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운다.
엄마는 우는 아이를 달래 보려 했지만 여의치 않다. 계속 울면 호랑이가 잡아간다며 으름장을 놓지만 아이에 울음을 그치게 할 수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곶감 이야기를 하며 아이를 달랜다. 그것을 엿듣던 호랑이는 세상에 곶감이 가장 무서운 존재로 착각한다. 아직 곶감을 만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곶감과 호랑이는 어렸을 때 좋아하던 이야기 중 하나였다. 갑자기 이 이야기가 생각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에게 곶감은 무엇이었고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떠올려 본다.
그때 그 시절, 방구차가 생각난다. 방구차라는 것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모른다면 아마 2000년대 이후 태생일 것이다. 당시만 해도 병충해, 특히 모기 퇴치를 위해 사람이나 자전거 또는 트럭에다 살충제 장비를 달아서 뿌렸다. 에프킬라나 액체형태의 분무 타입이 아니라 연기형태로 내뿜기 때문에 당시에는 방구차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흡사 방귀를 뿜으며 나아가는 모습 같아서 얼마나 웃기던지. 초등학생에게 코딱지, 똥, 방귀 이야기만 해도 까르르 넘어가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 같다.
6살 어느 여름날. 우리는 5층짜리 아파트 1층에 살고 있었고 그날따라 유독 더웠다. 나는 두꺼운 이불속에서 오한을 견디고 있었다. 며칠 전, 엄마 말 안 듣고 비 맞으며 놀았던 탓인지 감기몸살을 앓고 있었다. 당시에도 ‘감기조심하세요’ 같은 광고를 유행시키던 딸기맛 시럽 감기약이 있었다. 그날도 엄마가 분유 퍼담을 때 썼을법한 하얀 플라스틱 숟가락에 시럽을 가득 담고는 내 입에다 쑤욱 밀어 넣었다. 나는 억지로 먹는 척 얼굴을 찡그렸다. – 맛있다 그러면 엄살이라 할 것 같았다 – 꽃잎을 화려하게 수놓은 이불속에 다시 쏙 들어갔다. 이불이 얼마나 무겁던지 잠이라도 들면 가위에 눌릴 것 같은 그런 두터움이었다. 빡빡한 이불 안에서 입안에 여남은 딸기맛을 삼키며 입맛을 다셨다.
갑자기 저 멀리서 아이들 소리가 방충망 넘어 들렸다. 꺄~ 하는 비명 소리와 까르륵 웃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소리는 가까이 다가왔고, 익숙한 냄새가 마비되었던 후각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당장 뛰쳐나가야 할 순간임을 직감했다. 방구차가 왔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1층이라 방구차가 지나가기만 해도 희뿌연 행복가스가 가득 들어찼다. 어린이의 심장을 두드리는 듯한 진동과 냄새가 가득하다. 엄마는 서둘러 창문을 닫으며 설마 하는 표정으로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딸기맛 시럽의 약효를 감탄하며 무거운 이불을 두 발로 차며 일어났다.
“엄마 약 먹으니까 금방 괜찮다. 좀 나갔다 올라고”
“니 방구차 따라다닐라 하제?”
“금방 나가서 냄새만 맡을라고”
“진짜 나갈라고?, 야야 와그라노”
집 안까지 들이닥친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살충제 냄새에 그만 이성을 잃었던 것 같다. 나는 한달음에 이불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엄마가 잠시동안 따라오긴 했지만 소복하게 뭉친 아이들과 연기 덕분에 목소리만 겨우 나를 쫓아올 뿐이었다. 나는 그 길로 방구차 아저씨를 찾았다. 오한은 없었고, 두통은 사라진 것 같았다. 모든 게 엄살처럼 보일까 봐 두렵기도 했지만 지금의 연기가 나에게는 더 소중했던 것 같다.
밖에 나와보니 아저씨가 장비를 매고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 다니고 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경우다. 자전거에 장비를 실어서 뿌리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걷는 것만큼 쓰릴이 넘치진 않았다. 이미 아저씨는 아이들에게 둘러 쌓여 있었다. 아이들에게만 보이는 연기를 내뿜는 마술사 같았다.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온 동네 아이들을 끌어모아 아파트를 누비고 다녔다.
내가 즐기는 방법은 단순하다. 아마추어처럼 연기 속에 들어가 쫓아다니지 않는다. 방역 패턴을 먼저 읽은 다음 움직인다. 아저씨는 대부분 아파트 앞 화단에 뿌리며 지나가다가 공동현관에 잠시 멈춰 서서 한동안 더 뿌리고 간다. 그래서 먼저 앞지른 다음 공동현관 입구에 숨어 있는 것이다. 점점 다가오는 아이들 소리와 방구차 소리를 느끼며 공포심 비슷한 쫄깃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날도 공동현관 2개를 앞지르고서 1층 계단 앞에 머물러 있었다. 나와 취향이 비슷한 아이들이 뒤늦게 들어와 내 옆에 숨죽이고 있었다. 얼굴을 둘러보니 늘 놀이터에서 만나던 반가운 얼굴이 고스란히 박혀 있었다.
이윽고 와~~앙 하는 소리와 함께 우리가 있던 계단은 온통 희뿌연 세상이 되고 말았다. 바로 옆에 같이 뛰어다니며 안면을 튼 친구와 같이 소리를 질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세상을 탈출하기 위해 난간을 더듬고 벽을 짚으며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다시 방구차 위치를 확인하고 뛰기 시작했다. 다음 현관을 선점해야 하기 때문이다. 뛰면서 콧물을 훔쳤다. 뛰어서인지 살충제를 잔뜩 마셔서 인지 모를 기침이 계속 나왔다. 기침 때문에 손에 콧물이 잔뜩 묻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옷에 그냥 슥슥 문지르고 따라잡기와 매복을 반복했다.
마지막 동을 돌고서 아저씨는 방역장비의 레버를 아래로 내렸다. 멍 할 정도로 큰 소리가 나지 않자 먹먹함이 크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아쉬운 소리를 연신 내뿜었다. 나도 정신이 서서히 돌아오고 있었다. 그날 아마 아파트 전체 8개 동을 모두 따라다녔고, 시간은 대략 1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다. 바람냄새와 불장난했을 때 냄새가 묘하게 섞여 있었다. 바지에는 군데군데 콧물이 묻어 반짝이고 있었다. 아직도 연기 속에 머무를 때의 희열이 가시지 않았다. 아쉬워하면서도 두려움이 교차했다. 집에 가면 또 혼날 것이 분명했다.
얼마 전 캠핑장에서 방역하는 모습을 봤다. 방역장비가 왕~~ 하는 소리를 듣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당장 뛰쳐나가야 할 것 같았지만 ‘나는 어른이야’라는 말로 겨우 엉덩이를 의자에 붙일 수 있었다. 대신 그곳에 있던 모든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따라다니는 모습을 봤다. 움찔하는 다리를 매만지며 대리만족을 즐겼다. 역시 시대가 변해도 아이들 마음은 모두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연기를 보며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간혹 당장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세상을 동경하던 때가 있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그때를 추억하고 있을지도. 또렷하게 감각할 수 있는 세상에 살지만 앞날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다. 오히려 가슴만 더 먹먹할 뿐이다. 그때 현관에 숨어 방역차가 오길 기다리던 시간, 막상 희뿌연 연기가 모든 오감을 마비시키는 순간에도 웃을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하다. 좋은 만큼 마음껏 행동해도 이상하지 않을 어린이였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당장에 저 아이들처럼 나도 뛰어가 웃을 수 있을 텐데. 다음 방역 위치를 선점하며 미리 기다릴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곶감이 없어진 것 같아 씁쓸한 미소만 지어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