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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크림 Mar 26. 2018

겔랑

내가 사랑하는 그 이름, 겔랑

누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향수가 뭔가요? 라고 물으면 조금 망설일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향수 브랜드는 뭐에요?라고 물으면 바로 겔랑이라고 말할 것이다.

겔랑의 향을 제일 좋아하냐고? 그렇진 않다. 다만, 겔랑의 조향사들을, 겔랑의 역사를 사랑한다.




겔랑은 1828년, 화학자였던 피에르 겔랑에 의해 만들어졌다. 겔랑이 유명해진 건, 겔랑이 프랑스 황실 공식 향수 업체로 선정되면서부터였다. 피에르 겔랑은 나폴레옹 3세와 유제니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69마리의 황금빛 벌이 새겨진 오 드 코롱 임페리얼을 바쳤다. 평소 두통에 시달렸던 유제니는 오 드 코롱 임페리얼의 향을 맡고 두통이 사라졌다고 한다. (실제로 오 드 코롱 임페리얼은 레몬, 베르가못, 네롤리 등이 들어가는데, 네롤리는 실제로 두통을 완화시키는 효능이 있고, 베르가못 역시 정서적 스트레스를 완화시켜주는 효능이 있다.) 유제니는 두통을 완화시켜주는 이 향수를 매우 사랑했고, 그 덕에 겔랑은 왕가의 조향사로 임명되고, 황실 공식 향수 납품 업체가 되었다. 지금도 오 드 코롱 임페리얼 보틀에는 69마리의 황금빛 벌이 새겨져 있는데, 벌은 나폴레옹 왕가를 상징하는 문양으로 오직 겔랑만 이 문양을 쓸 수 있다고 한다. 지금은 이 벌 문양이 겔랑의 상징이 되어, 다른 향수 보틀부터 여러 화장품에도 시그니처처럼 이 벌 문양이 새겨져있다.


*참고로 나폴레옹 3세와 나폴레옹은 같은 사람이 아니다. 우리가 아는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 하얀 말을 타고있는 그림 속의 나폴레옹은 나폴레옹 1세,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오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이고, 나폴레옹 3세는 나폴레옹 1세의 동생 루이 나폴레옹의 아들이다. 참고로 나폴레옹 3세는 만 40세의 나이로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는 대통령이자 황제였다. 나폴레옹 3세는 최연소 프랑스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169년 동안 유지했으나, 마크롱이 만 39세에 프랑스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이 기록은 깨졌다.


이 그림 속 나폴레옹은 나폴레옹 1세

'나폴레옹 1세'하면 떠오르는 그림 2개가 있다. 하나는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또 하나는 나폴레옹 대관식을 그린 그림이다. 노트르담 성당에서 열린 대관식에서 나폴레옹 1세는 교황 비오 7세 앞에 무릎 꿇고 왕관을 받는 대신, 교황의 손에 있던 왕관을 빼앗아 스스로 왕관을 썼다고 한다. 대관식을 그려야하는 화가 다비드는 고뇌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스스로 왕관을 빼앗아 쓴 황제의 그림을 그릴 수도 없고, 거짓으로 황제가 교황 앞에 무릎을 꿇는 모습을 그릴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나폴레옹 1세가 그의 아내 조세핀에게 왕관을 씌여주는 모습을 그리는 묘수를 발휘해 나폴레옹을 흡족하게 하는 대관식 장면을 그려낸다.


나폴레옹 1세의 연인 조세핀은 사치가 심했다고 한다. 나폴레옹 1세는 그녀를 무척이나 사랑했지만, 자신의 대를 이어줄 자식이 없어, 그녀와 이혼하고, 재혼한다. 이혼 후에도 나폴레옹 1세는 조세핀을 잊지 못해, 그녀의 사치를 스스로 감당하며, 그녀가 지내는 말메종 성을 왕래하며 애증 관계를 유지한다. 결국 나폴레옹1세가 유배지로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도 말메종 성에 들릴 정도로 그 둘의 인연은 깊었다.


나폴레옹 3세의 아내 유제니 역시 조세핀처럼 사치가 심하고,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당대 패셔니스타였던 유제니는 사실 오늘날 명품으로 불리는 브랜드들을 발굴해낼 만큼 패션에 일가견이 있었다. 그녀는 루이비통, 쇼메, 겔랑, 까르띠에를 사랑했으며,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주었다. 그녀는 루이비통 가방에 짐을 쌌고, 겔랑의 향수를 뿌리고, 쇼메 반지를 꼈으며, 까르띠에를 무척이나 사랑했다고 한다. 사실 이 브랜드 장인들의 솜씨를 알아본 유제니도 대단하지만, 그 시대부터 지금까지 장인의 명맥를 이어왔다는 게 참 대단하다. 황실 버프만으로 지금까지 명성이 유지될 수는 없을 것이다. 100년이 넘게 그 명성이 유지되는 건 그 브랜드의 장인 정신 때문이다.


겔랑의 장인 정신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데, 겔랑은 조향사가 원료 조달(겔랑의 조향사가 세계를 돌아다니 원료를 찾는데, 이렇게 찾아낸 원료를 겔리나드라고 부른다.)부터 제품 기획, 개발, 생산 전 과정을 책임지는 통합 생산 체제를 갖춘 몇 안 되는 브랜드이며, 조향사가 CEO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유일한 회사이다. 이러한 장인 정신이 겔랑의 명성을 오늘날까지 유지시켜주는 것이다.


맨 위:  왼쪽부터 피에르 겔랑, 에메 겔랑, 자크 겔랑. 아래 : 왼쪽부터 장 폴 겔랑, 티에리 바세


겔랑은 피에르 겔랑 시절부터 에메 겔랑, 자크 겔랑, 장 폴 겔랑을 거쳐 4대째 겔랑 가문에서 최고 조향사를 배출해왔다.


특히 장 폴 겔랑은 후각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한다. 그는 삼천여가지의 향, 즉 거의 모든 향료의 향을 코로 구분할 수 있었다고 한다. 15살 무렵 헤네시 가문의 시음회에 초정받았던 장 폴 겔랑은, 코냑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도 구분하지 못했던 최고급 코냑을 후각만으로 구분해낸다. 이런 천재적인 후각과 자크 겔랑의 교육을 받으며 천재적인 조향사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는 향수를 기억의 가장 강력한 형태라고 부르며, 그의 기억 속에 있던 향들을 향수로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렇게 가문 대대로 조향사를 배출해왔던 겔랑 가문은 1994년 겔랑이 LVMH 산하에 들어가면서,

최초로 겔랑 가문 외의 사람을 최고 조향사로 인정했는데, 그가 바로 티에리 바세이다. 티에리 바세는 천재적인 장 폴 겔랑을 스승으로 모시며, 그와 함께 겔리나드를 찾아 여행을 다녔는데, 그때 마다 마치 영화 인디애나 존스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즐거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스승인 겔랑과 함께 이딜 향수를

만들었으며, 디올 어딕티드를 만들었던 재능있는 조향사이다.


겔랑은 미디어에서 티에리 바세를 인터뷰할 때 마다, 그의 이름이 다른 브랜드의 조향사 이름과 나란히 나가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를 겔랑의 최고 조향사이자 향을 창작하고 지휘하는 자라고 칭하며, 조향사인 티에리 바세에 대한 최고의 존경과 믿음을 보인다.


티에리 바세가 찾아낸 최고의 겔리나드 중 하나는 삼박 자스민이다. 그 삼박 자스민이 들어있는 향수 중 하나가 최근 안젤리나 졸리를 모델로 세운 몽 겔랑 오드 퍼퓸 플로랄이다!


자신의 꿈을 믿고 펼치는 사람에게 보내는 찬사, 안젤리나 졸리의 자유분방하면서도 관능적이고 강인한 매력을 담았다고....길다...


카를라 라벤더, 삼박 자스민, 타히텐시스 바닐라, 샌달 우드가 주요 성분으로 표시되어 있다.

특별히 탑, 미들, 베이스 노트를 일일이 적어 주진 않았지만(아마 이 외에 다른 성분도 들어 갈 것이다),  탑노트로 라벤더가 들어갈 것이고, 자스민은 미들노트, 바닐라와 샌달우드가 아마 베이스 노트가 될 것이다.

몽 겔랑은 노트를 나누는 게 무색하다. 처음 향을 맡는 순간부터 라벤더와 자스민의 플로럴한 향이 느껴지고 금새 바닐라와 샌달우드의 포근한 향이 올라온다. 보통 자스민이 들어가면 향수 홍보 문구에 꼭 "관능적인"이 들어간다. 자스민, 일랑일랑, 로즈, 튜베로즈(월하향) 같은 허브는 실제로 이성을 매혹시키는 효과가 있는 허브라고 한다. 그래서 이 중 한가지만 들어가도 "관능적인"이라는 문구는 거의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그렇다고 정말 관능적인가? 라고 물으면 글쎄요...


몽 겔랑은 관능적이라기 보다 부드럽고 온화하다. 향수를 나타내는 자유분방하고 관능적이면서 강인한 여인상 보다는 상냥하고 따뜻한 느낌이 강하다. 딱 4월의 날씨같다. 하늘은 맑고, 날씨는 따뜻하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 바람에 벚꽃이 흩날린다. 너무 평온하고 한가로워 자칫 따분하고 졸린 느낌이 드는 춘곤증이 떠오르는 향이다. 춘곤증이 떠오른다고 향이 지루하다는 게 아니다. 너무 따뜻하고 포근해 소록소록 잠이 오는 나긋나긋한 느낌이다.

색상으로 따지자면 향수 색상인 핑크가 잠 잘어울린다. 파스텔 핑크색이 도는 캐쉬미어 목도리가 따뜻하고 포근하게 나를 감싸는 부드러운 느낌이 든다. 바닐라와 샌달우드가 들어가면 파우더리한 느낌이 들면서, 따뜻하게 주변을 감싸는 듯한 느낌의 향이 나는데, 몽 겔랑도 그렇다.


샌달우드는 동양에서 종교적으로 많이 쓰이던 향으로, 백단향이라고 불리며, 백단 나무에서 얻어진다. 백단향은, 한 번이라도 백단 나무를 찍은 도끼는 날에 그 향이 배인다는 말이 있을 만큼, 향기로 유명한 나무이다. 종교적으로 마음을 안정 시켜주는 향으로 유명하며, 몸의 냉증과 냉기를 없애주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샌달우드 향 자체가 매우 따뜻하고 포근하기 때문에인지 냉기를 없애준다는 말에는 바로 수긍이 간다.


몽겔랑에 대해 이야기하긴 했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겔랑 향수는 몽겔랑이 아니다.

나는 겔랑 특유의 파우더리한 향을 좋아해서, 몽겔랑도 참 좋아라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겔랑의 향수는 따로있다. 바로 랭스땅드 매직(EDP)이다.


왼쪽부터 겔랑 지키, 랭스땅드 매직


랭스땅드 매직은 오 드 퍼퓸으로 자칫 향이 강하다고 느낄 수 있다. (왜 계속 퍼퓸만 있냐고 묻는다면, 겔랑은 퍼퓸으로 유명하다. 최초의 모던 향수이자 최초로 퍼퓸 등급을 받은 향수가 바로 겔랑의 지키이기 때문이다. 지키는 겔랑의 2대 조향사 에메 겔랑이 만든 향수로, 그가 유학 중 만났던 여인을 그리며 만든 향수이다.)


랭스땅드 매직는 탑노트인 베르가못, 미들노트인 머스키 로즈, 프리지아, 베이스노트로 화이트 머스크, 아몬드로 구성된 향수이다. (나는 참고로 견과류를 참 좋아한다. 먹는 걸로도, 향수로도, 나는 아몬드나 피스타치오가 들어간 향을 무척이나 좋아하기 때문에 이 추천은 매우 주관적일 수도 있다.)

처음 랭스땅드 매직을 시향하면, 향이 강하게 느껴져서 부담스럽게 다가오지만 금새 로즈와 프리지아 특유의 대체로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무난한 플로럴 향이 느껴진다. 하이라이트는 베이스노트이다. 랭스땅드 매직은 퍼퓸답게 향이 제법 오래 지속되는데, 로즈 특유의 관능적인 느낌과 프리지아의 상큼함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화이트 머스크와 아몬드의 보드라운 향이 올라오는데,이것은 마치 존슨즈 베이비 로션 특유의 보송보송한 향에 플로럴 향이 은은하게 가미된 느낌이다. 뭐라고 할까? 아기 로션 냄새와 어른스러운 향수 냄새가 섞여있어 묘한 아슬아슬함이 만들어 진다. 청순한 느낌과 관능적인 느낌이 묘하게 공존해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게 바로 청순섹시지...


겔랑을 시향해보고 싶다면, 롯데 잠실 에비뉴엘 월드타워점의 겔랑 부티크로 갈 것을 추천한다. 겔랑 부티크가 가장 많은 겔랑 향수를 보유하고 있다.
겔랑의 경우 원료를 찾아내는 데 엄청난 공을 들인다. 그래서 만약 본인이 좋아하는 향수 원료가 따로 있다면, 그 원료가 들어간 겔랑의 향수를 찾아 시향해보길 추천한다. (+ 만약 본인이 오키드를 좋아한다면, 겔랑 시향을 반드시 해보길 권한다. 겔랑은 오키드 연구소를 별도로 두고 있을 만큼, 오키드 연구의 1인자이다.)



티에리 바세는 향기는 상상 속에서 완성된다고 했다.

당신은 자기 자신을 어떤 향으로 상상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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