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대구에 OO아파트에서 72세 박 모 씨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사인은 명확하지 않지만 선풍기로 인한 저체온증 또는 질식사로 추정됩니다. 전문가들은 선풍기를 얼굴에 직접 쐬지 말고 타이머를 맞추거나, 회전시키는 방법을 권하고 있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저 봐라 선풍기 켜고 자면 죽는다니까"
"우야노, 잠오더라도 끄고 잤어야지"
"아빠 선풍기 틀고 자면 진짜 죽나?"
"큰일 날 소리 한다. 얼굴 쪽 정면으로 틀고 자면 죽는다"
죽는다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정말로 내가 아는 그 삶의 종료를 뜻하는 것인가. 아니면 은유법이나 비유법을 뜻하는 것인지 몰랐다. 골몰히 생각하던 사이, 시선은 덜덜거리는 소리 쪽으로 향했다. 거실 바닥에 홀로 서서 고개를 돌리던 선풍기가 혼자 찌익 소리를 냈다. 어련히 오래된 제품에서 나는 소린 줄 알았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꼭 자신의 존재를 숨겨온 자의 조소 같기도 했다. 아빠도 소리 나는 쪽을 보고 있었다. 눈 깜빡이는 것조차 잊은 듯 멍하게 선풍기만 바라볼 뿐이다. 회전하면서 멈칫하는 모습이 오늘은 누굴 고를까 고민하는 모습 같기도 했다. 섬뜩하기도 했고, 갑작스럽기도 했다. 엄마 아빠는 이렇게나 중요한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으며, 선풍기 회사는 이런 사실을 숨기고 있었을까.
금성이라는 로고가 머리 정면에 대문짝만 하게 박혀있다. 몸체는 변색으로 인한 것인지 원래 그런 색상인지 모를 누런 빛깔이 돈다. 머리는 쇠망으로 촘촘하게 닫혀있고 시퍼런 모기장을 뒤집어쓴 탓에 복면을 쓰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잠재적 살인자라는 의식 때문인지 그날따라 더 무섭게 보였다. 타이머는 구식 다이얼 레버를 시계방향으로 돌리면 찌익 소리가 나며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다. 자세히 들어보면 재깍재깍 소리가 나는데 중얼이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다. 회전은 뒤통수에 작게 튀어나온 둥근 레버를 누르면 회전이 되고, 들어 올리면 정지가 되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그런 선풍기가 대부분이었다.
여름만 되면 나는 선풍기를 끼고 살았다. 체질 같은 것은 잘 모르지만 가족 중에 특이 체질임은 확신한다. 유독 혼자만 땀이 많다. 칼바람에 낙엽을 우수수 떨구던 10월에도 반팔만 고집했는데 엄마는 옷 없는 아이처럼 보인다며 나갈 때마다 등짝에다 섭섭함을 표현하곤 하셨다. 나의 유년에는 여름보다는 확실히 겨울이 살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놀이와 시원한 수박화채 그리고 낮이 길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여름이 좋은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
나는 잠재적 살인자와 불편한 동거를 시작했다. 내 방에도 작은 선풍기가 있다. 타이머는 없고 회전만 있는 그런 저가형 선풍기였다. 그날 저녁에도 불을 끄고 선풍기를 켰다. 그리고 침대에 던지듯 풀썩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유독 요란했다. 매일 같은 1단이고 회전을 하고 있음에도 무언가를 속삭이는 듯했다. 어서 잠들어야 한다고, 그래야 자신이 일을 할 수 있다는 식의 말투 같기도 했다. 결국 그 녀석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정지버튼을 발로 눌렀다. 아니 눌렀다기보다는 선풍기에 발을(발이 있다면) 밟듯이 때렸다는 말이 맞을 거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날 나는 땀을 팥죽같이 흘리며 잤다. 그래도 행복했다. 비록 아주 낮은 확률이긴 해도, 죽을 수도 있는 1% 여지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순간 지금까지 살아 있음이 감사했고 그런 운을 가지고 태어난 스스로가 대견했다. 선풍기 회전 모터가 고장 나 내 얼굴에서 멈추는 불상사는 아직 생기지 않았고, 덥다고 얼굴 정면에다 선풍기를 쐬고 그냥 잠드는 경우는 아직은 없었으니.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고작 7살짜리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의식하려 했다는 사실 말이다. 그전에도 외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봤었지만 엄마가 슬퍼하는 만큼 아프지 않았다. 어렸을 때라 그런지 사촌들과 숨바꼭질이 더 재미있었고 짭조름한 갈비가 더 맛있었다. 그 후에도 큰아버지, 고모가 떠난 빈자리를 목격했지만 실감하지 못했다. 뉴스에서도 죽음은 매일같이 계속 일어났지만 7살짜리에게는 다른 의미를 전달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아마도 내가 소멸보다는 탄생 쪽에 가깝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을지도. 어른이 된다는 것, 어른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생각했다. 그냥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구나. 이런 선풍기 살인과도 같은 일을 얼마나 많이 겪고 이겨냈을까 하며 그들에게 경외심을 느꼈다.
그날 이후부터 미신 같은 확신은 계속되었다. 고학년이 될 때까지 선풍기를 의식하며 살았다. 누군가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조롱했고 또 누군가는 정말 죽는다며 뉴스에 난 신문기사를 언급하기도 했다. 나도 미심쩍지만 미신 쪽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거짓임을 증명하고 싶지 않았다. 세월은 무심히 그리고 빨리 지나갔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마흔 중반으로 치닫고 있기는 해도 아직 멀쩡히 살아있다. 만약에 정말로 선풍기를 정면으로 쐬고 자면 죽는다 하더라도 나는 살아남았을 것이다. 그 정도로 삶의 경계를 의식하고 넘지 않으려 무단히 애썼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걸 신경 쓰느라 수명이 조금 단축되었을 수도. 매트리스가 땀으로 축축이 젖어가면서도 켜지 않겠다는 의지가 더 강했으니 말이다.
지금 아이들은 과거에 이런 미수사건을 알지 못할 것이다. 말해도 믿지 못할 것이다. – AI에게 물어보고 거짓임을 단박에 알았겠지 – 언젠가 아빠에게 물어본 적 있다. 어렸을 적에 선풍기 틀면 죽는다던 사실이 거짓임을 알고 있었는지를. 아빠는 피식 웃으면서 당연히 알고 있다 했다. 정말 알고 있었는지를 몇 번이고 물었지만 어이없다는 식에 김 빠지는 웃음만 되돌아올 뿐이다. 아빠는 진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내가 딸아이에게 산타는 실존한다고 했지만 없다고 말 못 한 것처럼. 이제 와서 장난이라 해도 소용없기는 마찬가지다. 변하는 것은 없다. 그저 미래를 살기 위해 과거를 바지런히 살았다는 사실만 기억할 뿐.
선풍기 살인사건의 전말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이 나고 만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잠을 잘 때 선풍기를 회전하거나 타이머를 맞춘다. 어렸을 적부터 쌓아둔 감각이 본능적으로 나를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