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8(목
알람 소리에 눈을 떴는데 아내가 벽에 기대 수유를 하며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여보. 안녕"
"어? 어. 어. 서윤이는 지금 몇 번째 깬 거야?"
"처음"
"어? 처음?"
"응"
"새벽에 한 번도 안 깼다고?"
"응. 엄청나지?"
"대박이네"
뭐지. 이 갑작스러운 전개는. 이제 고작 70일인데 벌써부터 9 to 6 라니. 아무튼 엄청난 일이다. 일찍 자주는 것도 고마운데 중간 기상까지 생략해 주다니.
수유를 마친 아내는 서윤이를 안고 거실로 나왔다. 서윤이를 정확히 파악하는 건 어렵지만 수유를 막 끝냈을 때는 확실히 기분이 좋아 보인다. 소파에 앉아서 안고 있어도 울지 않고 멀뚱멀뚱 나를 쳐다봤다. 그렇게 조금 안고 있다가 다시 아내에게 건네주고 아내는 서윤이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아내는 한 5분쯤 뒤에 다시 나왔다.
"왜?"
"토했어"
아내와 내가 서윤이의 몸이 잘 자라고 있다는 증거로 꼽는 게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더 이상 왼쪽 눈에 눈꼽이 끼지 않는다는 거고 다른 하나는 이제 토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만큼 요즘은 먹고 나서도 잘 토하지 않았다. 오늘 토한 건 엄청 오랜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거기에 똥까지 싸고.
"서윤아. 어제 통잠 잔 대가니?"
아내는 말만 그렇게 하고 서윤이를 향해 짓는 표정은 다정 그 자체였다. 아내가 화장실에서 서윤이를 씻길 때, 이번에는 시윤이가 문을 열고 나왔다. 서윤이가 수유 직후에 기분이 가장 좋다면 시윤이는 자고 일어났을 때가 최상이다. 아직 정신이 몽롱할 때, 그때는 뭘 요구해도 다 반응해 준다.
아내와 시윤이, 서윤이는 다시 방에 들어갔고 난 집에서 나왔다.
늦은 오후에 아내가 사진을 보냈다. 우리가 자주 가는 카페였다. 집에서 차로 15분 정도 거리였다.
[뭐야? 큐커피? 여보 혼자?]
[응]
상상해 보시라. 세 아이를 카시트에 앉히고 나서 차가 크기만 크지 멋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학원차 같은 커다란 차의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돌리는 158 아니 난장 아니 아내의 모습을. 운전에 소질이 있는 걸까 필요가 실력을 만든 걸까. 아내는 큰 차 운전도 거뜬히 해내고 있다.
또 한 시간 정도 흐르고 나서 아내가 사진을 보냈다. 이번에는 빵 봉지에 담긴 파란 어떤 물체였다. 얼핏 보니 찰흙 같기도 하고. 빵 봉지에 담은 걸 보니 쿠키인가 싶기도 하고.
[충격]
아내가 이어서 카톡을 보냈다.
[시윤이는 바지만 입고 있음]
무슨 소리인지 전혀 이해를 못 했다.
[오잉? 왜?]
[왜겠어요]
그러고 나서 다시 아내가 보내준 파란 형체를 자세히 살펴봤다. 그건 시윤이 팬티였다. 하나둘씩 조각이 맞춰졌다. 시윤이는 팬티에 똥을 쌌고 여벌의 속옷을 챙기지 않았던 아내는 노팬티의 길을 선택한 거다. 우리 아들 시원하고 좋았겠네. 사실 시윤이는 나오기 전에 집에서도 이미 한차례 1차 똥 테러를 감행했다. 똥이 조금 묻은 걸 상상하면 안 된다. 상상 그 이상이다. 카페에서 똥 테러를 당한 소식을 전하며 아내는
[인내한 나를 칭찬한다]
라고 카톡을 보냈다. 자화자찬할 만하다.
난 퇴근하고 치과 치료가 있었다. 아내는 그래서 외출을 감행했다고 했다. 내가 늦는다고 생각하니 막막해서 나왔다고 했다. 치과에 가는 길에 아내랑 동선이 겹쳐서 아주 잠깐, 아내가 자연드림에서 장을 볼 동안 같이 있었다. 소윤이는 엄마를 따라 장을 보러 가겠다고 했고, 시윤이는 나와 함께 밖에 있겠다고 했다. 서윤이는 내가 안고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흔쾌한' 허락을 얻어서 괜찮았다) 시윤이는 또 이런 맛이 있다. 은근히 애교쟁이다. 아주 잠깐, 한 10분 남짓이었지만 서윤이를 안고 시윤이가 이리저리 날뛰는 걸 기분 좋게 지켜봤다.
아내가 장보기를 마치고 아내와 아이들은 집으로, 나는 치과로 향했다. 치과 치료는 한 시간이 넘게 걸렸고 그 사이 아내는 애들 저녁도 먹이고 잠도 재웠다. 그러긴 했는데 그 과정이 너무 험난해서 문제였다. 하루 종일 잘 지냈는데 저녁 먹으려고 식탁에 앉자마자 양파가 어쩌고저쩌고 양이 너무 많아서 어쩌고저쩌고 하며 또 징징대는 시윤이가 원인이었다. 밥그릇을 치웠더니 악을 쓰며 울고, 태도의 변화가 없길래 엄마랑 누나는 들어가서 잘 거니까 계속 울 거면 울고 자고 싶으면 그치고 들어 오래도 계속 울고, 결국 시윤이는 아내와 진한 훈육의 시간을 보냈다. 아내가 시윤이와 씨름하는 동안 서윤이는 악을 써가며 울었고, 소윤이는 우는 서윤이를 달래 보려 안간힘을 썼지만 진정될 리 없었다. 시윤이 녀석이 하루 종일 먹고 싸는 걸로 아내를 고달프게 하는구나.
[여보. 밥은 제대로 먹었어?]
[아니. 앉아보지도 못했어]
집에 들어왔을 때 아내와 아이들은 방에서 잠드는 중(?) 이었다. 아내는 먼저 저녁을 먹으라고 했지만 난 의리 남편이니까 아내를 기다렸다. 잠시 후 아내가 나왔다. 역시나 서윤이 없이. 아내랑 상을 차리고 늦은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시간만 늦었지 생각보다 괜찮았다.
"여보. 좋은데? 이렇게 오붓하게 조용히 먹을 수도 있고"
"시윤이의 큰 그림이었다니까"
"하아. 하루 중에 처음으로 여유롭게 밥 먹는 시간이다"
"그러게. 오늘도 고생했어"
아내는 그러고 나서도 한참 동안 집도 치우고 빨래도 꺼내고, 온갖 집안일을 했다. 11시쯤 식탁에 앉더니 얘기했다.
"여보. 나 이제부터 열심히 놀 거야"
이건 마치 소윤이가 자기로 약속한 시간 5분 전에 숨바꼭질, 메모리 게임, 책 읽기, 보물 찾기를 모두 하겠다며 각오를 다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여보, 소윤이가 그런 심정이었나 봐?