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11(목)
"여보. 내일은 아침에 고구마 먹을래, 감자 먹을래?"
"내가 알아서 챙겨갈게"
"나도 일어날 거야"
"내일 아무 일도 없잖아?"
"그래도. 일어나야지"
라고 말하던 아내는 눈을 뜨지 못했다. 다행히 애들도 깨지 않았다. 최대한 늦게 깨길 기원하며 집을 나섰다.
8시가 넘어도, 9시가 넘어도 연락이 없었다. 카톡을 보내도 답장이 없고. 애들이 아무리 늦게까지 잔다고 해도 9시를 넘길 리는 없었다. 이건 그냥 읽고 씹기. 나중에 아침 준비할 때쯤 통화를 했다.
저 너머로 들려오는 소윤이와 시윤이의 목소리가 굉장히 밝고 즐겁길래 잘 놀고 있다고 생각했다.
"엄청 싸워. 지금은 좀 평화 국면이야"
역시 잠깐 듣고, 보는 걸로는 진상을 알 수 없다.
"오늘은 뭐해?"
"그러게. 별일 없지. 이따 마트나 갔다 오려고"
"마트?"
"어. 내일 수육 해 갈 거 준비도 좀 하고"
오늘 저녁에 임상 실험을 한다고 했다. 아내도 수육은 처음이라 집에서 미리 한 번 해서 먹어보자는 거였다.
퇴근하고 와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아내를 마주쳤다. 505호 사모님네서 집에 가는 길이었다.
"애들은?"
"아, 잠깐 언니네 집에"
아내는 급히 재료를 손질하고 돼지고기 삶을 준비를 했다.
"여보. 이 정도면 될까? 너무 조금인가?"
"글쎄. 여보가 알아서 해"
"나도 잘 모르겠어. 좀 더 넣을까? 부족한가? 더 넣고 고기를 좀 더 사 올까?"
"그 정도면 되지 않을까?"
"그래. 오늘은 일단 조금 먹고 맛있으면 나중에 또 해서 먹자"
사실 좀 작아 보이긴 했지만 애초에 우리 저녁 식탁이 주된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아내는 불을 올려놓고 다시 505호에 가서 애들을 데리고 왔다.
아내가 저녁 준비를 하는 동안 소윤이, 시윤이랑 놀았다. 오늘 처음으로 소윤이와 끝말잇기를 했다. 뭔가 또 새로운 단계로 진입한 느낌이었다. 소윤이랑 끝말잇기를, 그것도 엉터리가 아니라 정석으로 하다니.
"아빠. 우리 말뜻놀이 하자여. 말뜻놀이"
"소윤아. 끝말잇기야. 끝말잇기"
소윤이랑 입으로는 끝말잇기를 하며 노는 동안, 몸으로는 시윤이를 상대했다. 시윤이는 남자아이치고 그렇게 거칠게 노는 편은 아닌데, 오늘은 봉인이 해제되었는지 엄청 거칠게 달려들었다. 그래도 재밌었다. 끝말잇기도 몸놀이도.
아내의 수육이 완성되었고, 특별히 거실에 상을 펴고 앉았다. 아내가 썰어온 수육은 아주 자그마한 접시에 다 들어갔다. 소윤이랑 시윤이가 어찌나 잘 먹는지 감히 손을 대기가 무서웠다. 두툼한 비계가 붙어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막 먹었다. 고기랑 곁들여 먹으라고 새싹야채 같은 것도 있었는데, 그게 나의 주식이 되었다. 역시 곁들임으로 놓인 생마늘과 함께.
"여보. 고기가 너무 부족하지?"
"그냥 맛만 보는 거지 뭐"
식당에 온 것 같고 좋았다. 점심시간에 식당에 가서 점심특선 보쌈정식 같은 거 시키면 항상 이런 생각이 든다.
'아니. 정식이라면서 고기가 왜 이것밖에 안 돼. 싼 데는 이유가 있구만'
딱 그런 느낌이었다.(실제로는 그것보다 훨씬 많았겠지만) 정말 맛만 보는 수준이었다.(물론 타인의 기준에 비춰보면 배가 부르겠지만) 아내도 양이 부족했는지 갑자기 라면을 끓였다.
"여보도 같이 먹을 거지?"
"그래. 조금만"
소윤이와 시윤이가 더 이상은 못 먹겠다는 듯 고기를 마다할 때, 아내와 나는 라면으로 주린 배를 채웠다.
장모님은 손 되게 크시던데 아내는 누굴 닮아서 이리도 실용적인 손을 가졌을까. 내 생각에 아내는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싶을 때 과감하게 (양을) 더 잡아야 한다.
저녁을 다 먹고 애들을 차례로 씻겼다. 다행히도 시윤이는 식사를 마치고 씻기 전에 똥을 쌌다.
"어우. 똥 냄새. 지독하다"
오늘도 소윤이가 가장 먼저 알아차렸다. 동생이 민망할 수 있으니 그렇게 대놓고 냄새난다고 하지는 말라고 얘기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건, 소윤이를 이해하니까. 누구라도 그 냄새를 맡으면 그런 반응이 나오기 마련이니까. 나나 아내도 맨날 그런다.
"소윤아. 오늘 엄마가 하실 일이 많대. 그러니까 오늘 아빠랑 자자?"
"엄마랑"
금세 눈물이 차올랐지만, 이제 소윤이는 그 정도의 이해와 수용은 가능하다. 대신 책을 엄청 열심히, 재밌게 읽어줬다.
스스로 오늘 애들한테 굉장히 Nice 하다고 느꼈다. 왜 그런가 생각해 봤더니 아침에 못 봐서 그런 것 같다. 낮에도 애들 보고 싶어서 수시로 사진을 들여다봤다. 그리움이 장성한즉 다정함을 낳는 것이 육아의 진리다. 오늘의 그리움은 오늘로 족할 뿐, 내일은 유효하지 않은 것도 물론 진리고.
내일은 처치홈스쿨 가는 날이니 다들 일찍 깨워도 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