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과잉과 공백 사이에서 SIDance2025

<Bad Spicy Sauce>,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SAL)

by 유영

올해로 28회를 맞은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2025)는 유네스코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가 주최하는 국내 대표 현대무용 축제다. 9월 10일부터 28일까지 서울 곳곳의 공연장에서 열리며, 한국을 포함한 13개국이 참가해 38편의 작품을 선보인다. 올해는 ‘광란의 유턴’이라는 특집을 통해 동시대 사회·정치적 후퇴 현상을 무용 언어로 성찰하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SAL의 〈Bad Spicy Sauce〉 역시 이 맥락 속에서 무대에 올랐다.


〈Bad Spicy Sauce〉는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SAL)의 작품으로 9월 21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되었다. 본 작품은 ‘성(sexuality)’을 화두로 삼는 SAL의 3년 연작 ‘색정만리(色情萬里)’ 두 번째 여정이다. 몸과 몸이 교환하는 감각적·화학적 반응을 시각화하고자 했다고.


(대표사진)배진호 안무가 2122.21222 photo by 김하몽1.jpg


두 신체가 서로 결합하고 분리된다. 남과 여의 몸이 만드는 선적 이미지는 어딘가 모르게 염색체 구조나 유전자를 연상케 했다. 신체는 복제와 변형을 거듭하며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냈다. SAL이 기존 색정만리 시리즈에서 보여준 문제의식을 고려하면, 초반부의 모티프는 작품 전체의 정서를 예고하는 장치였다.


더불어 공연 전반부터 테크노와 비트감 있는 음악을 전면 배치하는 도발적인 시도가 강렬하게 다가왔다. 사용된 음악은 이 프로젝트의 감도를 그 무엇보다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요소로, 기존 현대무용의 음향 문법을 탈피하며 감각을 자극했다. 그러나 이후 전개는 그 긴장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해 아쉬움으로 남기도 했다. 후반부의 절정까지 이어지던 리듬감 있는 음악의 선택은 오히려 중요한 순간을 강조하지 못하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음향의 거친 질감이 극의 긴장을 느슨하게 만들어 작품의 실험성을 지탱하기에 아쉬운 면이 있었다.


안무적으로는 어깨와 골반의 반동, 격정적인 리듬에 맞춘 충돌적인 움직임이 중심을 이뤘다. 스펙터클하면서도 불편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몸짓은 SAL의 신체적인 기량이 또렷이 보이는 대목이기도 했다. 움직임은 기승전결 없이 비선형적 전개로 에너지를 발산했다. 예기치 않은 순간의 움직임들은 기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더 나아가 살펴보았을 때는 이러한 신체 언어가 구체적으로 어떤 정서나 메시지를 향하고 있는지는 모호했다. 의미는 쾌락과 집착, 혹은 사랑과 중독 사이 어디쯤에서 서성이지만 어느 쪽에도 닿지 못한 채 열려있다. 이런 부분에 있어 관객이 감정적으로 접속할 수 있는 단서가 충분치 않다고 느껴졌다. 특히 중간부에 삽입된 남성 3인의 쇼맨십 퍼포먼스는 전체 맥락 속에서 가장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AL이 지속해온 실험성은 여전히 흥미롭다. 신체와 공간을 화학적 사건으로 상상하는 발상 자체는 동시대적이며, 기존 무용 문법을 탈구하려는 태도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번 작업은 개념적 야심과 감각적 설계 사이의 간극을 드러냈다. 결과적으로 ‘실험’의 의도는 전해지지만, 관객이 그 실험에 감각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경로는 충분히 열리지 않은 것이다.


〈Bad Spicy Sauce〉는 SAL의 급진적 탐구가 아직 길 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잉과 공백을 오가며 불안정한 실험의 단계에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무용 언어를 모색하려는 집요한 탐구를 증명한다. SAL만의 집요함, 급진성, 도발적인 시도가 색정만리 시리즈의 다음 여정이 어떤 변화를 보여줄지 기대하게 만든다.


KakaoTalk_20250925_223631032.jpg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7607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연극 <견고딕 걸>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