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의 시선으로 그려낸 아주 보통의 하루
나의 생애 첫 혼영은,
엄마의 소개로 보게 된 <에드워드 호퍼>.
우리 집엔 그의 작품도 하나 있지만 그 작품을 보아도 그의 이름을 쉽사리 떠올리지 못할 때가 있다.
“왜 자꾸 나는 그의 이름을 까먹는거지?”
우리 집에 있는 작품을 그려낸 “마크 로스코”라든지 “호아킨 소로야”라든지 “니콜라 드 스탈”이라든지 특징이 있는 그림을 그려내는 작가들의 이름은 좀처럼 잊는 법이 없는데 이상하게도 에드워드 호퍼의 이름은 자꾸만 숨는다.
좋아하면 작은 것 하나까지도 전부 기억한다는데, 어쩌면 나는 그의 그림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걸까.
그의 그림은 미디 작업을 할 때
EQ에서 잘라내게 되는 Low 음역대 같다.
(내가 느끼기엔) 색채도 그러하지만
그가 담아내는 오브제도 그러하다.
이젤 그림 속 사람도 기껏해야 1명~3명,
평범한 1900년대 초반~중반의 하우스,
건축양식,
담배를 피우거나 극장 속 일상의 모습,
trivial(사소한, 하찮은)한 풍경을 담아내니 도파민중독자인 나에겐 큰 의미가 없었을 수 있겠다.
아니, 큰 의미부여를 하기 힘들었다는 게 맞겠다.
하지만 분명 그만의 색깔과 구도가 있다. 진초록과 푸르다 못해 검붉은 느낌까지 드는 그만의 바다색.
그만의 색깔과 구도는 외롭고 쓸쓸하지 못해 서늘하기까지 한 풍경을 자아낸다. 아마도 그가 살아온 대공황 시기 미국의 시대상이였으리라.
엄마가 말했던 미술작품에 대한 이해는 이렇게 시작되는 것일까. 영화가 끝나도 계속해서 그의 자료를 찾게 된다. 그런 나의 커져가는 호기심 때문인지 그의 그림이 조금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엄마와 만나서 여느 때처럼 북유럽 미술기행 책에 관해 미팅을 하는데, 엄마가 2025년 트렌드 키워드가 무엇인지 아느냐 물으며 바로 #아보하라고 하더라. “아주 보통의 하루”이다. 그렇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풍경이 아보하 그 자체이다.
1882년에 출생해서 1967년 사망한 에드워드 호퍼가 그의 인생을 관통하여 화폭에 담아낸 그 일상적인 풍경이, 그의 타계 반 세기가 훌쩍 지난 후에도 모든 사람이 간절히 바라는 한 해의 키워드가 될 줄이야.
괴테를 존경했던 에드워드 호퍼.
그래서 영화는 에드워드 호포의 목소리로 읊어지는 괴테의 문장으로 시작된다.
“모든 문학 활동의 시작과 끝은 나를 둘러싼 세계를 재현하는 것이고,
그것은 내 안에 있는 세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모든 것이 이해되고, 연관되고, 재창조되고, 만들어지고 재구성된다.
개인적인 형태와 독창적인 방식으로.”
괴테의 사상은 아마도 에드워드 호퍼의 예술관에 큰 영향을 끼쳤으리라.
재밌게도 평생을 그림만 생각하고 고심했던 화가들의 뒤에는 언제나 철학가들이 있다.
뭉크에게는 니체, 호퍼에게는 괴테.
괴테의 철학적 시각으로 볼 때 오늘의 주인공 에드워드 호퍼는, 대공황의 인간의 소외감과 고독함을 재현한 최고의 아티스트이다. 그림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해지기에.
사람이 성품에 인상이 따라가는 것처럼, 예술작가는 성품에 작품이 따라가기 마련이다.
에드워드 호퍼에 대한 경외심과 존경심을 쏟아내는 팬에게도 그 칭찬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사회성이 떨어지고 냉랭했던 호퍼와 그가 지나온 시대상은 기가 막히게도 착붙이었다. 어쩜 그렇게도 그에게 딱 맞는 시대에 태어났을까?
그런 내향적인 호퍼에게도 언제나 함께 있어준 사람이 있다. 그의 아내, 조세핀이다.
프랑스 여자와 했던 사랑에 크게 좌절한 후 다시 만나게 된 조세핀은 그의 영원한 뮤즈였지만, 그는 조세핀의 몸에 자꾸만 다른 여자의 얼굴을 그려 넣는다. 무슨 해괴망측한 짓이지?
하지만, 조세핀은 늘 한결같았다.
에드워드가 잘해줄 땐 Eddy라 부르고, 서운하게 할 땐 E.라고 칭하는 그녀를 보면
아빠가 잘해줄 땐 ‘애들 아빠’, 서운하게 할 땐 ‘철천지원수’라고 부르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 동양이나 서양이나 비슷하구나 ㅎㅎ
결혼 전에는 에드워드보다도 더 촉망받았던 조세핀 호퍼는, 에드워드 호퍼와의 결혼 이후에 경단녀가 됐음에도 마리 크뢰이어나 카미유 끌로델처럼 화가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로 짐작컨데, 에드워드 호퍼는 P.S 크뢰이어나 피카소만큼 나쁜 남자는 아니었나 보다 싶다. 그저 고집 센 내향인 정도였겠구나.
그녀는 끝없는 다툼과 불화 속에서도 에드워드 호퍼의 조력자로 끝까지 남았고, 결국 에드워드 호퍼는 무대 위에서 조세핀을 소개하고 박수갈채를 받게 하는 그림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난다.
사랑한다고 한 번도 말하지 않아서 평생을 서운하게 만들다가 마지막에 사랑했다고 말하는 사람의 모습 같아서 나는 하마터면 울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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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조세핀이 평생 사람 하나 만들었구나.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누군가에겐 굉장히 강렬할 수도, 누군가에겐 굉장히 어두울 수도, 누군가에겐 굉장히 심심할 수도 있지만 확실한 건 에드워드 Hopper의 그림을 지나야 그다음 단계로 Hop(성장하다, 뛰어넘다)할 수 있다는 것.
그만큼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지나칠 수 없고, 그냥 지나가서는 안 된다. 예술적 관점으로도, 세계관적 관점으로도.
영화 군데군데 에드워드 호퍼를 칭송하는 작가나 큐레이터들이 나와 그의 그림을 설명할 때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숙어 하나가 있었다.
바로 “add up”
add up의 사전적 정의는 이러하다.
1. [특히 부정문에서] 말이 되다, 앞뒤가 맞다.
2. (조금씩) 늘어나다, 쌓이다.
그렇다.
그의 화폭 속 내러티브는 분명히 우리를 그 화폭 바깥으로 add up; 연장시켜주고 늘여줄 것이다.
우리가 예술작품감상을 해야만 하는 이유와도 완벽하게 동한다.
그래서, 에드워드 호퍼는 위대하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이 맘에 들기 시작한다.
get closer and get better.
역시 좀 더 알면 좀 더 좋아할 수 있다. 사람도 작품도.
by 낭만Yub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