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10(수)
하루 중 소윤이 시윤이가 나를 가장 따뜻하고 살갑게 대해주는 시간은 내가 출근하는 시간이다. 소윤이야 뭐 요즘은 나와 애정이 깊어져서 다른 때에도 끈끈함을 유지하고 있지만 부쩍 엄마에게 들러붙는 일이 많은 시윤이는 좀처럼 나에게 애정표현을 잘 하지 않는다. 그런 시윤이도 아침에 출근할 때, 저녁에 퇴근했을 때 만큼은 나에게 오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오늘 드디어 자전거 출근이 빛을 보는 날이 왔다. 아내가 차를 써야 하는 일이 생긴 거다. 원래 수요일마다 목장 모임을 우리 집에서 했는데 아내가 차를 쓸 수 있게 되어서 목자 집사님 집에서 하기로 했다. 목장 모임이 모두 끝나고 다른 집사님을 데려다 주기까지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오. 신분 상승이네. 맨날 얻어 타다가"
"그러게"
"내 다리를 바친 거야"
시윤이는 차에 태우자마자 잠들었고 소윤이는 아내와 나의 대화를 다 듣고 있었다. 그러더니
"난 안 잘 거야"
라고 선포했다.
"그래. 소윤이는 자기 싫으면 자지 마"
시윤이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금방 깼고 소윤이는 당연히 자지 않았다. 퇴근했을 때 아내는 열심히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역시나 시윤이는 잠깐 나를 반겨 주고 다시 자기 갈 길 찾아 떠났다. 소윤이는 끊임없는 상황극을 제시하며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동안 시윤이는 저녁 준비하는 엄마를 방해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말이 좋아 방해지 꼬장도 그런 생꼬장이 없다. 무조건 울면서 안아 달라고 하고 아내가 반응이 없으면 싱크대와 아내 다리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아내 다리를 밀어내거나 매달리는 데 전력을 쏟았다.
"여보. 여보는 시간 되면 그냥 나가"
"아니야. 애들 재우고 나가면 돼"
"그냥 나가도 된다니까"
"아 괜찮아. 애들 재우고 나갈게"
"진짜 괜찮다니까. 늦지 말고 가"
"아니야 괜찮아. 재우고 가야지"
"마지막으로 얘기한다? 시간 되면 가도 돼"
"나도 진짜야. 괜찮다니까"
이번 주부터 수요일 밤에도 축구를 하러 가기로 했다. 장소가 집 근처인 데다가 7시부터 10시 30분이라 애들을 재워 놓고 갈 수 있었다. 아내는 저녁 준비 및 취침 시간이 조금 늦어짐으로 인해 내가 많이 늦을까 봐, 그로 인해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부담이 됐는지 자꾸 7시 땡 하면 출발하라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주일에 축구하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수요일은 보너스일 뿐.
'애들이 일찍 자주면 가고 그렇지 않으면 못 가는 거고'
가 수요 축구를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 이어야만 한다
고 말해 놓고 애들 잘 준비시키면서 계속 시계를 봤던 건 왜일까. 그래도 아내의 배려와 소윤이의 이해로 애들이 눕는 것까지만 보고 나가기로 했다.
"아빠. 시윤이 잠들 때까지만 내 옆에 누워"
시윤이를 재우려면 아내가 옆에 있어야 하고 소윤이는 혼자 매트리스 위에 누워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 소윤이가 먼저 잠들기는 하지만) 그 혼자 누워있는 동안 날더러 옆에 누우라는 거다. 소윤이의 표정과 말투를 보고 살짝 흔들렸지만 잘 다잡았다.
"소윤아. 아빠 오늘은 축구하러 가야 돼. 엄마랑 자. 알았지?"
소윤이는 아쉬움을 삼키며 그러겠다고 대답하고는 나와 인사를 나눴다. 3시간 가까이 공을 차고 왔다. 추운 날씨에도 땀을 뻘뻘 흘리니 스트레스가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스트레스와 함께 남아 있던 에너지도 모두 빠져나갔는지 샤워하고 나와서 노트북 펴고 글 쓰는데 나도 모르게 졸았다. 하긴 오며 가며 자전거 타고 밤에 축구까지 했으니 버텨내면 그게 더 이상하지.
요즘은 시윤이 놀려 먹는 재미가 있다. 점점 말귀를 보다 분명하게 알아들을 뿐 아니라 사람다운 감정이나 표현도 많이 나타낸다. 오늘도 아기 의자에 앉아 있는 시윤이에게 괜히 호통치며 혼내는 척을 했다. 눈을 꿈뻑꿈뻑 거리면서 눈치를 살피는데 한번 더 호통을 쳤다.
"이 노오오옴. 손가락 빼라고 했지"
입을 삐죽거리며 예비동작을 취하더니 금방 서러운 울음을 터뜨렸다.
"시윤아. 장난이야 장난. 아빠가 장난친 거야"
하면서 안아주겠다는 시늉을 하니까 또 그때는 나한테 안겼다. 소윤이가 먼 과거와 비교해 훌쩍 큰 게 느껴진다면 시윤이는 어제와 비교해도 달라진 게 많을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크고 있는 느낌이다. 일기마저도 누나 위주로 기록되어서 시윤이의 일상과 성장은 포함되지 않을 때가 많아서 걱정이다. 나중에 왜 자기 얘기는 이것밖에 없냐고 할까 봐.
시윤아. 너도 잘 크고 있고 엄마 아빠는 누나가 함께 있으면 소리 내지 않고 니 말과 행동에 반응하며 기뻐하고 있어. 몰래한 사랑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넌 아직 기록할만한 별난 일상이라는 게 거의 없으니 이해해줘.
니 일상이 다양해지면 더 열심히 기록해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