휘리릭 페이지를 넘겨 보니 한 글자만 있고, 가나다 순으로 정렬되어 있는 게 내가 생각했던 거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몇몇 페이지를 읽어 보니 사전적 정의보다는 작가의 경험과 생각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설마 똥도 있는 거 아니야? 똥도 한 글자잖아’ 하면서 ㄷ 챕터로 갔다. 똥이 있었다.

장난스럽게 찾은 것뿐이었는데 진짜 있어서, 그리고 그 내용이 심오해서 반성의 마음까지 들었다. 나는 무슨 일이 생기면 꼭 누구한테 털어놔야 했는데, 그게 마치 배설하는 행위라고 콕 찝어 말하는 것 같아서 뜨끔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엄마한테 똥 이야기를 했다.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잠깐 본 건데도 줄줄 외웠다.


미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서 매일 글쓰기 챌린지를 시작했다. 지속 가능한 취미 생활을 만들어봐야겠단 생각이었다. 글을 쓰다 보니 생각이 정리되고, 말수가 많이 줄었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배설하듯 말하는 습관을 가졌다는 것, 글쓰기가 도움이 되었다는 글을 쓰고 싶었다. 말하기와 배설을 연결 지어 준, 나에게 큰 깨우침을 준 글의 원문이 필요했다.

안에 갖고 있기도 싫고 밖에 두고 보기도 싫지만 내보내는 순간 쾌락이 있다는 의미에서, 우리가 쓰는 말과 닮았다.

<한 글자 사전(김소연 지음, 마음산책 펴냄, 2018)> 중 '똥'에서


주말 아침, 나는 스마트폰 화면에 담겨 크리넥스 통에 기대진 채로 엄마 아빠가 아침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아빠 손에 <한 글자 사전(김소연 지음, 마음산책 펴냄, 2018)>이 들려 있었다. 엄마가 '똥' 사진 찍으려고 책을 빌려 왔다고 한다. 우리 집 소파 팔걸이에 방치되어 있었던 걸 아빠가 보기 시작한 것이다. 아빠는 감명 깊게 읽은 단어들을 소리 내어 읽어주었다. 그 뒤로 거의 한 달 동안 <한 글자 사전>은 우리에게 놀잇거리가 되었다.


‘갑’ 있어? ‘혼’은? 하면서 내가 아는 한 글자를 외치면 아빠는 책에서 찾아 읽어줬다. 우리가 찾는 단어가 있으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다음은 아빠가 뜻을 읽어주고 내가 단어를 맞히는 수수께끼를 했다. 아빠가 안 되는 발음이 많다는 것, 내가 생각보다는 똑똑하다는 걸 알았다.

한동안 놀고 나니까 아빠가 "이거 우리 버전으로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다~"라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핸드폰 메모장에 뭘 쓰기 시작했다. 내가 만든 워드 파일에 아빠가 나름의 엄격한 수정 작업을 거친 단어들을 더했다. 이렇게 우리의 "한두 글자 사전"은 시작됐다.


"한두 글자 사전"을 책으로 만들어 보기로 마음먹고 주말마다 편집 회의를 가졌다. 엄마의 평생소원이던 가족 북클럽이 탄생한 것이다. 아빠는 이제 페이스톡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똥 덕분에 우리 가족이 똘똘 뭉쳤다.



2. 어느 날 남편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by 엄마

내가 찍고 딸이 편집한 사진

남편은 ㅡ와 ㅓ발음에 취약하다. 서울에서 생활한 지가 고향인 경남에서 산 시간보다 훨씬 길건만 여전히 그 발음은 어려워한다. 평상시에는 티가 잘 안 난다. 하지만 발음을 의식하는 순간 더 안 된다.

‘성희’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 이름이 ‘승희’라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다른 단어들은 혹여 발음이 틀렸더라도 맥락으로 이해하면 소통에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고유명사의 경우에 틀리면 곤란할 때가 있다. 내가 못 알아들어서 다시 물으면 더 틀리게 발음한다. 역시 알아채지 못하면 소리를 크게 하여 나름 또박또박 말한다. 나는 목소리가 작아서 못 들은 게 아니라고 한다. 결국에는 괜히 서로 서먹해진다. 정말 중요한 때는 써 보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남편에게 ‘서슴없이’와 같은 단어는 너무나 어려운 단어다. 한 음절씩 끊어 소리 내 본다. 그때는 발음이 된다. 하지만 연결해 읽을 때는 ‘스슴없이’나 ‘서섬없이, 스섬없이’가 되고 만다. 나랑 딸은 엄청 많이 웃어서 눈물이 났고 뱃가죽이 당기고 허리가 아프다. 남편은 힘들다고 그만하자고 한다. 진심으로 힘들어 보이기는 한다. 다음에는 ‘쓰르라미’를 말해 보라고 해야겠다.

그런 사람이 글을 썼다. 발음 좀 정확하게 못 한다고 글을 쓰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그림은 아니므로 분명 글이라 불러야 마땅하겠지만, 글이라 단언하기에 뭔가 걸리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짐작해 보자면 남편이 글 쓰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거나 오래되어 잊어버린 탓인 것 같다.

남편은 《한 글자 사전(김소연 글, 마음산책 펴냄)》을 보고 떠오르는 생각을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기 시작했다. 나름 퇴고도 하는 듯하다. 어느 날 수줍게 보여주며 글쓰기는 참 어렵다고 했다. 기대 이상이라고 호평했더니 ‘기대가 얼마나 낮았기에’라고 중얼거리면서도 내심 기뻐하는 것 같았다. 술이 거나해져 돌아온 날에도 소파 끄트머리에 대충 걸치고 앉아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핸드폰에 뭔가를 적어 넣었다. 지웠다 썼다 하면서 큭큭거리기도 하고 심각해져서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였다. 딸과 영상통화를 하고 있으면 자리를 지키고 앉아 대화에 끼어들기도 했다. 예전에 없던 행동이었다.

딸과 내가 매우 즐거워하자 남편은 놀라워했다. 계속 쓸 용기가 생긴다고 하면서 열심히 써 보겠다고 하였다. 남편과 딸과 나는 “한두 글자 사전”이라는 이름의 워드 파일을 공유하고 각자 글자 색을 달리하여 함께 써 나갔다. 한둘 서너 음절로 된 단어를 소재 삼아 생각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는 형식의 글이다. 남편이 쓴 것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육칠십 개 정도 항목이 만들어졌을 때 브런치 연재를 위해 합평을 하기로 했다. 주말마다 시간을 정해 나름 편집 회의 같은 것도 하면서 발행 시기와 방법을 의논했다.

우리는 매우 치열하게 의견을 나누었다. 뜻이 충돌하여 접점을 찾기 어려울 때는 필자의 입장을 우선하기로 했다. 가끔 글에서 경상도 사람의 태생적 한계인 ㅡ와 ㅓ 구분이 헷갈려서 틀리게 쓴 것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감성이 다칠세라 되도록 안 고쳤다.

우리는 “한두 글자 사전” 이야기를 하며 적잖은 시간을 보냈다. 배꼽 빠지게 웃을 때도 많았다. 주어의 위치가 애매하여 나는 ‘작년에 너무 안 이뻤던 집사람’이 되었고 심지어 ‘미친년’이 되기도 했다. 지금도 우습다. 가족 모두 열렬히 편집에 참여하면서 뭔가 끈끈한 가족애 같은 것이 생기는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구체적으로 알게 되니 더 깊이 이해하는구나 싶었다.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도 모르면서 화해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남편의 글은 얼른 보면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다시 읽어보면 이상하게 말이 된다. 다시 읽게 하는 힘과 맛이 있다. 글이 그러면 된 거 아닌가. 때로는 써 놓고 나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시와 산문 사이 그 어딘가에 있어야 할 것 같아 장르를 말하기도 어렵다. 한국도서분류표에서 818번(르포르타주 및 기타: 인용구, 경구, 표어, 일화집, 수상록, 수기, 콩트 등)을 받을 것 같은 글이다. 그러고 보니 《한 글자 사전》도 818번 대에 위치한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다른 형제자매 같다.



3. 우리 편

by 아빠

우리 가족은 아내, 딸,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이다. 아내의 소원 중 하나가 가족 북클럽이었다. 딸도 엄마 아빠와 같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곁으로 가끔씩 듣고 있던 차였기에, 가족 북클럽은 내가 문제였지 언젠가는 우리 가족이 같이할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동안 나는 말하고 싶었던 나의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나의 거대한 소심함과 어리석은 쑥스러움으로 말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시작하는 용기에 기적이 숨어 있다 했던가, 어느새 나는 글을 쓰고 있고 나는 변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우주를 선물 받은 기분이다. 딸의 생각을 조금씩 알게 되었고, 아내의 생각에 공감하게 되었다. 나에게 기적이 일어난 거다. 가족에게 부끄러웠던 그동안의 나. 나를 초월하는 새로운 시작이 된 거다. 매주 토요일 아내와 딸이랑 그 기적을 같이 하고 있다. 합평하며 나도 편집되어 두 사람은 ‘뭔 소리야 아직은 아니야’ 할 수도 있겠지만, 딸과 나 아내와 나 우리는 같은 편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말할 땐 누군가의 가슴에 꽃을 심는다는 마음으로 하라 했던가, 나는 용기내어 아내와 딸한테 말 대신 글쓰기의 꽃을 심었고, 그 꽃의 향기로 분노와 후회를 조금이나마 덜어 볼까 하는 욕심마저 생겨났다. 가족의 일원으로 나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두 사람이 잘 끼워주지 않는다고만 생각했다. 아내와 딸이 더 멀어져 가는 느낌이었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 막연하게 믿었던 것도 사실이다. 마음을 담은 사과도 필요했지만 용기도 없었다.
막상 해 보니 말하는 것보다 글쓰기에는 선명성이 있다. 진심어린 사과를 꼭 말로 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이제 남편이 아니라 우리 편이 되어 주길 바라는 고도의 전략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글쓰기의 용기를 준 아내와 딸의 응원이 눈물 나게 감사하다. 나는 오늘도 그걸 깨닫게 해 준 글쓰기를 다듬는다.

나는 계속 합평의 제물이 될 거다. 그리고 편집될 거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