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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dison May 20. 2019

내 이름은 칸, 툭툭기사죠

인도 방문자의 건조한 일기장 02

타지마할, 널 보기 위해 아그라로 건너갔다


델리에서 새벽기차를 타고 아그라로 넘어갔다. 타지마할. 그 하나를 보기 위해서. 전 날 머물렀던 숙소 컨디션이 인도치곤 상당히 좋았어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애써 보챘다.

내리자마자 득달같이 툭툭 기사들이 달려들었다. 졸려 죽겠는데 달려드는 흥정 놀음에 신경이 곤두섰고, 그나마 친절한 말씨로 이끄는 아저씨를 따라 그의 툭툭으로 따라갔다.

타지마할까지 300루피라던 그는 지도를 꺼내 들어 오늘 하루 아그라의 가이드가 되어주겠노라 제안하였다. 나쁘지 않은 금액에 고민하고 있으니 그가 낡은 노트를 하나 건넸다. 그를 거쳐간 한국인들이 써 둔 방명록이었다.


솔직한 호평이 일색이었다. (자작이라기엔 너무..너무 한국인이었다) 그의 정성에 한 번 해볼만한데?라고 느낀 우리는 오케이를 외쳤고 그렇게 하루 동안의 아그라 투어가 시작되었다.

칸과 그의 툭툭


타지마할에 관한 일화는 유명하다


무굴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왕비를 추모하여 지었다는 이 아름다운 건물은, 완공된 후 인부 2만여 명의 손목을 잘랐다는 끔찍한 비화도 함께 전해진다.

타지마할 사기꾼들을 조심하라는 글을 하도 많이 봐서 잔뜩 긴장한 상태로 입구를 향했는데, 의외로 그 사기꾼들은 볼 수 없었다. 너무 유명해진 탓인가 보다.

긴 줄을 따라 입장한 타지마할은 과연 멀리서부터 웅장했고, 타지마할과 사진 한 번 찍어보려는 사람들로부터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물론 나도 그중 하나란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안으로 입장이 가능해서 들어가 본 타지마할은 옛 건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반질반질한 대리석을 만지며 샤 자한이 이 건축물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하얗고, 뜨거웠던 타지마할.


다람다람 다람쥐 알밤 줍는 다람쥐

 

아그라포트는 말 그대로 요새였다. 어마어마하게 큰 요새.

인도와 중국의 스케일은 따라갈 수 없다며 손을 내젓던 울에게 귀여운 다람쥐들이 눈에 띄었다. 등산을 가면 볼 수 있는 청설모들처럼 수 십, 수 백 마리의 다람쥐들이 아그라포트를 뛰놀고 있었고 홀린 듯 다람쥐에게 우쭈쭈를 시전했다. 와중에 어떤 사람이 대뜸 과자가루를 손에 쥐어주더니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영문을 몰라 시키는 대로 하긴 했는데, 아뿔싸 사기꾼이었다. 과자 20봉지를 살 만큼의 금액을 당당하게 요구하던 그는 끈질겼다. 결국 일부 금액을 납부하듯 내고 도망친 우리는 방심했다는 생각에 조금 억울해졌다.


다람쥐의 죄명은 치명적인 귀여움

 

내 이름은 칸


칸은 툭툭기사였고, 노안인 얼굴에 비해 생각보다 나이가 어렸다. 우리가 못 믿으니 신분증까지 보여주며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인도는 대부분 힌두교일 거란 선입견과는 다르게 그는 이슬람이었고(실제로 인도엔 이슬람 비율이 높다), 인도 영화를 사랑했다. 깜찍하게 당갈 춤 까지 춰가며.

다소 신경질적이고 무뚝뚝했던 다른 기사들과는 다르게 다정했고 웃음이 많았고, 툭툭을 자신의 애인이라고 소개한 그는 일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만족하는 듯 보였다.

자기 여동생을 소개해주겠노라 그의 집까지 초대하려던 그는 오늘 밤에 우리가 여길 떠난다는 사실에 퍽 아쉬워했다.

그의 툭툭에 앉아보고 싶다고 하니 선뜻 자리를 내주던 친절한 칸과는, 그의 노트 한켠을 채우는 것으로 헤어짐을 고했다. 다정한 그 기사가 앞으로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인도기차의 꽃말은 인내라더라


조드푸르를 가려 예매했던 기차 플랫폼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까먹고 있었다. 인도 기차에 지연은 없을 수 없다는 것을.
불과 며칠 동안 노쁘라블럼 소리를 수십 번은 들었다. 단언컨대 이들은 자기네가 불리할 때만 노쁘라블럼을 찾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기차는 예상시간보다 근 네 시간이 연착됐고 한두 시간까지는 씅질을 끌어모았던 나도 '오늘 안에만 출발하게 해 주세요'하고 바라며 역 안에서 벌어지는 개싸움과 원숭이들의 혈투를 풀린 눈으로 좇았다. 음침한 공중화장실에서 세수, 양치질하기 스킬은 이미 만렙을 찍었다.
네 시간이 지나고서 겨우 도착한 열차에 달려들어 탔지만, 멋모르고 처음 잘못 들어간 기차 칸에선 설국열차 꼬리칸의 실사판을 느꼈고 와 이건 진짜 아니다 싶어서 달려서 겨우 예약했던 칸을 찾았다.

찾아서도 너희는 셋이지만 베드는 하나다. 아무튼 그렇다. 하는 말에 허를 찔렸지만 귀인들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누워서 갈 수 있었다. 3년 전 뜬눈으로 지새웠던 내몽고 슬리핑 기차를 떠올렸지만 이번엔 뒤통수라도 후려 맞은 듯 기절하듯 뻗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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