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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Apr 17. 2019

나는 왜 맨날 떨어지는 걸까

새털같이 가벼운 바람에 아파하지 마세요


 나는 항상 대회의 심사기준이 궁금했다. 그러다가 큰 규모의 대회에서 도우미로 아르바이트를 할 기회가 생겼다. 단순히 심사위원을 돕는 자리였지만, 혹시 내가 '그들의 안목을 엿볼 수 있진 않을까?' 하는 은근살짝 설레는 마음도 들었다. 과연 심사에 있어서 보편타당한 기준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심사위원은 남들이 보지 못한 가능성을 보고, 노력에 대한 보상을 내리지 않을까? 그렇게 들어선 장소에는 육천 명의 노고가 바닥에 깔려 있었다.

   

 심사는 오랜 시간 동안 진행됐고, 나는 심사위원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작품을 주워 담았다. 봤던 것을 보고, 또 보고 질릴 때까지 보다가, 그가 별 말없이 '저거'라고 하면 냅다 뛰어서 집어왔다. '저거'란 선택받은 작품이었다. 누군지 몰라도 참가상 이상은 챙겼다. 그 이후로는 긴 말없이 심사가 계속됐다. 그러다 우리는 어떤 작품 앞에 멈춰 섰다.

 

 "자네, 저건 어떻게 생각하나?"

 "네?"

 "담을까, 놓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편하게 말해봐. 어차피 하나 더 뽑아야 하니까."

   

 편하게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내가 들고 있는 작업들은 통, 바닥에 깔린 것은 불통. 내 한마디가 바닥에 있는 작업을 꼭대기로 끌어올릴 수도 있었다. 나는 한참을 어버버 거리다가 최대한 중립적으로 말했다. 길게 늘어놓은 개소리였지만, 결론은 '심사위원인 네가 골라야지, 그걸 왜 나한테 묻냐.'는 말이었다. 그는 한참을 생각했다.

     

 "도대체 뭘 뽑아야 할지 모르겠네."


 그리고 그 문제의 작업에도 '저거'라는 계시를 내렸다. 나는 ‘이거요?’라는 미심쩍은 물음과 함께 그것을 주워 들었다. 무언가 확실한 기준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수상작에는 참가자의 노력과 운, 심사위원의 알 수 없는 '저거'가 있을 뿐이었다.








 노력은 반드시 보상받는가? 사실 스포트라이트는 소수에게만 돌아가고, 나머지는 어두운 그늘 속에서 사라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숨 쉬듯이 경쟁한다. 합격과 불합격의 한 글자 차이로, 누군가는 과거의 노력을 한 줌의 재로 날려버리고, 현재의 일을 포기하거나, 미래의 꿈을 접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이런 평가를 받은 것은 분명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타인은 나보다 객관적일 것이다. 내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그래서 '이거 어때?'라고 주변에 물어보며, '좋아.' 혹은 '나빠.'라는 말을 나보다는, 남에게서 들으려고 한다. 스스로의 평가보다 타인의 칭찬이, 칭찬보다는 한 줄로 남을 수상이력이 더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내 눈은 주관적이며 팔은 안으로 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인은 정말 객관적인가? 그들은 공명정대하고 절대적 기준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는 자신의 평가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남의 말을 믿는 것일까. 애초에 객관적 평가란 없다. 누가 하든 반드시 사심은 들어가게 되어있다. 그 분야 일인자의 평가도, 다수의 평가도 완전히 절대적이진 않다. 그래서 해리포터를 쓴 J. K. 롤링이 열두 번의 출판 거절을 당했고, 월트 디즈니도 상상력과 좋은 아이디어가 부족하다는 평을 들었으며, 비틀즈도 첫 오디션에서 기타 그룹은 한 물 갔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들을 평가한 사람들은 나중에 모두 땅을 치고 후회했다. 그러니 후회는 당신이 할 게 아니다. 당신을 놓친 사람들의 일이다.

 


 남의 평가는 사실 새털같이 가볍다. 내 마음을 붕 뜨게 했다가도 금방 곤두박질치게 한다. 심지어 변덕맞아서 손안에 쥐었는데도 쉽게 날아가 버린다. 이렇게 금방 사라질 것에 기준을 두지 말자. 당신의 묵직한 노력은 평가받지 않아도 가치 있다. 좋은 결과란 그저 나의 노력과 심사위원의 '저거'가 맞는 순간일 뿐이지, 그것이 당신의 도전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쉽게 우리를 평가할 수 있다고, 상처까지 쉽게 받을 필요는 없다. 생각보다 결과란 지랄 맞고 제멋대로며 뭘 모르는 놈이다. 그래서 끝까지 노력했다면, 그런 놈 때문에 아파할 필요가 없다. 차라리 나라는 원석을 소 뒷걸음치다 발견할 누군가에게 '너 이짜식, 이제야 나를 알아보는 거야?'라고 멱살 잡을 미래를 준비하는 게 훨씬 낫다.








글쓴이의 말

두고 보자는 사람 중에 무서운 놈도 있다는 걸 보여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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