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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Apr 10. 2019

네가 아직 결혼할 만큼 좋은 사람을 못 만나서 그래

누군가는 제도권 밖에서 비혼이라는 사랑을 한다


 “나중에 너 결혼할 때 주려고 그릇을 샀어.”

 “엄마, 그냥 지금 써. 나 결혼 안 할 거야.”

 “혼자 살면 힘들어.”


 엄마는 결혼해서 안 힘들어? 둘이 살아서 안 외롭고? 내가 본 그녀는 결혼과 맞지 않는 사람이다. 결혼 전, 그녀는 여러 개의 직업이 가졌고 자기 가게도 운영을 했었다. 하지만 그놈의 ‘결혼 적령기’가 뭔지, 늦지 않게 결혼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말에 한 남자와 결혼하여 적당한 나이에 아이를 낳았으며, 힘들게 몇십 년을 길렀지만 그 노고는 경력한 줄로도 쓸 수가 없다. 과거에 아무도 매니큐어를 바르지 않았을 때, 그녀는 하얀 손에 새빨간 매니큐어를 발랐고, 패션 잡지 안의 화려한 옷들을 사랑했다. 그런 그녀는 이제 없다. 밥을 할 때 벗겨질까 봐 매니큐어를 바르지 못하고, 패션 잡지는 가끔 미용실에서 머리를 볶을 때나 잠깐 들춰보며, 새 옷을 살 돈으로는 남 먹일 것을 사야 한다.


 아빠 또한 그렇다. 그는 월급이 100이 들어오면 200을 자신에게 쓰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을 만나 운동하는 것을 좋아했고, 제 인생에 거리낄 것 없이 고를 외치는 사람이었다. 그 직진은 사랑에도 적용됐다. 의례 그 시대 무드에 따라 결혼에도 고를 외쳤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은 스톱이 더 많은 제도였다. 늦게까지 술을 마실 수도, 내가 번 돈을 혼자 다 쓸 수도 없다. 그러니 좀 억울도 했겠지. 이제 그가 외칠 수 있는 ‘고’란 모바일 맞고뿐이며, 운동을 좋아하던 남자는 직접 물 떠먹기도 귀찮아한다. 자식들 때문에 초과근무를 해야 하고, 직장에서 최대한 껌딱지처럼 붙어있어야 한다. 그도 결혼해서는 안됐다.


 엄마는 나에게 너도 결혼해서 자식을 기르라고 말했다. 배우자와 자식이 있어야 행복하다고. 글쎄, 그 행복은 결혼이란 제도가 아닌, 가족에서 비롯된 찰나 같은 행복이 아닌가. 그 찰나를 위해 그들은 아주 오래 괴로워했다. 때때로는 결혼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문제로 서로를 찔렀고, 받지 않아도 될 상처를 받았다. 두 사람은 제도권 밖에서 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인생과 사랑의 도피처로 결혼을 선택했다. 나는 이런 생각들을 한마디로 꾹꾹 눌러 담아 말했다.


 “엄마, 나는 제도를 도피처로 삼지는 않을 거야.”      








 결혼은 둘을 포함한 ‘모두’의 니즈를 맞춰야 하는 제도다. 결혼의 시작인 식장 예약과 혼수부터, 결혼 후의 육아 계획과 둘의 직장, 시댁과 처가에 관한 문제에는 두 사람 이외의 이해관계가 얽히게 된다. 사랑은 그대로지만 선택의 자유는 줄어든다. 서로의 희생을 감수하는 조건으로 법적인 보호를 받기에, 연애와는 그 결이 다르다. 물론, 양쪽 다 어느 정도 배려한다면 더 행복할 수 있는 제도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둘 중 하나만 괴롭다. 그래서 나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주변은 말한다. ‘그래, 너는 자기밖에 몰라서 결혼하지 않는 거네.’ 그럼 과거의 모두는 이타적이기 때문에 결혼을 했는가? 오히려 상대방의 희생을 당연히 여겼고 ‘이기적’이었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 결혼의 문제점이 발견되는 게 아닌가? 결혼으로 인해 누군가는 가장의 부담을 오롯이 짊어져야 했고, 다른 누군가는 육아와 집안일의 독박을 써야 했다. 하지만 이 제도가 오랫동안 계보를 유지해 올 때도, 다수는 그 사실을 외면하며 그걸 당연하게 여겼다. 대다수는 제도를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도를 따라가지 않는 사람을 비난했다. 그렇게 예전부터 당연하다 묵혀놨던 문제들이 이제야 터졌을 뿐이다. 진즉에 그 제도가 건실하게 재건되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적어도 제도의 불합리로 인해 비혼을 외치진 않았을 것이다.


 당신이 결혼을 했다면 그 선택은 존중하지만, 그걸 남에게까지 강요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을 택하고, 다른 누군가는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존중하는 만큼 상대방의 자유도 존중한다. 그래서 사랑은 하지만 결혼이란 제도가 내 필수 선택지는 아니다. 누군가의 희생을 필연적이라고 생각하는 사회 속에서, 상대방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해주려는 사람이 이기적인가. 아니면 단점은 묻어둔 채 무조건 하라는 사람이 이기적인가. 누군가는 제도권 밖에서도 사랑을 한다. 그것이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든,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든.




 많은 극에서 사랑의 완성을 ‘결혼’으로 연출한다. 우리는 이런 결말을 지루해하면서도, 극 속의 커플이 결혼을 하면 내심 안도를 한다. 이제 저들은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더 이상 엇갈리지 않고 행복하게 살겠구나. 하지만, 법적 서약 없이 나약할 수밖에 없는 사랑은 오히려 비극이 아닐까? 서류 쪼가리와 이혼의 구차한 과정이 날 붙잡지 않으면, 쉽게 갈라설 수 있는 관계. 그것으로 발을 묶어둬야 마음이 편하다면 그것이 과연 사랑인가. 그래서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결혼하지 않아도, 영원한 사랑을 맹세할 수 있다.








작가의 말

사랑의 완성은 사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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