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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Apr 23. 2019

이것은 육아인가, 여행인가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무려 이틀이나 휴가를 내고 4박 5일의 일정을 잡았다. 결혼하고 제주도는 꽤 여러 번 다녀왔다. 신혼 첫 해에는 아내와 둘이서. 그로부터 2년 뒤에는 퇴사 기념으로 7개월이었던 첫째도 함께. 작년에는 처갓댁 식구들과 함께. 온전한 4인 체제로 우리 가족끼리 여행 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늘 그렇듯, 여행은 정해지고 준비할 때가 가장 설렌다. 이제 뭘 좀 아는 첫째도 잔뜩 기대를 품었다.


“아빠. 이제 제주도 가려면 몇 밤 남았어여?”

“글쎄. 아직 많이 남았어. 한 30밤?”


애 둘을 데리고 함께하는 여행은 시작부터 달랐다. 아내랑 둘이 갔을 때는 막 샤방샤방하고 인스타 감성 폭발하는 그런 예쁘장한 게스트 하우스를 찾았는데, 이제는 아니다. 아직 추워서 바다에 들어갈 수 없으니 대신 커다란 욕조가 있는 곳을 찾았다. 거기에 마당도 있으면 더 좋고. 아내와 나를 위한 고려는 거실과 방이 분리되었다는 정도. (애들 재우고 영화라도 한 편 봐야 하니까)


일을 마치고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공항으로 가며 속으로 다짐했다.


‘짜증 내지 말고, 화내지 말고, 기분 좋게 다녀오자’


난 알고 있었던 거다. 두 녀석과 함께하는 여행은 시작되기 전 까지만 낭만이고, 비행기를 타는 순간 지극히 치열한 현실의 장이 된다는 걸.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노동은 시작됐다. 공항에서 탑승 수속 밟는 것도, 1시간도 채 안 되는 짧은 비행도, 다시 공항에 내려 짐 찾고 렌터카 찾아서 유모차와 카시트를 찾는 것도. 어느 것 하나 수월하고 만만한 게 없었다.


그래도 굳은 결심 때문인지 잘 버텨냈다. 애들도 24시간 내내 고달프게 하는 건 아니니까. 좋을 때는 교과서에 나오는 화목한 가정의 표본이 우리인 것처럼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몸은 정직했다. 첫날,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곯아떨어졌다. 사실 나도 충분히 그럴 만했지만 오기로 견뎌냈다.


‘이건 가족여행이지, 육아 여행이 아니잖아. 나도 놀 거야’


좀 쌀쌀한 게 흠이었지만 미세먼지도 없고, 어디를 가도 물과 나무가 보이는 그 자체로 만족했다. 3일 차로 접어들면서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좋은 자연환경을 뒤로하고 주구장창 초콜렛 타령을 하지를 않나, 여행이니만큼 늦게까지 안 재우고 놀게 해 줬으면 아침에도 늦게 일어나는 게 인지상정이거늘 새벽같이 일어나서 깨우지를 않나, 패딩을 입어도 부족함 없을 날씨에도 굳이 모래놀이를 하겠다며 바닷가에 가지를 않나.


한라산은 아주 오랫동안 분출 활동이 없는 휴화산이었지만, 난 뜨겁게 타오르는 활화산이었다. 네 번째 날, 어느 카페였다. 주문한 커피를 직원분이 자리에 놓고 가신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첫째가 빨대를 꼽겠다며 부산을 떨다가 그만, 커피를 쏟고 말았다. 커피는 쏟아지고, 내 마음의 뜨거운 용암도 쏟아졌다. 악한 인간의 본능이 깨어났다. 처리되지 못하고 쌓여온 내 안의 억눌린 감정들을 쏟아낼 절호의 기회라는 걸 알고, 몸이 반응했다. 소윤이한테 한바탕 쏟아냈다. 부와아악.


중재자로 아내가 나섰고 나와 첫째 모두 어느 정도 진정됐다. 한 번 마음을 비워낸 나는, 약간의 후회와 함께 다시 초심을 찾았다.


‘그래, 얼마나 안 남았으니까. 이러지 말자’


물론 제주도를 떠날 때까지 비슷했다. 육아와 여행 사이의 외줄타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아내와 나의 밤은, 언제나 피곤함과 지침에 지배당했다. 영화든 TV든 보다가 꾸벅꾸벅 조는 게 대부분이었다.


“여보. 그냥 제주 육아 아니야? 여행 아니고?”


아이들과 계속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기쁨과 한시도 떨어질 수 없다는 압박이 공존하는 게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이었다. 그래도 떠나는 날이 되니 모두 아쉬워하는 걸 보면, 여행은 여행이었나 보다.


“소윤아. 제주도 또 오고 싶어?”

“네. 또 오자여”

“왜?”

“그냥. 엄마랑 아빠랑 계속 같이 있으니까여”

“그…그..래. 아….빠도”


좋지 않았던 건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주 좋긴 좋은데 좀 덜 힘들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말이다.(말장난 같지만 정확한 진심이다) 자주 다니다 보면 더 그러려니 하게 되겠지.


그나저나 정신없이 보내느라, 흑돼지 생갈비를 못 먹고 온 게(아예 생각도 못했다) 천추의 한이 되었다.




* 이 글은 리드맘 공식 포스트(http://bitly.kr/LpCN6)에 포스팅 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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